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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Sep 29. 2021

로마와 페라리

페라리 로마 출시 현장에서.

2019년 가을에 쓴 글.


노천카페의 완벽한 카푸치노, 유서 깊은 아름다운 건축물, 8기통 터보 엔진을 탑재한 쿠페, 페라리는 낭만이 뭔지 안다. 로마에서 열린 페라리 로마 글로벌 공개 행사를 다녀왔다.

스페인 광장

1960년대 로마는 달콤한 도시였다. 패션, 음식, 자동차, 라이프스타일 등 이탈리아 문화는 전 세계로 퍼졌고, 카메라를 맨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로마를 찾았다. 파파라치도 이 시기 로마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라 돌체 비타’. 달콤한 인생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라 돌체 비타’라는 말이 유행했다. 노천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완벽한 맛과 향의 카푸치노를 마시며 로마의 사람들, 격조있는 건축물들, 오랜 역사가 담긴 광장을 감상하는 것은 우아하고 낭만적인 이탈리아 라이프 스타일이었으며, 동시에 달콤한 인생의 단면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쥐고 산다. 네트워크에 항시 연결된 삶이다. 그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페라리는 그저, 잠깐 폰에서 손을 떼고, 노천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아름다운 건축물들, 그 사이로 저무는 노을과 노을에 발갛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표정을 감상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기를 권할 뿐이다. 페라리 로마와 함께 말이다.      


페라리 로마는 지난해 11월 14일 처음 공개됐다. 장소는 1960년 17회 로마올림픽이 열렸던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러니까 1960년대의 영광이 남은 곳에서 로마의 낭만을 복기한 자동차를 선보인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행사장에 들어가면, 입구 옆에 위스키 병으로 장식된 화려한 바가 있고, 다른 벽에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1960년대 고전 영화 장면들이 투사되고 있었다. 음악은 흥겨운 클래식 비밥이었고. 60년 전 클럽은 이런 분위기였을까 생각하는 사이 최고 마케팅 경영자인 엔리코 갈리에라(Enrico Galliera)가 등장했다. 그는 바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하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모놀로그 연극의 주인공 같았다. 그는 로마의 아름다움과 ‘라 돌체 비타’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어서 페라리 로마의 탄생 비화를 밝혔다. 시작은 고객과의 대화였다고 한다. 페라리 고객들은 호화로운 삶을 즐긴다. 주말이면 퍼포먼스와 감성을 두루 갖춘 스포츠카를 타고 교외로 나가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며 카푸치노를 마시는 삶을 영위한다. 그는 고객과 대화 이후 페라리의 전통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고 한다. 역사를 파헤칠수록 페라리와 함께 하는 우아한 일상들이 드러났다. 1960년대 페라리는 아름다움으로 충만했다. 유려한 곡선으로 가득한 디자인은 물론이고, 페라리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그들은 우아하게 입고, 럭셔리하게 생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오래된 앨범을 뒤적이다 보니 새로운 그란 투리스모의 콘셉트가 정립됐다. 1960년대 로마의 전통과 낭만을 표현하는 것. 실루엣은 간결해야 하며, 동시에 우아해야 한다. 깔끔하고 균형 잡힌 쿠페 실루엣을 선택한 배경이다. 차체 비율과 디자인은 250 GT 베를리네타 루쏘 및 250 GT 2+2로 대표되는 페라리의 프런트-미드십 엔진 GT 라인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페라리 로마는 과거의 달콤한 삶에 새로움 즉, 현대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더해 ‘라 누오바 돌체 비타(la nuova dolce vita)’를 완성했다고. 엔리코 갈리에라가 말했다.      


내가 찍음

실루엣에 담긴 페라리 로마의 우아함은 보닛 내부로 이어진다. 동급 최강의 성능을 토대로 펀 드라이브의 전통도 이을 전망이다. 먼저 파워 트레인부터 살펴보자. 8기통 3,855cc 터보 엔진과 새로운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출력은 620마력(7,500rpm), 최대토크는 77.5kg.m를 발휘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3.4초, 최고속도는 320km/h이다.


