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후의 내 모습(by 신해철)

난 어떤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까

by radioholic
강철과 벽돌의 차가운 도시 속에 구부정한 내 뒷모습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적을 그때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까
노후연금 사회보장 아마 편할 수도 있겠지만
(신해철, '50년 후의 내 모습' 中)


12년 전 처음 일본에 가봤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일본 관광객이 넘쳐나도록 많을 때가 아니라 간사이 지방이라 불리는 오사카와 교토를 꽤나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오사카의 활기찬 모습도 흥겨웠고 교토의 고즈넉함도 인상 깊었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장면은 엉뚱하게도 출국 전 간사이 공항에서 마주친 외국인 노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빨간 바지에 선글라스와 검정 헤드폰을 걸친 패션 감각도 기가 막혔지만, 더 눈이 갔던 것은 젊은이들에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의 기세 넘치는 모습이었다. 과연 저분을 보며 누가 '노인'이란 말을 붙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누가 이 분을 노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간사이공항, 2014)


나이가 들어갈수록 멋지게 늙고 싶다는 희망은 커져만 간다. 아니, 멋지진 않더라도 초라하고 구차한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크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란 늙고 쇠약해져 누구에겐가 짐이 되는 존재, 혼자 당당하게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약한 존재로만 인식되다 보니 나의 미래 역시 그런 모습이 될 것만 같아 지레 겁을 먹게 된다. 간사이공항에서 만난 빨간 팬츠가 잘 어울리는 노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튼튼한 두 다리로 어디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내 노년의 목표다.




난 어쩌면 어릴 때부터 신해철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나보다 8살이나 많은 큰누나 덕분에 국민학교 2학년 때 대학가요제에 '그대에게'를 들고 나온 무한궤도의 무대를 보며 박수를 쳤고, 누나들이 사 온 신해철 1,2집 테이프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거실에 있던 전축으로 신해철 2집을 듣던 어느 날, 나는 대학생이던 큰누나에게 이 테이프에서 무슨 노래가 제일 좋냐고 물어봤다. 난 당연히 타이틀곡인 '재즈카페'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예상했지만, 누나의 대답은 뜻밖에도 앨범 말미에 수록된 '길 위에서'와 '50년 후의 내 모습'이 좋다고 했다. 신나지도 않고 우울하기까지 한 이런 노래들이 왜 좋다고 하는 것인지 국민학교 6학년 남자아이였던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해철의 노래를 테이프로 즐기던 그때는 50년 후라는 시간 자체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50년은커녕, 5년 후면 나도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되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해야 하고 저 무시무시한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무섭고 싫던 시절이었다. 조기교육이 일상화된 요즘과 달리 중학생이 되어서야 영어를 배우고 나서, 이 노래 속 영어 내레이션을 더듬더듬 해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누나가 왜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는지 아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큰누나 역시 그저 20대 초반의 대학생일 뿐이었지만, 나보다는 나이 듦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했을 테니 말이다. 누나와 동년배였던 신해철은 대체 어느 정도의 감수성을 지녔기에 그 나이에 50년 후를 생각하며 근심 어린 노래를 만든 것일까.


I see an old man, sitting on the bench. Maybe he's crying cause he's dying.
He's got a cigarette, burned like rest of his life. I try to remember who he is.
He is me! I see my future now...
(신해철, '50년 후의 내 모습' 中)




신해철 2집을 듣던 국민학교 때는 내가 커서 허재 같은 농구선수가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 나올 신해철의 3집은 또 얼마나 좋을까를 기대하며 음반 가게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신해철은 그 후로 자신의 솔로 대신 넥스트란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난 내가 좋아하던 농구 대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중년의 회사원이 되어 꾸역꾸역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신해철은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5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말은 너무나 적확해서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다.


이 노래가 나온 지 50년이 되는 2041년이면 아마 나는 지금의 직장에서 퇴직을 한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를 대비해 난 지금도 매월 얼마씩 연금보험료를 내고 있고, 따로 저축도 조금씩 하고 있지만 '노후 대비'라는 말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지금도 매스컴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빈곤한 노후의 비참한 모습이 혹여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노후연금과 사회보장으로 아마 편할지도 모른다는 노래 속 가사와 달리, 우리는 노후에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쉼 없이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길 원하며 제2의 인생을 위한 자격증을 검색하고 더 좋은 금융상품을 찾아 헤매고 있다.


신해철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당신의 팬이었던 우리가 이렇게 중년이 시기에 비틀거리며 노년을 걱정하는 것을 보며 뭐라고 말을 해줬을까. 사실은 자신도 늙는 것이 무서웠다며, 그래서 이런 노래를 만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했으려나. 비록 내가 그토록 동경했던 신해철은 이 세상에 없지만, 난 지금도 간사이 공항에서 만난 그 외국인처럼 '간지나게' 늙어가겠다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비록 나이가 들어도 무가치하고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닌, 곧은 허리와 멀쩡한 두 다리로 남은 인생을 천천히 걷는 그런 건강한 노인이 되겠다고.



https://youtu.be/y8cWbhTlQQA?si=pz33Hzv0mzv552pB

시간이 지날수록 보고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