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세대가 말하는 다시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열광하는 이유.
시간은 나만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남들처럼 살아왔으니 남들처럼 뚱뚱한 아저씨로 보일 테지만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튕기며 떠들던 내 모습이 더 익숙하다. 애쓰지 않고 웃었던 날들이다. 학창시절은 즐거웠지만 1990년대를 복기하면 덜 맞기 위해 공부했던 것 같다. 2000년대에는 취업난에서 살아남으려고 공부했고, 2010년대에는 근로자 평균 연봉을 넘으려고 해도 되는 짓은 다 해봤다. 2020년대가 되니 40대로 분류됐다. 아직 내 나이가 낯설지만, 차차 익숙해질 즈음에는 50대로 분류될 것 같다. 나는 그때가 되어도 천재 강백호처럼 내게도 찾지 못한 재능이 있다고 믿으며 성장을 꿈꿀 거다. 마음은 그렇지만 눈 뜨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당분간 자랄 틈 없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40대 업계 동료들과 함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을 보러 갔다.
3040에게는 향수를
1990년대 농구 열풍을 추억하는 장년층을 중심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우리만 해도 극장으로 향하는 동안 차 안이 노스텔지어로 후끈했다. 팀장들이 이토록 열정을 토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극장 안에는 무리 지어 온 우리 또래의 남성들이 많이 보였다. 뭐 민방위? 묘한 기시감이 잠깐 일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개봉 초기라 그런지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팬들이 많았다.
30년 전 슬램덩크의 인기를 설명하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이제는 인기가 없다는 뜻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세대가 바뀌었으니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의 시대였고, 수많은 NBA 슈퍼스타들을 지금 EPL 선수들처럼 외우던 시대였다. 국내에서는 농구대잔치가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 <슬램덩크>는 NBA 중계처럼 경기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풋내기 강백호의 수준에 맞춰 농구 규칙과 기술을 설명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농구를 <슬램덩크>로 배운 아이들도 있었다. 이쯤에서 구체적으로 3040세대에게 <슬램덩크>가 어떤 의미인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다른 문단에서는 쓸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1990년 연재를 시작한 <슬램덩크>는 초기만 해도 당시 인기였던 학원폭력물의 흥행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리젠트 헤어, 싸움, 청순한 여학생, 로맨스, 유머는 당시 학원폭력물의 주된 요소였다. 하지만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학원폭력물 요소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스포츠 비중을 늘리면서 <슬램덩크>는 농구로 성장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됐다.
스포츠 만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자신의 한계에 맞서 싸우는 정통 스포츠 만화 <내일의 죠>와 <캡틴 츠바사>, 운동부의 사랑을 다룬 아다치 미츠루의 스포츠 로맨스도 인기였다. 명작으로 평가되는 스포츠 만화들이지만 <슬램덩크>는 그보다 내밀하게 청춘의 불안과 허무를 위로했다.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는 첫사랑에게 잘 보이려고 농구팀에 든 힘세고 자신감 넘치는 초보자이고, 북산고교는 열패감에 익숙한 농구팀이다. 이후 개성 있는 주인공들이 하나둘 모이며 북산은 언더독으로 나아간다. 북산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가까스로 승리하지만 때로는 패배한다. 주인공이 힘든 수련 끝에 강해지고 승리를 거머쥐는 소년만화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지역 강자 해남과의 지역 결승전 패배는 충격이었다.
공부든 뭐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정작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은 듣지 못했던 우리에게 <슬램덩크>는 자라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보여줬다. 책에서 해남전 경기 종료 후 장면이다. 막무가내에 자유분방한 강백호는 좌절감에 오열하고, 강백호를 혼내던 주장 채치수는 “울지마라”고 한마디 한다. 채치수에게선 패배를 받아들이는 고고함을, 심기일전하고 농구에 열의를 갖는 강백호에게서는 절망을 딛고 서는 자세를 보았다. 이후 라이벌 고교인 능남전 승리 후에는 반대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벽을 넘은 채치수가 오열하고 좀 더 스포츠맨으로 성장한 강백호가 주장을 위로한다. 한편, 부상을 받아들이지 못해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망가뜨리던 정대만의 그 유명한 고백 “농구가 하고 싶어요”에서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를 보았다.
