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1.0시대의 대학생이 SNS시대에 모교를 찾았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말이 많아졌다. MSN 메신저에 로그인한 선배, 동기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곤 했다. 2003년이었고 우리들은 신입생이었다. 관례처럼 학번대표가 다음카페에 03학번 카페를 만들고 글을 올렸다. 오리엔테이션 사진부터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태들을 기록했다. 조회수는 높지만 댓글이 적은 게시물이 태반이었다. 눈팅만 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우리들의 관심은 학과생활에 집중됐다. 비밀이야기를 보란 듯이 익명게시판에 올리는 일이 잦았고, 그것 때문에 소문들이 생산됐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무심했으며, 누군가는 게시판을 관리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민감했다. 마치 학교가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굴었다. 우리는 학과생활에 스스로 발목을 담그고 빠져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강했다.
하지만 다음 카페는 개성이 없었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몇몇은 개인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일부였지만, 그들은 자기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썼다. 공개된 일기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돌려써도 누구를 언급한 건지 눈치 채곤 했다. 연애는 댓글을 타고 번졌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학우들의 홈페이지가 인기였다.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학과 사람들이 많았다. 인기 있는 홈페이지는 커뮤니티의 기능을 갖춰갔다. 그리고 게시판에 못 다한 말은 MSN 메신저로 나눴다. 휴대폰 보다 컴퓨터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는다. 계정이 사라진 홈페이지는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화면만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스무 살을 그렇게 잃어버렸다.
지금 스무 살들은 사라진 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어보였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아직도 로그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제 계정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다. 학교도 변해있었다. 캐치볼을 하던 공간에는 5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예술영화를 보기 위해 강의실을 빌리곤 했었지만 이제 학교 안에 극장이 들어섰다. 학생들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팩을 맨 혼자 다니는 남자, 여학생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남자, 카페테리아에서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 적고 있는 남자들.
“요즘 애들은 어떻게 연애하니?”
12학번 후배는 과CC의 탄생을 알려줬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XX님과 연애중이라고 표시되면 그제야 CC가 된 걸 알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두 개의 페이스북 계정이 하나로 연결된다. 현실에서도 그들은 자주 하나가 될 테지만, 페이스북은 공간과 공간의 연결이다. 한 개인의 기록이 타인의 기록과 상호교환되는 곳이다. 십년 전 인기 있는 몇몇 개인홈페이지만 커뮤니티화 되는 방식과 다르다. 홈피 주인장에게 놀러온 손님들은 방명록과 게시판에 댓글을 달아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타임라인이 커뮤니티다. 누구나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공간을 갖고 있다는 건 누구나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처럼 세입자가 많은 아파트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알려면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손님이 자주 오는 102호와 스팸메일 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203호가 한 커뮤니티에 있다. 후배에 의하면 학과행사는 여전히 많다고 한다. 동기들도 서로 친하고, 선후배의 관계도 좋다고 하지만 아웃사이더는 언제나 있다. 이제는 더욱 명확히 구별되어질 뿐이다. 그리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집은 소란하다.
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방관자였다. 구경꾼에 가까웠다. 동기들은 선배들을 쫓아다녔다. 십여 명의 신입생들이 선배들한테서 밥을 얻어먹었다. 우리들은 과방의 MT때 마시고 남은 소주박스를 들고 나와 잔디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학점이 뭔지 모르고, 알긴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신입생들이었고, 술 마시고 노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다. 그해 1학기 신입생의 70%는 학사경고를 받았다. 2학기가 되자 우리는 소문들을 만들었다. 무리들은 와해되고,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소문의 실상은 별게 아닌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당시 그들은 울거나 휴학을 했다.
이듬해 나는 인문대 앞 잔디밭에서 잠들었다. 겨울 방학 때 입대했던 동기가 백일휴가를 받고 학교에 왔다. 그와 친하다고 생각한 나는 잔디에서 함께 자장면을 먹었다. 그를 보러온 선후배 동기들은 자장면이 불기도 전에 술을 마셨다. 나는 그날 입학 후 가장 많은 술을 마셨다. 분명 주사도 부렸을 것이 확실하지만 아무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잠들었고, 술자리는 내가 잠든 사이에 끝났다. 눈을 떴을 때 여자동기의 방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바닥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방주인은 숙취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소화제라며 무슨 알약을 먹였다. 먹고 전부 게워냈다. 맥주를 마시던 아이들은 미친 듯이 웃었고 우리는 친해졌다.
이제 대학은 더 스마트해졌다. 실리를 위해 단체 활동을 하지만 심심하기 때문에 단체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줄어들었다. 할 일이 없어서, 학교에 갔지만 과방에 죽치고 앉아있는 학생들을 볼 수 없었다. 과방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선배가 와서 밥을 사준다거나 술자리에 끌고가는 풍경을 보기 어려워졌다. 아마도 단체카톡방에서 신입생들은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을 것이다. 선배 흉을 보기도 할 것이고, 오늘 어디서 술을 마실지 고민할 테다. 네이버의 밴드나 페이스북의 학과 페이지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활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소문이나 사건들은 온라인에서 발단되기도 할 것이다. 반드시 좁은 곳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어야만 학과생활이 유지되는 건 아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개인 공간이 보편화됨에 따라 학교생활이 반드시 커뮤니티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선배들도 더 이상 예전처럼 억지로 후배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학과생활이 주는 중압감은 줄어들었다. 집단 보다 개인이 우선시 된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생겼다. 그게 후배이든, 선배이든, 동기든 말이다. 시대가 변했고, 변한 시대의 대학생들은 자유, 정의, 진리 중 적어도 자유는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문대 앞 잔디는 예전보다 더 푸르다. 이젠 잔디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다. 마시면 벌금을 내야하니까. 술 취해 잔디위에 잠든 학생도 없다. 그를 깨워줄 학생도 없으며, 억지로 소화제를 먹이고 웃어줄 동기도 없다. 찾을 수 없는 페이지가 되었다.
#아레나옴므플러스 #20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