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여름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2000 SMASHING PUMPKINS Live in Seoul
호르몬 구성 요소 중에는 염세주의가 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염세주의 물질이 과다 분비되어 우울한 음악을 듣거나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는 등의 증상을 겪는다. 비관적인 생각들이 곪아 얼굴 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는데, 흔히 여드름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것이 우울을 배출시키는 신체 기능이라고 본다. 여드름은 사라져도 우울은 흉처럼 남아 비관적인 정서는 지속된다. 이 호르몬 이상은 충격요법으로 치료되어왔는데, 1980년대는 슈게이징 음악이 주된 요법이었고, 1990년대는 브릿팝과 그런지가 선진 치료 방법으로 떠올랐다. 나 역시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한탄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1990년대 후반 스매싱 펌킨스는 그런지 시대 최후의 의료진이었다. 초창기 음악은 사이키델릭이었지만, 기념비적인 3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를 발표하며 우울과 끝없는 슬픔이라는 절망적인 충격요법으로 우울한 청소년들의 ‘엠씨스퀘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내 치료제는 4집 <Adore>였다. 음악은 맞춤형 치료제 같은 거니까. 그리고 2000년이 됐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스매싱 펌킨스는 해체를 선언했다. 그들은 밴드의 무덤을 서울로 택했다. 당시 5집 앨범 <Machina:The Machines Of God> 살 돈이 없어 CD를 복제하던 나는 공연 제목인 ‘Live in Seoul’을 ‘Last in Seoul’로 기억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인지라 그들의 해체가 슬프면서도 빌리 코건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운 좋게 공연은 기말고사와 겹쳤고, 덕분에 일찌감치 잠실 종합운동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스탠딩 구역은 선착순으로 입장했기에 앞자리를 차지하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앞줄을 차지하고는 물도 안 마셨다. 한여름이라 무척 더웠지만 화장실 가느라 자리를 빼앗길 순 없었다. 힘들어 보였는지 하느님이 물을 주셨다. 소나기가 내렸다. 굵은 빗물이 오랫동안 쏟아졌고,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는 썩은 걸레 냄새가 진동했다. 해외 밴드의 내한 공연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악취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은 기대와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갑자기 무대가 암전되고 ‘Everlasting Gaze’의 기타 리프가 터져 나왔다. 엄청난 환호가 일었다. 공연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스매싱 펌킨스는 지난 활동을 분풀이하듯 마지막 콘서트에서 노래들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어려운 가사를 따라 불렀고, 나도 불렀다.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 가사들을 빌리 코건의 목소리에 중첩시켰다. 그건 진료였다. 의사에게 나의 상태를 목청껏 전하는 진료. 우울과 절망으로 점철된 노래들을 썩은 내 풍기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몸을 섞어가며 부르는 것은 즐거웠다. 웃진 않았지만 좋았다. 무대 세팅을 바꾸는 동안 빌리 코건이 하는 멘트도 재밌었다.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남들이 웃으니까 나도 웃었다. 앙코르는 ‘1979’였다. 이것도 비관적인 노랜데 달콤한 위안으로 들렸다. 유튜브에는 당시 공연 영상이 있다. 낮은 해상도긴 한데 염세주의에 심취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이후로 나의 사춘기는 낙관적으로 변했다. 성적표가 증건데, 잃어버려서 다행이다
ARENA HOMME+ 20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