<슬램덩크>가 보여준 건 코트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다양한 청춘들이고,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우리도 열정이 있었고, 흘릴 땀이 많았다. 다만 열정을 태울 곳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됐다. 그때 태우지 못한 열정은 바싹 마른 채 내 안 어딘가에 있는데, 아주 가끔 열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슬램덩크>를 읽고 자란 3040세대에게 <슬램덩크>는 잃어버린 열정이자 청춘의 나침반이며, 바이블이다.
1020에게는 새로운 놀이문화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 관람이 새로운 놀이문화로 퍼지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누적 관객수는(2월 12일 기준) 285만 6967명에 달한다. 곧 300만 관객 돌파가 예상된다. 참고로 일본 애니메이션 국내 흥행 순위 1위는 2016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으로 379만 명인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이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근거는 넓어진 관객층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 첫 주에는 3040세대 관객 비중이 70%를 넘었지만, 입소문이 퍼지며 1020세대 관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성비는 거의 차이가 없고, 원작 만화를 읽고 온 관객들도 많다.
<슬램덩크> 캐릭터를 코스플레이한 관객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2월 11일과 12일 전국 극장에서 진행된 응원상영회는 단 시간에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는데 이날 상영회에는 강백호처럼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북산 유니폼을 입은 채 상영관을 찾은 관객과 선수 유니폼을 입은 관객들, ‘불꽃남자’ 깃발을 들고 온 관객, 강백호와 같은 농구화를 신은 관객들도 있었다. 극장은 관객들에게 응원용 막대풍선을 나눠줬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응원하고, 만화에서처럼 구호를 외쳤다. 지난 1월에는 SBS에서 방영한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주제가 ‘너에게로 가는 길’을 부른 가수 박상민은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주제곡을 열창했다. 더빙판과 자막판을 모두 관람한데 이어 각종 이벤트 상영회까지 참석한 n차 관객들도 많다. 흥행이 계속되자 CGV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아이맥스 상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보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슬램덩크>가 가진 강력한 IP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고 있다.
<슬램덩크>의 인기는 극장 밖에서도 계속된다.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자)’라는 용어가 탄생할 정도로 <슬램덩크> 굿즈 인기가 상당하다. 여의도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서는 한정판 피규어와 유니폼을 구매하기 위한 오픈런이 밤새 이어졌고, 가로수길 ‘슬램덩크 포토매틱 팝업스토어’는 한 달간 진행했음에도 매일 밤 긴 줄이 이어져 팝업스토어 기간이 연장됐다. 지난 10일 대구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는 오픈런을 하려고 서울에서 연차를 내고 온 직장인도 있었다. 없어서 못 구하는 지경에 이르니 슬램덩크 굿즈는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 많게는 4배 더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극장가의 열기는 서점가로 이어졌다. 2018년 출시된 신장재편판 <슬램덩크>는 영화 개봉 뒤 한 달 동안 60만 부 넘게 판매됐다. 세븐일레븐은 <슬램덩크> 만화책 전권을 2천세트를 예약 판매하고 있으며,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슬램덩크 와인’도 선보였다. 2020년 출시된 슬램덩크 모바일 게임도 덩달아 인기다. 영화 개봉 이후 신규 이용자는 647%로 증가했다. 게임, 만화, 피규어, 사진 등 램덩크 IP가 들어간 물건이라면 뭐든 인기다.
1020세대가 슬램덩크에 몰입하는 현상에 대해 인하대 소비자학과의 이은희 교수는 ‘<슬램덩크>의 불가능한 승부를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내용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느낀 좌절감을 위로하고, 열악한 상황을 치유하고 나아가는 데 힘이 되어준다. <슬램덩크>에서 힘을 얻는다면 그 이야기가 담긴 굿즈는 구매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슬램덩크> 오픈런 현상을 설명했다.
산왕공고와의 경기 막바지, 강백호는 치명적인 등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안선생님에게 교체를 요구하며 말한다. ‘나의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라고. 돌이켜 보면 <슬램덩크>를 읽던 시절도, 극장에서 보던 마흔도, 발버둥 치며 생존해 온 시간 모두 영광의 시대였다. 다리를 떨며 최선을 다 해 원고를 마감하는 지금도 그렇듯, 언제나 영광의 시대는 지금일 것이다.
2023년 2월 <주간동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