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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Apr 12. 2024

봄맞이

간만에 터덜터덜...

사람은 점점 게을러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사진 찍는 게 너무 좋았던 30대 때까지만 해도 DSLR 카메라에 렌즈 두어 개, 그것도 뭔가 불안해서 컴팩트카메라 한 대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하염없이 걸으며 셔터를 눌렀다. 집에 돌아오면 파일들을 컴퓨터에 옮기고, 그중 몇 장을 골라 서툰 포토샵 솜씨로 낑낑대며 편집을 마쳐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찍었던 사진들이 쌓이고 쟁여져 내 청년기의 장면들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미러리스 카메라에 렌즈 하나, 그러다가 컴팩트카메라 하나, 또 그러다가 이젠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아하는 그런 게으른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편집도 포토샵에서 휴대폰 어플로. 또 그러다가 이젠 그냥 인스타그램에 구비된 필터를 입히고 있다. 자꾸만 편한 것만 찾게 되면서 어느샌가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군살이 붙어있더라.


지난 주말, 책꽂이 한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DSLR 카메라를 꺼냈다.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어깨에 둘러메고 밖에 나가 절정을 맞이하던 벚꽃 사진을 찍었다. 몇 년 만에 느끼는 무게감에 어깨가 정말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힘든 만큼 나태함의 기름기를 걷어내는 것 같아 좋았다. 렌즈를 갈아 끼고 초점을 다시 맞추는 과정은 여전히 번거로웠고, 기껏 찍었는데 핀이 나간 사진을 보며 언짢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마저도 좋았다. 카메라에 서툴던 시절,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던 그때가 다시 온 것 같아서. 그렇게 힘들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나만의 봄맞이를 했다.


이젠 종종 카메라를 들고 나가봐야겠다. 꽤 오래 방치해서 고장이 나버린 미러리스 카메라 수리도 하고, 찍어놓고 방치했던 사진 파일들 편집도 해봐야지.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reflection" (필동,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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