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달리면 과거로 돌아가는 패러독스의 매력.
들로리안 DMC-12 - 타임머신의 아이콘
나는 아직 드로이안이 익숙한데, 개정된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들로리안이라고 쓰는 게 맞다고 한다. 내 언어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있다. 현재로 돌아오고 싶을 때면, 들로이안 DMC-12를 상상한다. 내게 들로이안 DMC-12는 타임머신이다. 과거로 가고 미래로도 가는 자동차. 맞다. 영화 <백 투더 퓨처>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백 투더퓨처>를 몇 번 보았는지 새어봤는데, 열한번에서 포기했다. 그 보다 더 본 것 같다. 영화에서 마틴은 들로리안 DMC-12를 처음 보고 감탄하는데, 대본에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표정’이라고 써있을 거다. 내가 처음 들로리안 DMC-12를 봤을 때 그랬으니까. 외형은 1980년대 퓨처리즘의 전형이다. 페인트 도장 없이 소재를 날 것 그대로 드러냈다. 당시에는 스테인레스 스틸 가공이 첨단 기술로 여겨졌고, 그래서 스테인레스 스틸 질감을 드러내면 미래적으로 보였다. 도어는 또 어떤가. 갈매기 날개 모양으로 열리는 걸 윙 도어는 미래가 널 환영해라고 말하며 당장이라도 날아갈 모양새다. 물론 퍼득퍼득 거리는 촐싹 맞은 날개짓일 테지만. 들로이안 DMC-12은 공개 당시 파격적인 형태로 주목받았다. 직선이 강조된 매스를 선보여온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갈 때 까지 갔구나. 당시 포털사이트가 있었다면 그런 댓글이 달렸을 거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는 미래로 가야한다. 타임머신은 미지를 탐험해야 하니까. 미래에 비트코인이 얼마까지 가나 보려고 냅다 운전석에 앉으면, 이게 웬걸 들로리안 DMC-12은 과거로 안내해 준다. 문과출신인 나에게 원자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스포츠카는 다루기 너무 어렵다. 이것저것 누르다 보면 과거로 가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서도 퓨처리즘의 아이콘 들로리안 DMC-12은 30년 전으로 향한다. 88마일(시속 140km)로 달려야만 타임머신이 작동되는데, 주인공 마틴 역시 이공계는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 11번 봤는데 아무리 봐도 이공계는 아니다. 어쨌든 들로리안 DMC-12는 영원한 타임머신의 아이콘이다. 영화 속 미래보다 더 멀리 와버린 2021년에서 본 들로리안 DMC-12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타임머신이고,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미래를 꿈꾸게 하는 타임머신이었다. 물론 들로리안 DMC-12이 타임머신 아이콘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직선의 달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이 크다.
2021.05 모터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