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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May 13. 2022

서른아홉, 사업을 고민할 나이

서른아홉 문득


분리수거를 하며 퇴사를 생각했다. 일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조금 지쳐있었다. 잠이 부족했고, 더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저 동면에서 깬 곰의 기분이 궁금했다. 휴가가 끝난 것 같을까? 플라스틱들을 버린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현관 앞에는 빈 상자들이 남아있었다. 내 두 팔로는 아우를 수 없는 양이었다. 우리집은 그렇다. 매주 재활용품이 품지 못할 만큼 쌓인다. 일요일 마다 꼬박 비워내지만 다시 찬다. 집안은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냉장고를 열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데, 필요한 것만 샀을 뿐인데, 집안에도 통장에도 남은 건 없다. 망국의 구겨진 화폐를 펴듯 배달 상자를 반듯이 펼쳐 모았다. 가벼운 박스는 손에 들고, 무거운 박스는 발로 툭툭 차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발밑의 폐지가 내 커리어를 닮았다.


직장생활이 학창시절보다 길어졌다. 13년차 매거진 에디터. 나이는 서른아홉이다. 시간은 내가 원하는 속도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긴 이십대를 바랬고, 건강한 삼십대를 누릴 줄 알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은 일 보다 더 많았다. 봄의 설렘이나 가을의 고독 같은 것도 몇 번은 놓쳤다. 책이 손에 안 잡혔고, 화창한 휴일에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둠이 좋았다. 휴대폰 화면이 밝게 빛나는 곳, 시간을 의미 없이 낭비할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전선을 이탈한 군인의 마음이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데 내게는 의무가 있는데,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불이 무거웠다. 누워있는 내 곁에 돌 지난 아들이 다가와 활짝 웃었다. 꽃도 그렇게 예쁘게 피진 않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아들을 천정까지 안아 올렸다. 그리고 한 참이나 품에 껴안은 채로 이 방과 저 방, 거실과 주방을 옮겨 다니다 베란다로 나가 서울 풍경을 보여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을 하겠다고 말한 건 지난 해 여름이었다. 이런 저런 걸 해보겠다면서 구체적인 설명은 못 했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다. 정교한 사업 계획이 없다. 사업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자고로 사업이란 목표는 명확해야 하고, 내용은 간결해야 하며, 수익 모델은 안정적이어야 한다. 나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갖추지 못 했다. 내가 가진 건 지금도 줄어들고 있는 삼십대의 시간뿐이다. 그러므로 서른아홉의 나는 불안하다. 분명한 것은 사십대에는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나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월급쟁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오십대까지 경제활동이 가능한 기틀을 마련해야 할 나이다. 그러니 나는 사업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한 시가 급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사업을 하냔 말이다! 아내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지금 나는 회사에 묶여있고, 아내는 퇴사했다. 육아를 전담하겠다며 먼저 퇴사한 건 아내였다. 아내의 커리어가 아깝다. 아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어렵게 입사한 회사인데, 이름만 대면 아는 곳인데, 아내를 지켜주지 못 했다. 나는 아내의 결정에 고개만 끄덕였다.


마흔 살에 다가서면 초연해진다. 자만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역량을 안다. 나는 특출 난 사람이 아니다. 전문적인 기술도 없다. 마당발이 아니라 영업능력도 시원찮다. 그러니 내 사업은 기발하고 세상을 놀랠 킬 대단한 것은 아닐 게다. 이제 꿈은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능성에 목매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앞세운다. 사업 구상은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다. 내겐 도전할 체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주변에서도 무턱대고 부딪혀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럴 나이가 지났다는 걸 알아서다. 사업에 실패한다 하여도 다시 들어갈 직장을 구하긴 쉽지 않은 나이다. 회사에 머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현명한 걸지도… 서른아홉의 나는 번지점프대 위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뛰어내려야만 한다. 불안을 없애려면 그래야만 한다.


다시 내려간 분리수거장에서 나는, 박스에 붙은 택배 송장을 뜯어냈다. 테이프도 모두 잡아뗐다. 공들인 취재, 밤새워 쓴 기사들이 과월호로 창고에 묻히듯, 찢어진 폐지가 바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분리수거를 마쳤을 즈음 폐지들의 무덤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건 봄비였을까? 계시였을까?



노블레스맨 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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