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by 시인과 촌장)

완벽한 제자리란 건 없겠지만...

by radioholic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시인과 촌장, '풍경' 중)


내가 와이프에게 종종 꾸지람을 듣는 이유 중 하나는 썼던 물건이나 사용한 가구를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는 버릇이다. 부엌 찬장을 열어둔 채 거실로 나온다거나, 택배상자를 열 때 썼던 칼을 탁자 위에 그냥 두거나 할 때 등이 그렇다. 이런 내 버릇은 언제쯤이나 고쳐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물건을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두듯, 지금의 현실도 과거의 어느 순간의 상태로 다시 돌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화 속 타임리프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을지라도, 예전에 가지고 있던 마음 상태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럴 수가 없기에 상실의 아픔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마지막으로 글을 남긴 지 3주가 훌쩍 지났다. 무언가를 쓰려고 해도 결국 돌고 돌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고, 그마저도 결국 써 내려가지 못하고 창을 닫는 상황이 반복됐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괜찮지 않다는 것만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뭐 아직 아버지를 보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작년 2월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에 국회 측 장순욱 변호사가 남긴 마지막 변론 내용이다. 혼란과 무질서가 물러난 뒤에 우리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시인과 촌장이 부른 '풍경'의 아름다운 가사를 빌어 남긴 저 품격 있는 변론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난 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저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내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서성이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아버지의 병환이나 임종을 맞이하실 때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엔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하고 전화기 너머로 니 아빠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억장이 무너지곤 한다. 여전히 난 아버지가 계셨던 시절의 나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젠 더 이상 예전의 아버지가 계시던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마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시인과 촌장도, 이 노래를 법정에서 인용했던 장순욱 변호사도 이 세상에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 장면이 가장 아름다움을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메울 수 없는 부재의 자리, 예전과 같을 수 없는 생활을 직면하면서 우리는 상실의 아픔을 꾸역꾸역 견뎌내며 살아간다.


내일은 아버지를 뵈러 가는 날이다. 긴 연휴의 시작에, 낯선 곳에서 잠들어 계신 아버지가 우리의 방문에 조금이라도 덜 쓸쓸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엄마는 아버지가 그리워서 좀 더 우실 테고, 나와 누나들 역시도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이젠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계셨던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살아보겠다고 약속드리고 올 참이다.


아빠, 내일 봐요~

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또 시간이 흘러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그 겨울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땐 내가 좀 더 심상하고 무던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기를. 비록 아버지가 있던 제자리는 이제 없을지라도, 그 부재를 견디며 우리 가족들이 각자의 일상을 찾아가길 바라며.


https://youtu.be/3O4zH3UJYUI?si=zvtvddWT44Y2ZGJC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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