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을 걷다 1990년 서울을 마주했다.
리스본은 내게 소설의 제목이었고, 야간 열차가 지나는 곳이자 호날두가 몇 십번은 들락거렸을 도시였다. 그 외에는 대항해시대 게임에 나오는 항구 정도로만 기억했다.
그러나 나는 리스본이 좋았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고, 붉은 사막과 붉은 지붕 그리고 황폐한 풍경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좋았다. 그것은 리스본을 발음할 때 입안에 감도는 부드러움 때문이다. 리스본은 본드를 연상시키고, 그 옛날 교복입은 형누나들이 누가 뒷산에서 본드를 불었다며 소리죽여 떠들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역업이 성행하던 15세기 바다로 향하던 작지만 부자나라, 영화에만 있는 낭만적인 해적들, 풍요로 가득한 항구의 모습이 리스본을 발음할 때 떠오른다. 내게 리스본은 1990년 누나와 형, 조악한 영화로 이루어진 노스탤지어이다.
노스탤지어는 현실의 도피처이다. 그래서 리스본을 산책하기로 결심했을 때 조금 긴장했다. 내게 리스본은 현실을 감당하지 못 한 사람들이 잠시 머물거나, 영원히 숨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찬 사럼들이 모이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런 도망자에게도 정의는 있을까? 겁쟁이들이 모인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붉은 기와를 쓴 노란색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서로에게 기댄 든 한 광경, 보도블록의 타일들은 붙잡힌 소매치기와 도망자들의 빠른 걸음을 고스란히 간직했고. 나는 그런 흔적들이 정겨우면서도 불안했다. 불안해서 의심했다. 리스본은 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그게 풍경이든, 사람들의 태도이든, 맛없는 음료수이든 어떤 형태로든 나를 한 번쯤은 괴롭힐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가방은 집어치우고, 바지 주머니에 신용카드 한 장만 넣었다. 아이폰과 이어폰을 들고 호텔을 나섰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리스본이 비겁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스본은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도시이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밝다. 단지, 나는 1990년의 익숙한 공포를 떠올렸고, 그 노스탤지어가 나를 위축시켰다. 그 뿐이다.
낯선 도시를 산책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정도는 외워둬야 한다. 큰 건물이나, 공원 같은 장소를 외워두면 좋다. 우리는 차량을 타고 호텔로 갔는데, 분수대가 있는 로타리를 지나서 검정 통유리 빌딩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랐다. 이 정도면 된다. 걸음이 나를 신비한 곳으로 이끌 때에도 주변을 살펴야 한다. 너무 여행자처럼 두리번 거릴 필요는 없다. 눈에 들어오는 큰 건물과 독특한 것 정도만 외워두자. 내가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이동했는지도 알아두면 좋다. 구글지도에 매달리며 길을 다닐 필요는 없다. 여행자처럼 생겼지만, 유학생처럼 보이고 싶었고, 초행자처럼 보이기는 싫었다. 만만해 보이는 건 질색이니까. 한 가지 문제라면 리스본은 거미줄 같은 도시가 아니라 제멋대로 만들어진 골목으로 가득한 개미굴 같은 도시라는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지상에는 비카선이라는 트램이 다니고, 비카선은 언덕을 오르 내렸다. 높낮이가 있는 지형이 독특했다. 비카선을 타고 골목을 오르면 가옥들 사이로 테주강이 보였다. 리스본은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데, 대서양에서 밀려온 파도가 그대로 굳어서 만들어진 것 처럼 지형에 굴곡이 있다. 이정표를 보아도 거리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이 즐비한 시장을 걸었다. 기념품 샵이 있고, 노천 카페들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셨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기는 어려웠다. 누군가 만났으면 했다.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만나 공통의 주제로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것이 정치일 수도 있고, 경제에 대한 이슈여도 좋다. 사실 그런 것들보다 영화나 문학이나 그런 돈 안되는 것들에 대해 떠들고 싶었다. 오늘 날씨는 너무 맑아서 온몸이 타버릴 것 같은 데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그런 의문을 제기하면, 나도 몰라. 지금 내가 남걱정 할 때가 아니야라고 말해줄 사람이 그리웠다. 그때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수염이 있는 남자였다. 여행자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뻔하다. 원하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친절하다. 