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친구들을 만드는 관계의 확장성에 관하여.
우리는 왜 친구를 찾을까?
구정이 조금 지난 평일 늦은 밤, 친구 둘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근처에서 술 마시다 운전이나 부탁하러 왔다며 맥심 모카골드 한 상자를 들고 말했지만, 사실 미안한 건 나였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카톡이라도 보낼 수 있지 않았나? 계절에 한 번쯤은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조차 하지 못했던 시간이 부끄러워 아무 말이나 던지고 말았다. 카톡 친구는 늘어나지만, 여전히 친구들은 조금 미뤄두게 된다. 그래도 이해해줄 것 같으니까.
‘보조 두뇌’는 23년 1분기 트렌드다. 이젠 보조 두뇌 없이 생각하는 건 꺼림칙하다. 외국 영화 배우 이름이 가물가물한 나이가 돼서 그렇다. 요즘 내 보조 두뇌는 마이크로소프트 ‘빙’이다. 검색 엔진일 땐 효용성이 없다고 느꼈는데, AI로 컴백한 지금은 꽤 쓸만하다. 빙에게 “친구란 뭐냐 설명 좀 해봐라” 물으니 이러더라,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 예를 갖추어 정을 나누고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음, 우리가 예를 갖춘 것 같진 않지만, 그 외의 설명은 대략 맞다. 또, 빙은 이렇게 덧붙였다. “친구는 항상 내 편이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며,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라고.
친구가 필요한 이유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 말고도 많다. 좋은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으므로,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재미없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라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말 몇 마디의 위로일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친구에게 바라는 것은 내 푸념을 묵묵히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는 인내심 아니겠나? 아니면 내 고민은 하찮은 농담으로 치환해 고통에서 잠깐 해방되도록 도와주거나. 이 외에도 ‘찐친’이 아닌 포괄적인 개념의 친구는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존재,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개체이자 사회적인 활동의 구심점, 혹은 우리를 도전하게 하고, 잠재력을 발휘하게 돕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우군 정도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친교를 맺고자 하는 본능이 있으니 친구를 사귄다는 건 살아가는 데 중요한 활동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맥심 커피를 타면서 들었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는데, 괜히 마음이 편했다. 스트레스가 지나가는 태풍 같았다. 이건 보조 두뇌도 모르는 내 속마음이다.
가상현실의 가상친구
가상현실은 2020년대 들어 자주 언급되고 있다. 1990년대에 유행어 ‘가상현실’이 재등판한 배경에는 VR기기가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줄여서 ‘VR’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소리가 있었다. VR기기를 착용하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활동하게 될 날이 오면 모를까. 아직은 꿈 같은 소리다. 하지만 미디어에선 ‘메타버스’란 용어가 3D 게임과 함께 언급되기 시작하며, 앞으로 사람들이 전부 가상현실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처럼 예언했다. 믿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가치가 상승했고, 마침내 금융의 탈중앙화가 성공한 듯 보였고, 블록체인 기반의 투명하고 거래가 쉬운 NFT가 누구나 자본가로 만들어줄 듯 보였다. 심지어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란 멀쩡한 사명을 ‘메타’로 바꾸고 새출발했다. 실체가 없는 차세대 디지털 기술은 비눗방울처럼 무지개를 품고 부풀었고, 높은 곳에서 톡하고 터진 다음엔 끝없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 많던 가상현실 서비스가 실패하자 원인 분석이 이어졌다. 사용자들의 공통된 물음은 그래서 ‘가상현실은 뭔데?’였고, ‘인터넷’으로 귀결됐다. 지금 경험 가능한 가상현실이란 인터넷이고, 어떤 형태의 변주가 있던지 인터넷 개념에 포섭된다는 것이다. 즉, 가상세계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인터넷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의 다름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화 좀 했다고 친구라 할 순 없다. 왜냐, 우리는 익명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며,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SNS와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는 익명성이 전제된다. 내 신원이나 인격을 드러내지 않고, 가상의 존재로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년 남성인 내가 20대 여대생으로 활동하거나, 중국인이 한국인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다른 존재로 활동한다는 것은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며, 이는 아바타라 불러도 무방하다. 아바타들은 우정을 맺으러 커뮤니티에 오는 게 아니라, 친구 관계의 이점 중 온라인에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느끼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는다. 가장 흔한 건 ‘감정적인 지지’와 ‘위로’다. 내 하소연 좀 들어달라는 거다. 굳이 온라인에서 하는 건, 익명이기 때문에 고백해도 실제 내 주변에 영향이 가지 않으며, 현실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지와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지와 위로를 받기 위해 허구의 사연을 작성하기도 한다. 주작 말이다.
한편, 게임과 같이 목표 지향 커뮤니티에서 얻는 친구 관계는 기능이 조금 다르다. 다른 사용자들과 함께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만들고, 목표에 도달하며 ‘자기 계발’과 ‘자존감 향상’이라는 이점을 얻는다. 하지만 플레이를 잘 못 하거나, 실수로 팀에 손해를 끼친다면 가차 없는 비난이 이어진다. 익명성이 전제되기에 그룹에서 퇴장시키고, 비난 수위가 높다. 깊은 관계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인 관계이기 때문에 결속력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친구 관계의 이점들이 존재하나, 사회적 연결이나 위로와 지지 등 감정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는 친목금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많은 사람이 친구 관계에서 얻는 이점들을 효율적으로 경험하는데 만족하고, 그 이상의 친교를 쌓는 건 회피한다. 실제 친목 금지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아주 오래된 규칙이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은 가상세계에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상세계의 관계를 현실로 이어가면, 모임 참여자들은 가면을 벗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는 익명이 보장된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의 범주로 넘어오게 된다. 즉, 현실에서 인간관계의 문제인 정치가 발생한다. 정치는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에,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거나 대립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럼 분파가 갈리면서 권력과 자원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모양새로 이어질 수 있다. 반드시 정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 커뮤니티의 순기능인 자유로운 의견 표출에 한계가 생긴다.
