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시대의 과소비
20XX년 자율주행 시대를 살아가는 장씨의 위기일발
미래일기
최근 장씨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구매했다. 사실 아내는 장씨가 계약서에 싸인 한 사실을 모른다. 충동적으로 자동차를 구매한 장씨는 집으로 가는 중 설렘과 불안에 혼란스러웠다. 당장 차를 어디다 세워야 할지도 문제고, 공용 주차장에 월주차를 끊어서 차를 숨겨둔다고 해도 언젠가는 아내에게 들킬 것은 분명했다. 친구들은 용서가 허락보다 쉽다며 한 달만 버티라고 했는데, 장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고민하는 사이 자율주행차는 집 앞에 도착했다.
장씨 부부는 AT사의 자율주행차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집에 인터넷 설치하면 3개월 구독료 무료라고 해서 덜컥 신청한 것이다.
AT사의 자율주행차는 다른 회사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루한 편이다. 볼거리가 적다. 차량 앞유리에 스트리밍 되는 콘텐츠들이 AT사 자회사 것들 뿐이다. 엣플릭스도 보고, 우튜브도 보고 싶은데 서비스가 안된다. 싼 게 비지떡이다. 구독료가 한 달 4만 9천 원 더 비싼 경쟁 업체 에이버의 자율주행 서비스는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라고 광고한다. 아무 차량을 주문해도 사용자의 입맛대로 길을 찾아간단다. 자주 가는 지름길을 말하지 않아도 먼저 제안하고, 사용자가 즐겨 듣는 음악도 선곡한다. 리뷰를 보면 금요일 밤에는 사용자 취향에 맞는 술집에 데려다주고, 기념일에는 백화점에 데려다준다고 한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자율주행 서비스다. 장씨도 에이버 메일과 캘린더를 사용하는데, 이 참에 바꿔볼까 아내에게 제안했으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미 집안 살림에서 구독 서비스료 지출이 크니 조금이라도 아껴 쓰자는 취지였다. 그런 아내가 장씨를 용서할 수 있을까.
직접 운전하는 것은 장씨의 오랜 꿈이었다. 어려서 아버지의 권유로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살면서 직접 운전해볼 기회는 없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정도로 여유로운 집안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율주행차 설비 라인만 가동하기 때문에 직접 운전 차량들은 장인들이 수제로 제작한다. 비싼 동네에서 가끔씩 보이는 부자들이 타는 자동차들도 전부 수제로 만든 차량이라 가격이 어지간한 서울 전세값 수준이다. 그래서 서민들은 자율주행 차량만 이용할 수밖에 없다.
TV에서는 연예인들은 값비싼 트랙에서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핸들링이 정교하다거나 가속력이 빠르다는 등의 얘기를 하며 운전의 즐거움, 운전의 철학에 대해 얘기한다. 프로그램의 인기 덕분인지 최근 직접 운전 가능한 중국산 차량이 국내에 출시됐다. 스쿠터보다 조금 큰, 네발 자전거에 지붕만 얹어 놓은 모양새이지만 직접 운전할 수 있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구입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자동차라 세금이 비싸고, 보험료와 유지비용, 수리비도 감당하기 어렵다. 한글 패치가 없어서 화면에 중국어만 나온다는 것도 흠이다. 그래도 좋다. 직접 운전할 수 있으니까. 어서 빨리 아내에게 이 즐거움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