친절한 사람은 바라는 게 있고, 그것이 어려운 부탁이기에 친절하게 구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다정하지 않다. 세상이 그러니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없는 세상에서 착한 사람은 사기꾼 아니면, 어떤 주제에 휘둘리며 입장을 바꿀지 모르는 내일의 적이다. 그 남자는 내게 다가와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서 왔냐고, 무시했지만, 남자는 내 길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웃고 있어서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덩치는 나 보다 크고, 그는 이 복잡한 시장에 패거리가 있을테니까. 한국. 짧게 답하자 그는 강남스타일 춤을 추어가면서 아는 척을 했고, 몇가지 한국어를 던지며 웃었다. 낯선이의 웃음은 정말 괴롭다. 그에 맞춰 웃어줄 필요는 없다. 이게 웃긴 상황도 아니고, 웃어야할 의무도 없으며 무엇보다 그가 매우 의심스러우니까. 무표정하게 지나치려 하자 그가 다시 내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파티 좋아하냐고. 그제야 분명해졌다. 약 장수였다. 관광객들에게 약을 파는 남자였다. 그래서 하루에 몇 건이나 성공하겠나 싶었다. 아니 몇 푼이나 벌겠나 싶은 것이다. 나는 그의 고객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생각 없다고 말했고, 그러자 그는 표정을 바꾸며 다소 진지하게 얼마냐 있냐고, 싸게 준다고 말을 바꿨다. 자신의 코카인이 매우 품질이 좋다는 말도 했다. 영화속 클리쉐 같지만 모든 약장수들은 자신의 약이 최상품이라고 선전한다. 현금을 안쓴다고 말하자. 그는 안녕이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그가 돌아설 때의 표정은 무거웠고, 나는 그제야 그가 편하게 느껴졌다. 감정을 드러낼 때, 솔직한 사람을 만날 때의 익숙함이다. 길거리에서 마약을 파는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그는 그늘에 있다가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다시 다가갔다.
리스본에는 볼 것이 많다. 아주 특별한 무언인가를 꼽으라면 그런 것은 없다. 대신 풍경이 있다. 마약상과 같은 바쁜 거리의 사람들. 여행자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좁은 골목의 비카선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피곤한 표정의 시민.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는 노인들. 그리고 높은 하늘. 뻔한 샵과 뻔한 상품들. 나는 살 게 너무 없어서 무인양품에서 티셔츠를 하나 샀다. 그냥 필요했다. 또 명품샵 언덕에서 유모차를 밀고가는 사람들. 그들 보다 조금 더 빨리 걸어서 언덕 위에 올랐다. 그러자 내리막이 있었고, 내려가니 새로운 가게들이 나왔다. 이 곳에 출근하는 알바생들은 무슨 생각할까? 뜨겁고, 걷기 힘든 곳이었다.
거리에서 예술가들이 비누방울로 쇼를 했다. 아이들은 좋아했고, 사람들은 그 광경을 찍었다. 나는 조금 더 걸었다. 넓은 광장이 나왔다. 호시우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비둘기와 갈매기가 노숙자 주변에서 부스러기를 찾았다. 광장은 비었고, 그늘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취했다. 리스본의 시민들은 무엇인가를 팔았고, 오직 관광객들만이 휴식을 즐겼다. 조금 더 걸으니 알록달록한 거리가 나왔다. 카누였다. 테주강에서 타는 카누가 벽에 걸려있었다. 그 수는 너무 많아서 지붕이 벽에 달린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서 카누를 타고 리스본의 모든 벽들과 파도 같은 지형을 헤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스본의 벽은 대부분 상아색이고, 지붕은 붉은 색이다. 그것이 정책인지 자연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길을 잃기가 더 쉽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나서 구글에서 리스본을 검색했을 때 알았다. 리스본은 서울만큼이나 큰 도시이고, 내가 거닌 곳은 리스본의 시내 정도였다. 그것도 시내의 일부였다. 작은 지역을 돌아다니고 리스본에 대해 잘 아는 것 처럼 굴었다. 큰 선글라스를 쓰고, 호날두처럼 머리를 한 남자들이나 반짝이는 금속을 몸에 걸친 여자들이나. 남쪽 특유의 화려한 악세서리를 한 사람들이 리스본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삭막하고, 뜨거우며, 건조하고, 모래바람이 불고, 마당에서 빨래를 걷는 아줌마는 몹시 뚱뚱하고, 인상을 쓰고 있었으며, 오늘 하루도 지겨운 날이라고, 온갖 신경질을 부릴 듯이 우리를 쳐다봤다. 내게 그것이 포르투갈의 민낯이었고, 나는 그 얼굴이 좋았다. 1990년 누가 본드를 불었고, 선생님에게 얼마나 거칠게 맞았는지를 자랑하던 그 형과 누나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이다. 불안한 노스탤지어와 함께 리스본의 바다에 섰다. 과거 항구였던 곳으로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형물이 있었다. 마치 소비에트 유산처럼 생긴 조형물이라 조금 놀랐다. 바다는 짙은 색이었고, 하늘은 흐렸다. 지붕들과는 달리 칙칙했고, 그게 1990년 한강의 겨울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