둘째, 친목 그룹의 커뮤니티 사유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친목 그룹에 소속된 사용자들이 서로 친밀감을 형성하고, 자신들만 아는 정보를 공유하면 관계는 강화되지만, 반대로 친목 그룹에 속하지 않은 커뮤니티의 다른 사용자들은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니 배척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친목 그룹 내부에서 따돌림이 발생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따돌림당하는 건 황당하다.
셋째, 커뮤니티 목적과 가치를 훼손한다. 친목 그룹에 반하는 그룹이 형성되면 커뮤니티는 배타적인 그룹들이 갈등하는 모양이 된다.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수용되지 않는 커뮤니티는 와해된다. 만약 게임 커뮤니티가 기업이 마케팅 목적으로 운영하는 커뮤니티라면, 친목 그룹 형성은 사용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사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오픈월드에서 만난 친구들
메타버스 유행에 편승해 알려진 오픈 월드 게임들이 있다.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제페토>, <ifland> 최근에는 <본디>가 반짝 유행했다. 이 중에서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는 목표 지향적 게임이다. <마인크래프트>는 다른 사용자들과 함께 협력해 건축물을 만드는 것으로 팀원의 역할과 목적이 정확히 나뉜다. <로블록스>는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오픈 월드에 선보이는 것으로 다른 사용자들과의 협력보다는 좋은 게임을 만드는 사용자의 능력이 더 두드러진다. 그래서 <로블록스>에 등록된 브랜드 공간은 개발 업체가 만들어 마케팅으로 활용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외 단순한 게임이 많고, 주 사용자층도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메타버스 소리만 듣고 참여했던 기업들이 보도자료 몇 번 뿌리고, 게임을 방치해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목적 없는 오픈 월드 게임이다. 레벨업이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를 모으는 과정들이 제공되지만, 그것들이 흥미롭거나 구미를 당기는 것은 아니다. 명품과 협업,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진출, 사용자가 아이템을 만들어 게임 내에서 판매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익 모델까지 제공한 <제페토>라는 게임이 있다. 이를 비슷하게 재현해 만든 오픈 월드 게임 <ifland>도 있다. 떠들썩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지금 두 게임은 존재감이 희미하다. 실제 게임에 참여해보면 20대가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음성 대화가 가능한데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만 자주 들린다. 생산적인 활동이나 공동의 목표나 게임을 해야하는 이유도 불명확하다. 다만 그곳에 내 또래가 있고, 현실에서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부담이 적다는 것이 청소년 사용자를 끌어모은 요인으로 해석된다.
그럼 오픈 월드 게임은 청소년을 위한 소개팅앱이라고 봐야 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청소년보단 초등학생 사용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고, 그들이 가상세계에서 하는 활동이라는 것도 특별할 것 없다. 채팅 아니면 음성 대화다. 쪽지를 주고받으며 1대 1 비밀을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는 소꿉놀이처럼 가상 연애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럼, 오픈 월드 게임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하지만 사이버 장례식, 가상 결혼, 가상 결혼 생활 모두 학원 갈 시간에 맞춰 끝난다는 점도 기억해두자.
가상현실은 현실이 아니라서
미래에는 가상현실을 표방한 게임에서 맺는 관계가 보편화 될 것이며, 가상현실 세계관도 더 촘촘하게 발전된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건 바람일 뿐이다. 가상현실에서, 가상의 인물들이, 가상의 사건에 경험하는 것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 우리가 열광해온 오픈 월드 게임을 돌아보면, 목표가 명확하고, 몰입도가 높은 것들이었다. 오픈 월드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게임은 대부분 음성채팅이 지원된다. 가상화폐는 게임 머니, 심볼은 아이템이다. 굳이 아바타가 가게를 기웃거리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이미 온라인 게임들은 모두 가상현실의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AI가 적용된 NPC(사람이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NPC도 챗GPT처럼 센스있게 대답할 것으로 기대된다. 말동무가 필요하다면 보조 두뇌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큰 도움은 아니지만 외로움을 조금 덜어준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생동하는 가상현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다시 찾을 것이다. 주제가 게임이든, 시댁이든, 스포츠든 북적이는 곳에서 익명으로 다가가 감정적 지지와 위로를 얻어 낼 것이다.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지만, 진심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다년간의 눈팅으로 깨달은 바다. 현실에서 고백하기 어려운 것들도 가상에서는 털어놓을 수 있다. 가상은 가상이기에 의미가 있다. 일상이 바빠서, 업무가 많아서, 깜빡 잊어서, 비밀이라서 오랜 친구에게 전화하지 못했다면, 온라인 어딘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글을 남겨보자. 따뜻한 댓글을 남긴다면, 그 글이 친구이지 않겠나.
<애비뉴엘> 2023년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