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를 나오니 새가 되어 있었다. 선배의 어깨에 착지했다.
나는 가끔씩 말이 안나올 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새가 되어서 그런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작은 목소리로 재잘거릴 뿐 남들에게는 웅얼거림으로 들린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감상이 타식으로 녹아내려진 것일 뿐이다. 새로 변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잘츠부르크에서 발견했다.
선배와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은 미라벨정원 맞은 편 골목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빠져 나오면 작은 골목앞에 뱅앤올룹슨 매장이 있고, 좁은 인도를 쫑쫑거리며 걷는 주민들이 있었다. 길이 좁아서? 아니면 배가 고파서였을까? 나는 몸이 가뿐하게 느껴졌고, 그때부터 새가 되었던 것도 같다.
새가 된다고 해서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수리처럼 바람을 타고 공중을 배회하는 상상을 하지만 그건 내게 불가능했다. 내가 날 수 있는 높이는 지상에서 30센치 정도가 최대다. 호날두의 서전트 점프는 1미터가 넘는다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힘껏 날아 선배의 어깨에 착지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외다리 해적 선장의 어깨에 붙은 못되먹은 앵무새 같았달까?
미라벨 정원은 정말 가깝다. 강 하나만 건너면 된다. 그 강의 크기라는 게 지방 소도시의 개천 보다 조금 넓은 정도다. 2차선 차로가 있고, 넓은 인도가 있다. 사람들은 그 다리위를 바쁘게 오간다. 사실 잘츠부르크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고, 조사하는 것도 귀찮았다. 내 눈에 담기는 것이 나만의 잘츠부르크리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잘차흐강을 건넜다.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잘차흐강은 굽이지며 흐르고, 수면에는 백조가 유유히 떠있는데, 그 백조에게 눈길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여기서는 당연한 것, 익숙한 것, 지겨운 것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도 않았다. 하늘은 청명하고, 파란 하늘을 담은 강은 하늘색이었으며, 해가 구름 밖에 나오며 강은 빛조각을 흩뿌렸는데도 여기서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당연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연말 연시에 구세군 박스에 지폐 몇 장을 구겨 넣는 것도 아름다움에 포함될까? 마음을 저밀게 만드는 것들에 익숙해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선의와 아름다움에 피로를 느낄까?잿빛 서울에서 온 선배와 나는 다리에서 바로크풍의 도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강을 건너면 구도심이 펼쳐진다. 구도심은 바로크풍 건축물들이 모여서 블록을 만들고, 골목을 낳았다. 골목의 폭이라는 게 차량 한 대 지나다닐 정도로 좁고, 좁아서 아름답다. 상점들은 철판으로 만든 간판을 건물 외벽에 걸어 중후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골목의 상점들 사이로 난 구멍을 지나가면 새로운 골목이 나오거나 광장이 펼쳐졌다. 그 광장은 너무 방대하게 느껴졌고, 광장 끝에는 인물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마을의 건물들은 3층 내외로 높지 않지만 빼곡하게 이어져 성벽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호헨잘츠부르크성이 보였다. 호헨잘츠부르크성은 구도심의 중심이다. 나는 독수리가 아니라 선배의 어깨에 탄 앵무새라서 이런 추측을 왱알거렸다.
그러니까. 오스만제국인가요? 하여튼 그 옛날 십자군 전쟁 시대에 페르시아가 동유럽에 쳐들어왔잖아요. 그래서 동유럽의 오랜 도시들은 요새처럼 지어졌다고 들었어요. 농경시대의 마을은 평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성은 산에 지었죠. 그리고 종교시설이나 시장 등 핵심 시설은 성 바로 아래에 지었고요. 핵심 시설은 곧 성벽이었어요. 성 벽 앞에는 강이 있고요. 페르시아군은 강을 건너고, 성벽을 넘어야 성 앞에 도달할 수 있었어요. 성에서 불기름이나 화살을 쏘아대면 페르시아군은 이기기 어려웠을 거에요. <왕좌의 게임>을 보면 도시가 그렇게 생겼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리 출세한다고 해도 성벽안의 시장의 예술가가 되어 화살받이가 될 뿐이에요. 성공한다고 해도 살아남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고요. 선배가 내 말을 귀 담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사진을 찍느라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잘츠부르크는 넓은 평야다. 지평선을 이룰정도로 넓다. 그 곳에 강을 중심으로 두 개의 산 봉우리가 마주보고 있다. 둘 다 높지 않다. 오래된 가옥들 사이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금새 오를 정도다. 대학로의 낙산 정도랄까? 올라가면 작은 공원과 성당이 나온다. 그리고 연인들이나 십대들이 여기서 일탈을 하는 상상을 했다.
호헨잘츠부르크성으로 가는 길. 우리는 상점들로 채워진 요새를 지나며 말과 마차를 피해 멈춰야했다. 관광객들은 마차를 타며 사진을 찍었다. 마차의 관광객들보다 말이 더 인상적이었다. 거대했고, 부지런했다. 같은 길을 평생 반복할텐데 그런 말도 지겨운 날들이 있을까? 나른함이 느껴지는 것은 선배의 표정이었다. 우리는 상점 거리 끝에 위치한 펍의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오스트리아 맥주를 두 잔 시켰다. 흑맥주였고, 포트로 마셨다. 나는 새니까. 술을 잘 못 마시니까. 몇 모금 마신게 전부였다. 우리는 잘 모르는 도시의 낯선풍경에 동화되어있었다.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오래된 관광지를 구성하는 것은 낡은 건물과 동양인 관광객이니까.
