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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훈 Sep 24. 2023

세계 어디든 눈부신 계절이 있다

주어진 계절과 환경을 견디며 한 곳에 머무를 필요 없다 

사계절 뚜렷한 삼천리 금수강산. 귀에 못박혀 의심치 않았던 우리 국토 예찬. 하지만 1997년 제대 직후 떠난 유럽 배낭 여행부터 물음표를 달게 되었다. 과연 객관적으로 한국은 살기 좋은 곳인가? 스트레스 강한 사회라는 점과 더불어 자연과 기후 환경 역시 금수강산 맞나? 의도적 표어를 세뇌당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엔 겨울부터 봄까지 일 년 중 절반을 뒤덮는 미세먼지가 우리 가족의 일상적 스트레스였다. 동일본 대지진 후 원전 공포까지 더해지자 과연 이 땅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맞는 일인가 싶었다. 여기에 MB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0여년간의 소위 '보수 정권'(이 말은 '진짜 보수'를 오인하게 하는 틀린 표현이라 본다. 사익을 위해 보수를 가장한 극우 세력들이 장악한 기간이었을 뿐)은 직장 생활까지 위태롭게 했고 - 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부역하면 큰 보상이 주어졌고, 거부하면 징계와 유배를 돌리는 것이 필자가 일하는 방송사 상황이었다. 민주투사는 아니었지만 천성적으로 비위가 약해서 부끄러운 지시들을 따르지 못했고, 앞에서 칼맞는 선배들을 외면할 수 없어 파업 일선에 있다보니 전문성과 먼 엉뚱한 부서에서의 유배로 지쳐갔다. 미세먼지, 엉성하게 봉합되어 있는 방사능 위협,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사회와 직장의 우경화.. 어느새 삶터를 옮겨야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었다.  


2017년 중반, 거짓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사내 적폐 세력도 퇴각했다. 3년 만에 복귀한 원부서는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적폐를 청산하고 새 체제를 세우는 주역이 되기 보다는 가족들과 깨끗한 자연 속에 한 두 해라도 살아보고 싶었다. 2018년 1월, 일단 육아휴직을 내고 세간을 정리해서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민으로 직행하는 대신 일단 살아보고 싶었다.


뉴질랜드에서의 두 해는 다이나믹했다. 호기심 많은 성격에 직접 해보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편하게 있진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판단할 수 있었다. 필자도 그랬지만, 과거엔 '해외 생활 = 이민'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해외 생활이라 해서 굳이 삶터를 비가역적으로 옮기는 영주권(permanent residence) 획득 트랙을 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시절에는 영구적으로 삶터와 국적을 바꾸는 이민이 답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국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질높은 삶의 조건을 제공하는 분야가 꽤 있는 국가다. 대한민국 대신 다른 나라의 여권이나 영주권을 따기 위해 섣불리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귀국한지 3년 반이 흘렀다. 삶터에 대한 필자 가족의 결론은 이렇다. "세계 어느 곳이나 좋은 점, 살기 좋은 계절이 있다. 반면 힘든 점, 힘든 계절도 있다. 교통과 인터넷 발달로 해외에서 살고 배우고 일하기 편해졌으며, 우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한국 여권을 가졌다. 특정 지역에 매이지 말고, 지금 이 시기 가장 찬란한 계절인 곳에서 필요한 것을 채우며 옮겨다니며 살자"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고 있어 위 결론을 진하게 실행하긴 아직 어렵다. 그래서 학교가 해결될 때까진 일단 가볍게 몸을 풀기로 했다. Travel like local, 방학만이라도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방식의 여행 경험을 쌓기로 했다. 이번 여름, 그 첫 시도로 15박 16일의 네덜란드 서남부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인 아빠가 최대한 무리해본  여름 휴가 일정이었음도 불구하고 '살아보기 스타일 여행'으로는 아쉬운 기간이었지만, 최대한 여행 취지에 맞추려했더니 꽤 개성있고 재밌는 여행이 되었다.   


'세계 각지의 찬란한 계절로 일 년을 채우는' 라이프 플랜의 첫 예행 연습, 2023년 7월의 네덜란드 서남부 가족 여행을 되짚어 공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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