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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May 08. 2017

라면이 먹고 싶어서

라면이 먹고 싶어서 잘츠부르크에 갔다.

한국을 그립게 만드는 것은 몸이다. 몸은 내 의지를 배반하고, 한국을 애달프게 원한다. 자동차 출시 행사를 마치고, 잘츠부르크 공항에 남겨진 선배와 나는 위장의 이기적인 욕구에 굴복한 상태였다. 우리는 라면이 먹고 싶었다. 하얀 플라스틱 그릇이 담긴 꼬들꼬들한 면과 잘 풀어헤쳐진 허연 계란, 더 작은 하얀 종지에 담긴 김치와 단무지. 도서관에서 파는 2500원짜리 라면이 급했다. 그 얼큰하게 매운 인공조미료가 체내에서 모두 배출되니, 머리는 맑고 몸은 오스트리아 공기처럼 맑았지만 아쉬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깨끗한 몸이 아니라, 불량식품을 아무리 먹어도 건강하게 버텨주는 몸이었으니까.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지나며 우리는 멋진 것을 먹었다. 콧수염에 부드럽게 맺히는 생생한 거품, 씁쓸한 홉의 향이 코끝을 울리는 차가운 독일의 생맥주. 검고 미지근한 것이 목구멍을 아리게 쓸고 넘어가, 위장 벽을 따끔거리게 찌르는 에일, 얼굴은 붉어지는데 해는 중천이고, 노천 테라스의 테이블에는 따뜻한 와플이 올려져 있는 상황. 그런 것 말고. 그냥 라면이 먹고 싶었다. 맥주든, 사슴고기든, 고소한 빵이나 탄산수도 지겨웠다. 그냥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인스턴트 사발면이 먹고 싶었다. 해외에 오래 체류한 것도 아니었다. 3일 정도 지났을 뿐. 한국에서도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식이나 밥, 김치는 자주 먹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라면이 땡긴다니, 이상했다. 우리가 전날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혹은 조식이 너무 느끼했던 건 아닐까? 출장이 끝나고 해방의 공기를 마셔서 그럴지도 모른다. 원인을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카페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공항에서 라면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선배가 물었다.

“잘츠부르크 시내 가면 라면 팔까?”

“한인민박에서 육개장 사발면 판다고 나오는데요?”


공항 로비에 앉아 한인민박을 검색했고, 예약했다. 한국인들이 자주 오는 곳으로 한인식품이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해외에 숱하게 나왔었지만, 라면이 당긴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잘츠부르크가 우리를 유혹한 것일 수도 있다. 음악의 도시로서 그동안 모차르트의 강렬한 멜로디로 관광객들을 유혹해왔지만, 클래식에 별 관심 없는 우리에게는 안 통했을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묘안을 고민하다가, 요즘의 인공지능인지 알고리즘인지 무언가를 활용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마수를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 중세의 성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도시에는 분명 마녀가 살았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마녀는 지금도 성 안채 깊숙한 곳에서 관광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앓으며, 관광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마녀의 수프에 모차르트 생가를 한 스푼 넣고, 사운드 오브 뮤직 생가를 한 스푼 넣고, 장미정원과 길거리 오케스트라를 비벼 뿌린 다음 펄펄 끓이면, 그 수증기가 오스트리아의 구름이 되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1도 안 통하자, 라면수프를 한 숟갈 넣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몸은 잘츠부르크 마녀의 꼬임에 넘어가 잘츠부르크에 당도했다.


한인민박은 잘츠부르크 중심가에 있었다. 미라벨 정원의 맞은편이었다. 민박집에서 걸어서 나오면 잘츠부르크의 구도심을 모두 관광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북촌 게스트하우스 정도의 위치이겠다. 하지만 우리는 잘츠부르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 여기서 비행기를 타면 뮌헨에서 인천행을 탈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미라벨 정원 앞에서 내려 20리터짜리 캐리어 두 개를 끌고 3분 정도를 걸으니, 한 적한 골목의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빌딩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집이라고 하기에는 컸다. 19세기에 지어졌을 법한 오스트리아 건축양식의 아파트였다. 현관문은 검고 대단히 거대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여기가 맞는 곳인지 주소를 확인했고, 짐을 풀고 라면을 먹을지, 라면을 먹고 씻을지를 고민했다. 아니, 씻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선배가 벨을 누르자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독일어였다. 나는 좀 당황했는데, 선배는 형답게 자신 있게 말했다.

“민박 예약했는데요.”

