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조금 더 무관심해질 수는 없는 걸까
소희는 모든 집 장롱 속에는 남들이 모르는 해골이 있다고 자주 말한다. 우리 집에는 옮기기 힘들 만큼 큰 대형 해골이 기본으로 둘셋 있으며, 작은 해골들은 줄곧 장롱을 들락날락하며 그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 어느 집에도 그럴 것이다. 해골은 그저 누구에게나, 어느 가정에나 디폴트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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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험한 사정이나 사건 사고까지 굳이 탈탈 털어 보여주지 않아도 장롱에 있는 몇몇 해골들을 다들 껴안고 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전수영,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 中 97~98p)
각자의 삶에는 그늘이 있다. 평상시의 밝은 모습으로 애써 가리고 있는 그 그늘에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전수영 작가가 책에서 말하는, 우리 모두가 집안 장롱이나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해골의 존재는 굳이 알려고 들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그런 내밀한 치부이자 고통들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보호받아야 하는 사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빛이 강하면 그만큼 그림자는 더 어두운 것처럼, 화려하고 주목받는 사람들의 인생일수록 삶에 드리워진 그늘은 더 짙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고민이나 힘겨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공유할 수가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 대중매체에 노출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노출의 범위가 그들의 공식적인 활동이 아닌 사생활의 영역까지 침범해도 된다는 것은 누구도 허락한 적이 없다. 다만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는 인간들이 있고, 그런 가십에 희열을 느끼며 비난과 조롱을 얹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기는 야만일 뿐이다.
우린 성인군자가 아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남들이 이해 못 할 취향이나 욕망이 있을 수도 있고, 타인이 알면 치욕적일 수 있는 그런 치부들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냥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런 어두운 면들, 전수영 작가가 말하는 해골일 수도 있고 내가 위에 쓴 그늘일 수도 있는 것들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설령 도덕적이지 않은 일이라도 당사자간에 양해가 된 일이라면, 그것이 법의 테두리를 깨지 않는 것이라면 타인이 들춰내고 비난하는 건 금지되어야 맞다. 타인에겐 그럴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의 사생활을 들춰내고 모욕을 주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한 짓과 똑같은 방법으로 되돌려 준다면, 과연 그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군가를 기사와 비평이라는 미세하고 날카로운 침으로 수없이 찔러서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너게 해 놓고는, 막상 그들이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를 슬퍼하며 그립다는 내용의 기사와 글들이 공격을 일삼았던 같은 지면과 화면을 통해 나오는 모습에는 소름이 돋는 정도가 아니라 공포가 느껴진다. 인간들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몰아세워 죽인 사람을 추모하는 그 비인간적인 행태에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 외엔 어떤 표현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그들의 사생활이 당신들에게 대체 무슨 해악을 끼친 것이냐고.
타인의 사생활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신들도 지키지 못할 너무나 엄격한 도덕률을 강요하며 비난하는 사이에 우린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고 지금도 잃고 있는 중이다. 난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던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있고, 우울할 때마다 즐겨 듣던 카라의 '미스터'도 듣지 못한다. 마음이 아프고 그리워져서 그렇다. 그리고 지금 어떤 배우에게 가해지고 있는 일련의 공격들이, 내가 보고 듣지 못할 또 다른 작품들을 만들어낼까 봐 두렵다. 이젠 그만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겐 감추고 싶은 해골이, 그늘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앞모습 이면에 있는 뒷모습이 있으니 말이다. 제발 타인에게 조금만 더 무관심해지면 안 되는 걸까.
비밀이 없어 왜들 목을 졸라 버릴까?
죄도 아닌 것 갖고
(이소라, '너의 일' 中)
https://youtu.be/JyFZgDGKuyo?si=le79vCaIAVuhea6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