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에게 웃음 짓기
외롭다고 생각 말아요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거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웃어요 웃어봐요 모든 일 잊고서
웃어요 웃어봐요 좋은 게 좋은 거죠
(오석준, '웃어요' 中)
아... 왜 안 와...
출근길인데 지하철역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오지 않는다. 앱으로 확인해 보니 오늘따라 배차간격이 엉망이라 13분 후에야 도착 예정이다. 버스를 기다리면 당연히 지각인 상황. 버스를 타면 4분 거리인 지하철역을 뛰고 걸으며 약 10분 만에 도착을 하니 몸이 후끈거리며 땀이 흐른다. 몸에 열과 땀이 많은 나에겐 참 고역인 출근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을 타고나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미역처럼 후줄근해진 채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야 하니까. 업무가 시작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는 건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아침이다.
급한 마음에 쫓겨 지하철 플랫폼을 빠르게 걸어가는데 내 정면으로 외국인 여자분이 큰 캐리어를 끌고 다가온다. '아... 한국은 우측통행인 거 모르나...'란 심술을 속으로 삼키며 왼쪽으로 비켜서는 순간, 그 외국인 여자분이 나를 바라보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마음이 누그러질 수밖에 없는 선의 넘치는 웃음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같이 웃으며 목례를 했다. 그 순간 마을버스가 늦게 온 것에 대한 짜증도, 티셔츠가 땀에 젖은 찝찝함도 모두 잊게 해주는 유쾌함이 밀려왔다. 짐을 들어준 것도 아니고 길을 안내해준 것도 아닌, 그저 길을 비켜주었을 뿐인데 엄청난 환대를 받은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난 왜 알지도 못하는 외국 여자분에게 그토록 짜증이 났는지 많이 부끄러워졌다. 이런 편협한 아저씨 같으니.
내가 신문에 날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주변과 잘 어울리고 있다는 실감에서 오는 좋은 느낌으로 편안해진다.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전해지는 충만감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
(오명은,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中, 265p)
요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아껴 읽고 있는, 브런치의 '베리티' 작가님께서 쓰신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에 나오는 저 구절에는 오늘 왜 내가 그토록 기분이 좋았는지를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대단한 일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그가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는 사실이라든지, 그런 마음을 아무 사심 없는 미소로 표현해 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벅차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린 이런 사소한 일을 통해 알게 된다. 저 문장 속에 적혀있는, 누군가와의 좋은 관계를 통한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전해지는 충만감'이 없는 삶이란 것은 얼마나 황량하고 피폐할까.
업무에서 큰 업적을 이루거나, 바라던 어떤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희열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바라는 좋은 것들의 수요는 정해져 있고, 살아가면서 큰 성취에 따른 행복을 느끼는 일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나머지 삶의 공간을 우리는 작고 사소한 기쁨과 만족감으로 채우며 살아가야 한다. 특별한 어느 순간을 위해 다른 시간들을 삭막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하루하루를 자잘한 만족으로 채우는 것이 더 행복할 테니까. 처음 보는 사이라도 스스럼없이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현을 해주는 경험만으로 즐거웠던 어제 아침의 그 시간처럼.
지하철역에서의 좋은 기분을 유지하며 회사에 도착한 뒤, 옷을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으면서 문득 노홍철의 긍정복음이 생각났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라는 무한 긍정의 멘트를,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던졌을 때 정말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좀 더 유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보낼 수가 있었다. 맞아... 웃음치료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힘들고 짜증 나는 시기일수록 억지로라도 누군가와 웃음을 주고받는 것이 노홍철의 말처럼 행복해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가뜩이나 주름 많은 눈가가 조금 더 깊이 패이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람.
오석준이 무려 약 40년 전에 부른 '웃어요'는 어쩌면 노홍철이 설파한 긍정복음의 원조가 되는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늘 힘든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이니 그저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으며 살자는 이 단순한 메시지에는 우리가 이 거친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답이 들어있지 않은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누군가와 큰 웃음을 주고받는 순간을 꼭 가져봐야겠다. 그게 내 주변 사람이든, 어제처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타인이든 상관없이. 외국에 비해 유독 타인에게 미소 짓는 것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참 쉽지 않은 미션임을 알지만, 그게 나에게 즐겁고 마음이 충만한 하루를 선물해 준다면야 할만한 숙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