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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Oct 03. 2024

어떤 눈빛들

눈망울과 눈깔 사이, 그 어딘가에서

요즘 화제인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를 즐겨 보고 있다. 예전 요리 프로그램의 단점이었던 소위 '사연팔이' 와 PPL 등을 과감히 배제하고, 오로지 요리를 업으로 삼는 이들 간의 진검 승부에 초점을 맞춘 것이 마치 무협지를 보는 느낌까지 들게 하더라.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중 내 눈길을 끌었던 건 한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를 바라보는 동경의 눈빛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지, 이 장면은 방송 후 인터넷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출처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자기와 같은 분야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평소 동경했던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누군가에 대한 존경보단 질투나 견제의 감정이 더 크게 자리 잡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에 둔감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도 편협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참가자분은 본인 역시 자기 분야에서 상당한 위치에 올라와있음에도, 평소 동경하던 존재를 마주하면서 느낀 경외감을 표정과 눈빛에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오롯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저런 태도는 정말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저분의 저 경탄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얼마 전 우연히 국회 현안질의를 보다가 문득 저 참가자분의 눈빛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국회에 증인으로 불려 나온 사람들의 눈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영혼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탁한 빛깔의 눈동자, 내가 하는 말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래서 뭐 어쩌겠냐는 듯한 표정, 밥 벌어먹고 살려면 이런 짓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뻔뻔함이 얼굴과 눈빛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 대신 멸시가, 부끄러움 대신 몰염치가, 신념 대신 공허함이 허옇게 덮고 있는 그들의 눈을 보면서 나이 들어서 윤기 있는 눈망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생계를 위한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자존심에 상처도 받을 때도 있고 남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내가 조직에 속하거나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일할 때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지시와 조직 논리를 핑계로 반성과 고민마저 포기해 버릴 때 사람의 눈망울에 희뿌연 안개가 낀다. 생활인으로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내 생각을 포기해 버리고 부조리에 동조할 때 국회 청문회나 현안질의에서 영혼 없는 대답을 하던 사람들의 그 탁한 눈빛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


나의 눈빛은 어떤 것일까...


나이가 들어도 나보다 나은 누군가 또는 지금의 나보다 더 높은 단계의 내 모습을 동경하는 빛나는 눈빛과, 불합리함과 불의함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자기 자리보전에 급급한 혼탁한 눈빛 사이. 거칠게 말하면 맑은 눈망울과 탁한 눈깔 사이에서 지금 내 눈빛은 그 둘 사이에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흑백요리사 속 저 지원자는 결국 자신이 동경하던 그 사람에게 지고 탈락했지만, 마지막까지 견지했던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동경과 존중, 그리고 겸손이라는 미덕이 사람을 늙지 않게 해준다는 것. 세상엔 역시 배울 사람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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