그러자 중년 여성이 교양 있는 서울말로 2층으로 올라오시라며 문을 열어줬다. 거대한 문은 무게도 제법이었다. 문을 양손으로 힘 있게 밀었다. 문의 무게는 사람을 정중하게 만든다. 두 손으로 문을 열면 공간을 접할 때 신중해진다. 예의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로비는 비어있었고, 대리석 바닥이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중앙에는 넓고 높지만, 층은 낮은 계단이 멋스럽게 있었다. 클래식 연주회를 보러 가는 턱시도의 무리들이 거닐법한 계단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타고 2층에서 내렸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방문을 노크하자, 주인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었다. 실내는 다소 어두웠고, 공기는 무거웠다. 그녀는 신발부터 갈아신라며 실내화를 내주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매우 조용했다. 우리는 살금살금 걸었고, 캐리어를 들고, 주인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지하 1층과 1층,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안에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층을 오갈 수 있었는데, 계단의 폭이 매우 좁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어야 했고, 새하얀 계단 벽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라면을 먹기 위한 여정이 갈수록 힘이 부쳤다. 씻고 먹을까?


게스트하우스 방은 1층에 있었다. 방에는 2층 침대 두 개가 병렬로 있었고, 작은 화장대도 있었다. 창문이 있었고, 빛이 들었다. 대체로 건조했으나 쾌쾌한 냄새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만 청결했다. 교양 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주인장의 성격이 느껴졌다. 물건들은 다소곳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흠잡을 곳은 없었다. 깨끗한 게스트하우스는 쾌적해서 좋지만, 이 곳은 마치 가정집 같기도 하여서, 중학교 때 이민 간 동창의 집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친구 엄마가 무서운 분이라서 함부로 놀 수 없는 집 말이다. 어쨌든 손님으로서는 불편하지 않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는 라면이 먹고 싶었다. 캐리어를 방안에 두자 기력이 빠졌고,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사장님 여기 한식 좀 먹고 싶은데요.”

선배는 2층으로 올라가 주인장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주인장은 이미 책상 앞에 서서 종이 몇 개를 꺼내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사용하는 데이패스(Daypass) 교통티켓과 잘츠부르크 관광안내지도, 게스트하우스 이용 규칙 등을 설명했다.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는데 꼭 필요한 정보였으나, 우리는 관광을 하러 온 게 아니었다. 라면만 먹고 다음날 일찍 떠날 심산이었다. 우리는 이미 위장의 노예였고, 위장은 더 거세게 MSG를 넣으라고 재촉했다. 나였으면 알겠으니까. 한식당이나 알려달라고 했겠지만, 선배는 달랐다. 그녀의 말을 모두 경청했고, 정중하게 사인했다. 확실히 선배는 형이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태양은 작렬했고,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는 앞을 보기 어려웠다. 잘츠부르크는 오래된 도시이지만, 구획이 잘 나뉘어 있었다. 굳이 지도를 보며 걸을 필요도 없었다. 초행길인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학생이거나, 이 지역에 주민처럼 보이고 싶었다. 관광 따위에는 초연한 그럼 사람이고 싶었다. 미라벨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강가로 향했고, 길을 두 번 건넜고, 조금 걸으니 음대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 대학교였다. 건물이 두 채 정도 되는 매우 작은 캠퍼스였다. 큰 캠퍼스는 필요 없어 보였다. 학교 문을 나서면 공원이 펼쳐지고, 그 공원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 도시 자체가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학생회관 1층에는 한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인사동에 있을 법한 한식당의 분위기였다. 나무 테이블에, 2000년대 초반 분위기의 바가 있었다. 서빙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 유학생이었고, 손님들은 한국인 유학생이거나, 학부모이거나, 주민이거나, 아시안이었다. 우리가 받아 든 메뉴도 인사동 백반집의 메뉴와 비슷했다.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를 시켰다. 라면을 먹어야 하는데, 찌개를 먹으면 라면 생각이 사라질 줄 알았다. 순두부찌개는 맵지 않았고, 김치찌개는 짜지 않았다. 로컬라이징에 성공한 한식당이었다. 우리의 입을 만족시킨 맛있는 것은 콜라뿐이었다. 그래도 한식이었고, 부족하지만 MSG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한 체험을 했다. 어쨌든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라면이 고팠다. 잘츠부르크의 마녀를 만나서 어디서 재료를 납품받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분명 이런 식당의 냄새였다면 우리가 잘츠부르크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 무렵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낮동안 텅 빈 게스트하우스는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보였다. 혼자 여행 온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식탁에서 육개장 사발면을 먹고 있었다. 그들과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라면이 먹고 싶어 이 곳에 왔으리라 짐작만 했다. 마녀의 유혹을 견딘 한국인은 없을 테니까. 그 순간 선배는 호기롭게 사발면 2개를 주문했다. 나는 물을 올렸고, 물이 끓는 동안 사발면 껍데기에 쓰인 첨가물을 읽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한인들은 서로 말을 아꼈다. 고개로 인사 정도만 할 뿐. 게스트하우스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정숙했다. 그 순간 궁금했다. 교양 있는 도시인데, 음악의 도시이며, 예민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이 곳에 갇힌 잘츠부르크의 마녀는 라면 수프를 끓이면서 무슨 음악을 들었을까? 지긋지긋한 교향곡? 한식당의 K팝? 혹은 EDM? 마녀의 몸이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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