술을 마시고, 해가 저물것 같아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광장을 지났고, 광장 끝의 잘츠부르크 성당에 들어갔다. 선배와 나는 신앙심이 없다. 선배에게 종교 이야기를 들은적 없고, 나 역시 신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다. 관심 밖의 대상이지만 바로크풍 성당에 들어서면 그런 생각이 지워진다. 머릿속이 포맷되고 로만카톨릭 세컨드에디션이 설치되는 듯 하다. 그것은 건축의 힘에서 비롯한다. 층고가 높은 건물에 들어서면 소리가 울린다. 성당을 구성하는 소리는 기도와 적막이다. 기도는 작은 웅얼거림이고, 그것은 숨소리처럼 낮고 깊이 퍼진다. 그 숨이 높고 둥근 천정으로 올라가며 하늘의 신에게 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도라는 것이 천정의 벽화를 뛰어넘지 못하고 반사되어 내려와 성당안의 사람들을 짓누른다. 짓눌린 우리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면 거인의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성전의 조각은 그게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인물일테고,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 규모에 압도된 우리는 고개를 들어 똑바로 마주하기 괴롭다. 무의식에 자리한 경건함과 조각의 표정과 태도 때문에 우리는 작아지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거대한 조형물 앞에 서면 칸트가 숭고함을 주창했던 것이 이해된다. 그래서 나는 칸트를 상상했다.
한정판 가죽 양장 노트를 사려고 이 골목에 온 칸트는 물건이 다 팔려서 헛걸음 한 것에 짜증내다가, 주인에게 성질을 조금 부리고, 주인은 그런 칸트에게 또 성질을 부리고, 둘의 목소리가 커지니까. 왜 배운사람들끼리 그러냐며 옆 친구가 칸트의 어깨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상점밖으로 나서고, 상점 안의 사람들은 혀를 찬다. 잘츠부르크 사는 친구는 모차르트의 최신 교향곡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하지만 칸트는 집어치우라면서 노천카페에 앉아 흑맥주를 연거푸 마신다. 노트살 돈이 굳었으니 술이나 마시자는 심보다. 술에 취해서 손톱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모차르트 교향곡을 흥얼거리는데, 모차르트 팬은 그런 칸트가 부끄러워 자리를 뜬다. 칸트는 친구를 쫓아 상점거리를 빠져나오니 넓게 펼쳐진 광장을 마주한다. 그리고는 광장 동상 옆에서 토를 한다. 친구는 대낮부터 무슨 짓이냐며 화를 내고, 칸트는 그제야 부끄러운지 목이 마르다고 애달픈 소리를 한다. 사람들은 그런 칸트를 보며 코를 쥐어막고, 성당으로 들어간다. 칸트는 술이 덜 깨었는지 곱상한 부녀자를 보더니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여자는 이미 저 멀리 성전앞에 서 있다. 칸트는 여자 얼굴을 재차 보려고 성전 앞에 다가 갔는데, 그때 마주한 것은 조형물의 압도적인 크기이다. 그 규모에 짓눌린 칸트는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이건 술과 여자 때문이 아니라 조형물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자신이 방금 숭고한 경험을 했다고 설명하고, 친구는 그런 칸트의 뒷통수를 때리며 그 여자 유부녀라고 질책한다. 훗날 독일로 돌아온 칸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순수이성비판의 초고를 쓰게 되는데…. 어쨌든 인류의 발견이란 다 술과 여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던가.
선배와 나는 성당을 빠져나왔다. 땅거미가 등장할 시간이었지만, 섬머타임이라 그런지 노을이 저무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저녁이었음에도 세상은 밝았다. 호헨잘츠부르크성은 걸어서 오를 수도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를 어깨에 단 선배는 걸을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2만보 이상 걸었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성당 뒷골목이 지름길이었다. 지름길은 공동묘지였다. 장미를 비롯한 아름다운 꽃들이 묘비를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이 곳이 어떤 부자의 가든이거나, 꽃을 사랑하는 여사님이 관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묘비를 읽고서야 여기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묘지조차 아름다웠다.
케이블카는 엘리베이터처럼 빨랐다. 금새 호헨잘츠부르크 성에 올랐고, 성은 또 다른 마을이었다. 광장이 있고, 나무가 있고, 상점이 있으며, 여러 회의실과 방이 있었다. 성 내부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면 화장실이 나오고 상점이 나왔다. 우리는 계단을 올랐고,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당도했다. 하늘이 가까웠다. 성벽에 서자 잘츠부르크 도심이 한 눈에 보였다. 아니 한 눈에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풍경이었다. 성벽에는 카페테라스들이 있는데, 우리는 블랙커피 두 잔을 시키고 성벽 자리에 앉았다. 커피잔 너머로는 구름이 있었다. 드넓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해는 강한 힘으로 구름에 구멍을 내고 오렌지빛을 내리쬐었다. 하늘에서 내리쬔 빛이 잘츠부르크 외곽 마을을 동그랗게 비췄다. 스팟 조명을 켠 것처럼 하늘과 태양과 대지가 그림처럼 보였다. 바로크풍의 도시는 작아보였고, 그 작은 마을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으며, 그 사람들이 장미꽃 가든을 지나 잘차흐강을 건너는 것도 보였다. 미니어처 세계였다. 성의 주인은 이 풍경에 익숙해 아랫동네 사람들이 아랫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작고 하찮은 존재로 말이다. 그리고 날지 못 하는 새가 된 나는 새의 눈으로 이 성의 풍경을 상상했다. 우연히 마주한 도시에서 맞닥뜨린 광경은 진정 숭고했다. 대지를 비추는 태양을 경건하게 느끼고, 신을 두려워하며, 하늘에 향해 감사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그리고 선배와 나는 그 숭고함의 여운을 간직한 채 기념품샵에서 볼펜과 엽서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