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교훈을 담는다. 우리가 동화를 아니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동화는 그 목적을 교훈 그러니까 이렇게 살지 말라는 소리를 돌려서 하는 것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차별하지 마, 사랑하면 돼’라는 소리를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 전한다. 그런데 이 미사여구가 너무 아름답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소도시이다. 야간 청소부인 주인공은 극장 위층에 거주한다. 영화관에서는 흑백 영화가 상영된다. 극장을 포함한 시내의 모습은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컬러로 변환한 것과 다르지 않다. 낭만에 색채를 더 했다. 말 못 하는 주인공의 감정은 음악으로 표현된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설렘은 버스 차창에 부딪친 빗물처럼 아련하고, 늦은 밤 출근길 붉을 밝힌 1960년대 시내의 모습은 따뜻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의 일터는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이다. 20세기 공상과학 소설의 배경으로 제격인 공간이다. 주인공은 여기서 쓸고 닦고 비우다가 괴생명체를 만난다.
그 첫 만남은 놀람이었고, 이내 교감으로 이어진다. 뭐 동화 속 운명적 사랑이라는 게 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나. 개구리 왕자를 처음 본 공주가 깜짝 놀랐다가 이내 따뜻한 마음을 느낀 후 서서히 가까워지며 사랑에 빠지듯,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도 괴생명체에게 삶을 달걀을 주면서 친해졌다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주인공은 괴생명체가 의식을 갖춘 생명이라는 것과 그의 단단한 외형, 또 귀여운 면모에 반한다. 괴물은 보다 보면 은근히 귀엽다. 고양이 먹을 때는 좀 징그럽지만, 대체로 깜찍하다. 그리고 여느 성인들이 그렇듯 연인으로 발전하고 사랑도 나눈다.
사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모든 인물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나눈다. 옆집 아빠 같은 게이 미술가도, 가난한 청소부 동료나, 상사로부터 압박받는 악당까지 모두 사랑하고 있다.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커리어도 높이고, 고백을 하는 등 삶을 이어가야만 한다. 이제 막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주인공 커플 외 다른 인물들의 사랑은 조금 더 생활과 밀접하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 눈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머리 아저씨나 흑인 동료, 중산층을 유지하려는 악당의 치열함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뭐,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이니까.
주인공과 괴생명체는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그들의 세상. 사랑밖에 없는 물속으로 사라진다. 그렇다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 기법은 달인 수준이다. 클라이맥스는 스릴 있고, 쇼트들은 아름다우며,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흐른다. 동네 제일의 이야기꾼이 국어사전 펴 놓고 썰을 푸는 수준이니 재미없는 구석은 하나도 없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차별과 정치적 올바름이 시대를 달구는 2018년에 ‘사랑만 있으면 돼’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올해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