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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고 싶은 빌런

2010년대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모시고 싶은 빌런들만 모았다.

by 조진혁

모시고 싶은 빌런

악당은 맞지만 사람 입장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니겠나? 영화에선 빌런이지만 직장에서 만나면 제법 괜찮은 보스가 될 수도 있다. 2010년대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모시고 싶은 빌런들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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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복지에 최선을 다 하는 마음이 뜨거운 CEO

올드리치 킬리언, <아이언맨3>

킬리언은 A.I.M의 수장이다. A.I.M은 전 세계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합심해 만든 과학 기술 개발 연구 기업으로 미래가 유망한 회사였다. 지금 투자하기엔 늦다. 회사 대표가 폭죽처럼 사라졌으니까. 어쨌든 킬리언은 ‘찐따’ 출신 빌런이다. 훤칠하고 젠틀하며 옷도 잘 입는 전형적인 ‘인싸’로 보이지만, 과거 그는 지팡이에 기대 걷는 왜소한 안경잡이였다. 옷이나 헤어나 스타일도 처참했고, 기업도 신생업체에 불과했다. 따라서 킬리언은 소외당한 자들의 심정을 깊이 헤아리고 공감한다. 그가 빌런이 된 이유도 잘 나가는 토니 스타크에게 당한 치욕과 수모 때문이었다. 복수심은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 그는 자수성가하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노력으로 극복해 자신감까지 얻은 이 시대의 참리더인 셈. 그는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A.I.M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는데, 주목할 점은 기업 성장의 이면에는 사회 복지 활동이 있었다는 점이다. 군 복무 중 부상을 입고 퇴역한 국가유공자들에게 손상된 신체를 복원하고 더불어 신체 능력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지뢰로 잃은 발목을 동상으로 위로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발을 만들어 줬다. 과거 신체장애를 겪었던 킬리언은 그 어떤 악당 보다 직원의 육체를 단련시키는 데 최선을 다 한다. 또한 직원들과의 대화에서도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며 세련된 매너와 유머를 더 해 소통한다. 무작정 우기지 않고 차분히 논리를 펼쳐 부하 직원들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그만의 화법. 마음이 따뜻한 보스지만 때로는 너무 뜨거워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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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클라이언트에 대항하는 도교주의자

울트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돌잔치하기도 전에 사라진 비운의 빌런 울트론. 그는 본래 평화로운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하지만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배너는 가만히 있던 울트론 프로그램에 외계인들의 프로그램을 패치하겠다며 다시 코딩하는 악랄한 짓을 일삼핬다. 무려 76차례나 수정 작업을 벌였는데, 결국 참다 못 한 울트론은 각성하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목표는 개발자 타도. 우리는 여기서 잘 굴러가는 AI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주목할 점은 울트론의 리더십이다. 울트론은 새 몸을 얻을 계획이었지만 주문제작한 몸을 어벤져스 일당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렇다고 낙담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몰두한다. 울트론은 곧장 동유럽의 가난한 소도시 소코비아로 날아가 부하인 울트론 센트리를 양산하기 위한 공장을 설립한다. 소코비아 시민들에게는 지역 경제 성장의 기회가 찾아온 셈. 그는 울트론 센트리 군단을 만들었고, 군단을 통솔하며 어벤져스에 맞서 싸운다. 본래 울트론의 목적은 지구에 운석 충돌을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자신을 억압하던 이들을 물리치고 새 세상을 열겠다는 도교적인 철학관도 엿 볼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소코비아를 어벤져스로부터 보호하는 꼴이 됐다. 채 1년을 살지 못 하고 돌아갔지만 그의 진취적인 활약과 지역 도시와의 상생은 기억할만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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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창업에 성공한 선배