8기통 엔진은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을 수상한 엔진이지만, 그것을 그대로 페라리 로마에 장착할 수는 없었다. 유럽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 달라지며, 새로운 배기 시스템과 필터를 장착해야만 했으니까. 페라리의 수석 기술 책임자 미카엘 레이터(Michael Leiters)가 말했다. “이 필터는 엔진 성능을 떨어뜨리고 엔진 소리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필터를 장착한 상태에서 기존 엔진 수준의 출력을 발휘하기 위해 30마력 정도 동력을 높여야 했죠.” 동력을 전달하는 기어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새로운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프런트-미드십 엔진에는 처음 사용했다. 기존 7단 변속기 보다 6kg 더 가벼워서 연비가 향상되고 배출가스 감소도 이루어지지만, 무엇보다 변속이 빠르고 부드럽다. 도심 주행이나 정체 구간에서 더욱 편하다. 미카엘은 주행에 집중한 운전자의 감성도 생각했다고. 그래서 기존 소음 장치를 제거하고 신형 바이패스 밸브를 장착해 새로운 배기 시스템을 완성했다. 배기음이 정교하다.


미카엘은 ‘펀 드라이빙(Fun Driving)’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설계를 꼽았다. 그는 “차를 최대한 작고 경제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죠. 페라리 로마의 차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약 70%의 부품을 경량화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무게는 1,472kg까지 낮출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민은 정확히 제어할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페라리 로마에는 페라리 GT 라인업 최초로 사이드 슬립 컨트롤 6.0이 탑재됐다. 다섯 가지의 마네티노 모드, 캘리퍼의 제동 압력을 유압식으로 조절하는 페라리 다이내믹 인핸서 등 최첨단 차량 동역학 시스템도 탑재됐다. 페라리 로마의 ESP 시스템은 주행 중 운전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때 카운터 스티어링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페라리 로마가 가진 독보적인 디자인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다. 디자인에서는 보닛에서 곧게 뻗은 길고 날렵한 라인과 매끈하게 표현된 실루엣, 간결한 패스트백 공간이 두드러진다. 미니멀한 외관을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는 모두 제거했다. 필요한 곳에만 천공 처리를 한 새로운 라디에이터 그릴, 어댑티브 풀LED 헤드라이트에는 로마의 차체 구조를 암시하는 가로줄 형태의 조명선이 적용되어고, 리어 스크린에 장착된 가변식 리어 스포일러, 트윈 테일 램프 등이다.


내부는 더욱 새롭다. 첨단 기능과 디자인이 미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계기판 중심이던 듀얼 콕핏 콘셉트를 발전시켜 운전석과 조수석의 두 분리된 공간이 실내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공간을 조성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재설계된 HMI(Human Machine Interface)이다. 페라리는 지난 몇 년간 HMI에 많은 투자를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적용했다. 특히 스티어링 휠의 경우 ‘눈은 도로에, 손은 스티어링 휠에’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되어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에 적용된 햅틱 컨트롤을 통해 차량 내 대다수의 장치를 작동 및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16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운전에 필요한 모든 주행 정보를 제공하며, 8.4인치의 중앙 디스플레이 및 패신저 디스플레이는 직관적으로 조작이 가능해 사용하기 쉽다. 신형 페라리 키 역시 컴포트 액세스 기능이 적용되어 키를 소지한 운전자가 신형 도어 핸들 옆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문을 열 수 있다.

 

안전성도 중요했다. 페라리가 강조하는 것은 수동적인 안전이 아닌 능동적인 안전이다. 페라리 로마에는 다양한 안전 기능들이 있다. 페라리 ADAS(지능형 주행 보조 시스템)와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 기능 등이다. 사고나 비상시에 대비한 예측 제동장치도 있으며, 사전 경계, 서라운드 경관, 새로운 헤드라이트, 100m까지도 잘 보이는 LED 헤드라이트도 있다. “안전과 편안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개발했습니다. 운전자가 페라리 로마를 데일리카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카엘이 말했다.

페라리도 안다. 세상에는 페라리를 운전하고 싶지만, 스포츠카 운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페라리도 잘 알고 있다. 2019년 페라리는 4대의 슈퍼카를 선보였다. 기존 페라리 고객과 슈퍼카 오너들을 만족시킬 최고 성능의 차량들이었다. 2019년 다섯 번째 차량인 페라리 로마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스포츠카를 운전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관심을 가질 차량이다. 우아함과 편안함, 낭만이 스포츠카 잠재 소비자들의 환심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확실히 짚고 싶다. 페라리 로마는 포르토피노 쿠페 버전이 아니다. 포르토피노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다. 로마는 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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