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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Apr 29. 2022

서승원 전시 후기

서승원 화백을 인터뷰하고 든 생각 

Installation view of Suh Seung-Won Simultaneity-No Limit 6


<서승원:동시성-무한계> 전시 후기



요즘 나는 바늘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무엇이든 파고들 날카로운 바늘 끝에 서면 저 멀리 힘없이 늘어진 가느다란 실이 보인다. 아니 저건 실이 아니라 한때 몰두했던 과제들이다. 해결하기 귀찮아 잊기로 한 삶의 화두들. 더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더 오래 가슴에 지니고 있지 않아 형태도 갖지 못했다. 내 지난날은 거미줄처럼 숨마다 흔들렸다. 한숨을 쉬며 삼청동에 갔다.


PKM갤러리에서 단색화의 대가 서승원 화백의 <서승원: 동시성-무한계> 전시 오프닝이 열렸다. 작품만 보고 나올 심산이었는데, 내 속을 읽은 눈치 빠른 홍보담당자가 물었다. “작가님과 인사하시겠어요?” “네, 뭐 그러시죠”라고 말하긴 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름부터 어려운 전시인 데다 그림도 난해한 기하 추상! 60년간 한 우물만 파온 단색화의 대가에게 가벼운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멍청한 질문은 무례다. 나는 후회했다. 미술에 조예가 얕은 것과 미술관을 멀리해온 지난 시간이 부끄러웠다. 가방에서 명함을 찾는 척하며 기지를 발휘했지만, 떠오른 질문은 감상평에 불과했다. 별관에 전시된 최근작은 색이 독특했어요. 특히 분홍색이 인상적이었어요. 팔십대에 접어든 화백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유년의 기억을 꺼내 보였다. 꼭 들어야만 한다며 그는 70년 전 이야기를 했다. 원색 옷은 귀해 흰색 옷만 입던 사람들,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와 그 정갈한 리듬, 문창살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낸 구멍들과 그 구멍을 막으려 덧붙인 네모난 창호지 조각들, 창호지 문을 통과해 사랑채 안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 백자의 소박함도 언급했다. 그것들은 걸러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해를 창호지로 걸러내고, 광목천을 두들겨 색을 걸러내는 것. 걸러냄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순응해온 한국인의 특성이고, 한국의 문화와 정신이다.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화백은 색을 몇 번이고 걸러낸 다음 그림을 그린다. 원색은 사용하지 않는다. 걸러낸 소박한 색으로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고, 캔버스에 동일하고 균등하게 담는다. 서승원 화백은 그의 그림에 담긴 ‘동시성’ 개념도 설명했다. 그의 ‘동시성’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캔버스라는 공간에 동일하고 균등하게 구현하는 것이라 한다. 그 세계는 한국의 문화와 정신일 것이다. 서승원 화백은 동시성을 화두 삼아 지난 60년간 그림을 그렸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질문을 더 주고받았다.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60년 동안 그가 해온 고민의 깊이를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긴 시간이니까. 30년 뒤라면 모를까? 그때도 모를 거다. 팔순의 작가는 요즘 명상을 자주 하고, 무념의 상태를 지향한다고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거라면 자신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 휴대폰 게임을 습관처럼 한다. 습관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쓰고, 계획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서 그렇다. 미래를 두려워해야 하는 시기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그림을 봤다. 네모들이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었다. 그 네모들에게 이름을 붙여봤다. 아들의 이름을, 아내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살고 싶은 아파트 이름도 붙였다. 걸러낸 색으로 그린 가족과 꿈. 70년 전 사람들처럼 우리도 현실에 순응하고 소박하게 살면 행복해질까. 음, 이것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 화두에 형체가 생겼고,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거다. 택시에 올라 그림을 복기했다. 몇 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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