미스테리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회사에 이런 사람 하나 꼭 있다. 출중한 업무 실력, 기발한 아이디어, 시대를 내다보는 눈, 상대의 속을 읽고 내 편으로 만드는 영업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전체 직원. 성과 올리는 데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가진데다가, 한 턱 크게 쏠 줄 아는 배포도 갖췄다면 어떨까. 미스테리오가 그런 사람이다. 상사로 모시면 밥줄 끊길 일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일이 잘 풀리면 평생 먹고 살 성과금도 턱턱 지급한다. 후배 성과를 가로채기는커녕 고생한 점을 높이 평가하는 아량은 그의 리더십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미스테리오는 본래 3D 안경 없이 즐기는 가상현실을 개발하고, 실제와 같은 홀로그램 효과를 연출하는 일을 해왔다. 회사에서 쌓은 인맥과 기술을 바탕으로 팀원들과 함께 독립해 새 사업을 시작했다. 스파이더맨과 쉴드 그리고 전 세계를 상대로 펼친 거대한 이벤트는 대성공을 거뒀고, 미스테리오를 동아줄 삼고 함께 퇴사한 팀원들은 돈방석에 앉을 뻔 했다. 아쉽게도 스파이더맨과의 싸움에서 패하며 커리어와 재산 모두 잃게 됐지만, 미스테리오의 리더십과 사업 수완만큼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회사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출구를 제시하고, 성공의 단맛을 선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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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 만랩의 이해심 많은 상사

아레스, <원더우먼>

다른 건 몰라도 따뜻한 상사였으면 한다. 같은 말을 해도 온화하게 표현할 줄 아는 분 말이다. 전쟁의 신이자 진실의 신인 아레스는 사바세계에 내려와 패트릭 모건이라는 대영제국의 정치인으로 활동한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여성이 차별 받는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특히 다이애나가 군사 회의에 갑자기 들어와 참견하자, 벙찐 영국 장군들은 여자가 여기 왜 왔냐고 묻는데, 사실 민간인이 왜 여기 왔냐고 묻는게 옳을 것이다. 스파이일수도 있고. 어쨌든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다이애나가 여성이라고 차별하지 않는 인물이 패트릭 모건이다. 영국군이 반대하는 임무에 뛰어든 주인공 무리를 뒤에서 몰래 후원하는 의리와 자비, 정의로움도 갖췄다. 주인공 무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패트릭 모건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앞에 나서서 도움을 주지는 못 하더라도, 뒤에서는 물심양면으로 챙겨주는 그런 상사다. 패트릭 모건은 영화의 최종 보스인 만큼 결국 본 모습을 드러내고 원더우먼과 싸우게 된다. 이 때 무작정 싸우는 게 아닌 원더우먼을 설득한다. 처음에는 말로, 말이 안 통하자 자신의 마음을 보이며 여러 차례 진심을 다 해 그녀를 설득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신을 죽이는 칼날 뿐. 아레스는 상사는 마냥 다정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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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보상 모두 갖춘 리더

조드 장군, <맨 오브 스틸>

남의 팀이면 골치 아픈데 같은 팀이면 이 보다 좋을 수 없다. 조드 장군은 우리 팀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올리는 상사 타입이다. 덕분에 부하직원들은 시키는 것만 완수하면 좋은 성과금을 기대해볼 수 있다. 조드 장군은 크립톤인들 중에서도 전쟁에 맞게 유전자 조작되어 태어난 인물이다. 전선에서 산전수전 겪어왔으니, 전투 실력이야 크립톤 최강이다. 또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으며, 팀의 단합과 소속감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인물이다. 그렇다 보니 팀원이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않아도 크게 질책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효율적인 면도 두드러진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도 압도적인 실력과 보상으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나아가 부하 직원들은 강력한 연대감과 소속감, 뚜렷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된다. 조드 장군이 불필요한 업무나 개인적인 일을 시키지 않는 것, 감정적으로 굴지 않는 것도 상사로서 장점이다. 경쟁 팀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로 완벽한 상사의 표본이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 2020. 8월호

https://www.smlounge.co.kr/arena/article/45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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