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노트북이 무거웠다. 두껍기도 했고, 발열도 심했다. 나중에는 배터리가 부풀었다. 과제용 폭탄 같은 것. 하여튼 노트북 가방에는 노트북 말고도 이것저것 잡다한 걸 많이 넣고 다녔다. 노트북 충전기랑 마우스, 지갑과 노트, 시집과 필통, 영화 티켓과 영수증 같은 것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한데 모아서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다녔다. 절름발이처럼 걸었던 것 같다. 노트북을 멘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는데, 그래서인지 세상이 기울어져 보였다. 나는 유독 한쪽 편만 들었다.
청계광장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작업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오래 했다. 딴짓도 했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새벽이 다 되어서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포토샵으로 하는 간단한작업인데, 양이 많았다. 시간이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시간을 쪼개 했다. 마감을 미루고 미룬 다음 마지막에야 겨우 했다는 뜻이다. 나태해지지 말자는 좌우명이다. 근데 지금 이 원고도 미루고 미루다 쓴다. 사람참 안 변한다. 작업은 새벽에야 끝나곤 했다. 하루는 날이 밝을 때까지 일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노트북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위선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취업도 못했는데, 이렇다 할 직업도 없는데. 그냥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학생 신분이라는 게 불안하고 나른할 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잘 안 하는데, 그건 내가 진실되어서가 아니라 말수가 적어서다. 출근 인파를 피해 청계천으로 내려갔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걷고 싶었다. 평일 아침의 청계천은 무심하다. 조깅하는 외국인도, 산책하는 직장인도 없다. 관광객도 없고. 왜 여기 있는지 모를 사람들만 조금 보인다. 그때가 아마 삼일교를 지날 때였던 것 같은데, 청계천 풀숲에 서 있던 왜가리가 말을 걸었다. 무턱대고 말 건 것은 아니고, 눈이 마주쳤다. 왜가리가 먼저 쳐다봤다. 뭔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눈. 먹잇감만 찾는 그 눈이 살벌해서 나도 째려봤다. 왜가리와의 눈싸움은 처음이었지만 지기 싫었다. 더는 패배하기 싫었다. 그러다 왜가리가 ‘왜?’ 하길래 ‘뭐?’라고 답했다.
그 후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우리가 천변을 함께 걸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왜가리는 수면 위를 소금쟁이처럼 통통 튀듯 걸었고, 나는 거북목에 등을 꼽추처럼 구부리고, 한쪽 어깨는 노트북 무게에 비스듬히 기운 채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라. 왜가리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자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생긴 게 자라라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그것도 중요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상태로 나란히 걸었다. 한참을 이동한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보니 겨우 관수교였다. 나는 서먹함을 없애려고 을지로3가에서 심부름하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엄마의 사무실에 가면 나는 신문을 펼쳐놓고 기사를 읽었고, 자주 못 챙겨주던 게 미안했는지 엄마는 탕수육을 시켜주곤 했다. 그때 먹은 탕수육은 요즘 것과는 달리 튀김이 바삭하고 소스는 새콤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나는 지금도 공허할 때면 엄마 사무실로 돌아가 낡은 의자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던 날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무실 터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사라진다고 얘기하는데, 왜가리가 날갯짓을 하며 인도로 올라왔다. 대뜸 날갯죽지를 내미는데 그냥 무시하기에는 나도 배운 사람이라 좀 그렇고. 가볍게 악수만 하려 했는데 그대로 왜가리는 내 손을 잡고 차로로 올라갔다. 그러자 청계천은 아스팔트로 덮이고 하늘에는 고가도로가 펼쳐졌다. 빌딩은 단층 상가로 바뀌고 앞에는 애완동물 가게들이 생겨났다. 가게 앞에는 새끼 토끼, 햄스터, 십자매, 이구아나 같은 것들이 전시됐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심부름을 하고 엄마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한참을 애완동물 숍 거리에 머물렀다. 동물 구경이 좋았다. 새끼 토끼는 어찌 저리 예쁜 걸까. 십자매의 재잘거림은 음악 같았다.
다시 펼쳐진 애완동물 가게 앞에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컴퓨터 앞에서 안경을 닦던 엄마의 모습. 그런 엄마 뒤에 앉아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나. 깜빡이는 커서의 무정함 같은 것들이 떠올라, 엄마에게 탕수육을 시켜달라고 조르고 싶어졌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왜가리가 토끼 앞에서 군침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