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dioholic Oct 13. 2024

말의 온도차

따뜻한 말과 차가운 말 사이에서

일상에 칼같은 루틴을 만들어 그에 따라 부지런하게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무언가 평범한 일을 할 때 나만의 특별한 루틴 하나쯤 만드는건 의외로 즐거운 일이다. 필요하지만 그냥 하면 딱히 재미없는 일이 그 이벤트성 루틴 하나 때문에 꽤나 할만한 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기타리페어샵 위 라멘집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3~4개월에 한번은 기타 점검을 받기 위해 기타리페어샵에 간다. 리페어샵이 운치있는 동네에 있어 기타를 메고 산책하며 걸어가면 내가 마치 실력있는 버스커가 된 기분이 든다. 건강검진 받듯 기타 상태를 확인하고 간김에 줄도 한번 갈고 나면 묵은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기분좋은 후련함이 느껴진다. 그 기분으로 내가 좋아하는 리페어샵 위 라멘집에서 라멘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집에 돌아가는 날은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얼마전 학원 공연을 앞두고 기타 상태가 좋지 않아 차에 기타를 싣고 리페어샵으로 향했다. 버스를 탄 후 걸어가는게 좋았지만 그 날은 지독하게 더워서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리페어샵 건물 뒤 작은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어느새 내 뒤로 따라온 차의 창문이 열리며 매서운 여자분의 음성이 들린다. 누가 들어도 화가 난 목소리. "어디 오셨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지하 기타 리페어샵에 방문했다는 내 대답이 끝나기가 매섭게 한마디를 더 쏘아붙인다.


거기 제 자리에요. 차 빼요.


주차장을 둘러봐도 지정된 자리란 표시도 없을 뿐더러 처음 본 사람을 마치 죄지은 사람을 몰아붙이듯 위압적으로 쏘아대는 말투에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기세를 보아하니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인듯 하고 대꾸를 하는 순간 실갱이로 번질게 뻔한 상황이라 차를 빼주고 다른 자리에 낑낑대고 주차하고 나니 그 사람은 이미 주차를 하고 사라진 뒤다. (심지어 그 차는 30분도 안되어 다시 주차장을 나갔더라...)


이런 표시라도 하시지 그러셨어요?


날은 덥고 습하고, 좁은 길에 있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다시 대느라 진이 빠지고 불쾌지수가 오른 상태로 기타 리페어를 받았다. 기타 상태가 좋지 않아 맡기고 가야 한다는 리페어샵 직원분의 진단에 조금 더 마음이 안좋아졌다. 언짢은 마음도 달랠겸 나만의 루틴인 라멘집으로 가보니... 방금 그 운전자가 세상 근면성실한 자세로 라멘집 유리문에 메뉴 사진을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발길을 돌렸고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는다. 워낙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곳이라 나같은 손님은 필요도 없겠지만.


아마 그 분은 라멘집 사장님이거나 그 관계자쯤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주차를 하고 가게로 들어가서 특선 메뉴 사진을 유리문에 붙인 뒤, 손님들에겐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게 밖에서 자신이 침뱉듯 뱉어낸 말 한마디가 그 가게에 호감을 가졌던 손님을 손놈으로 만들며 발길을 끊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모르겠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 고객으로 생각하며 응대할 필요는 없지만, 난생 처음 본 사람을 저토록 무례하게 대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 며칠 후 동네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보다가 뒤로 지나가던 할머님과 몸이 살짝 부딪쳤다. 놀라서 연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데 그 할머님께서 너무나 유쾌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노인네가 신경을 안써서 그런거니 내가 사과해야지! 나이가 많다고 내가 꼭 사과를 받아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어~" 라며 사장님과 함께 깔깔 웃으시는 모습에 같이 웃으며 한번 더 사과를 드리고 정육점을 나섰다. 위에서 저런 일을 당한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할머님의 그 말들이 그렇게도 고마웠다.


말에도 분명 온도가 있다. 온기가 있는 말들은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그 진심이 마음에 와닿아 상대방에게 흐뭇함을 주는 반면, 차가운 말은 아무리 세련되고 깔끔해도 듣는 이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친절함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고의 경쟁력이란 말은 결코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요즘처럼 사람들간의 날이 선 말로 상처받는 시대가 있나 싶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눈빛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