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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ug 28. 2021

오래된 동네에 산다는 것

(월간 샘터의 의뢰로 쓴 글입니다)


1.

대문을 나서는데 나를 본 할머니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빨간 점퍼에 검은 빵모자를 늘 쓰고 다니는 동네 할머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산책하시나 봐요."          


그녀는 다가와 살갑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웅얼거리는 그녀의 말을 번번이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할머니는 더 바짝 다가와 다시 또 엄지를 치켜세우곤 곁을 떠난다. 언젠가 할머니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파지를 줍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박스를 자주 내놓는 우리 집이 최고라는 뜻인가. 아니면 말씀도 어눌하니 좀 이상한 분인가.   낯선 동네로 이사 온 우리를 향한 그녀의 따봉은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었다. 브라질 축구 선수처럼 뜬금없이 치켜세우는 따봉 세례에 우리는 얼떨결에 골을 넣은 스포츠 뉴스 '황당 골'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저 할머니 누구시지? 앞집 할머니인가?"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는 동네에 할머니들이 많이 살고 계셔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좀 과장하자면 우리 동네는 할머니 반 고양이 반이다. 뒷집 문방구 할머니, 앞집 상추 할머니, 옆집 젊은 할머니, 그 옆 진짜 호호 할머니 거기에 따봉 할머니까지. 고양이처럼 침착하고 고요한 할머니들은 홀로 때로는 함께 골목에 모여 계시곤 했다.          


2. 

우리 집은 인천에서도 엄지를 척 치켜세울 만큼 오래된 동네에 있다. 인천 사람들은 배다리라고 부르는 곳인데 옛날에는 갯골을 따라 이곳까지 작은 배가 드나들었다 한다. 그 갯골을 매립한 자리에 전쟁 후 헌책방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며 나이를 먹어왔다. 인천의 오랜 구도심. 서울로 치면 청계천이고 부산으로 치면 보수동 같은 곳이다.          


오래된 동네 골목 산책을 좋아하는 아내와 나는 이곳을 주기적으로 찾곤 했다. 근대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취미 때문이었는데 이는 곧 구도심 맛집 여행으로 변질되어 전국의 골목길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던 때였다. 학창 시절 추억이 있던 이 오랜 동네가 풍기는 따뜻함과 한적함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그것이 운명이었던지 몇 해 전 우리는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아파트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때라 홀가분하고 아늑한 단독주택을 찾던 차에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것이다.          


우리가 개축해 살고 있는 집은 1980년대 말 벽돌로 지은 이층 집이다. 그 나이가 족히 30년은 넘었다. 지인들은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 동네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뒷집 할머니가 5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 문방구는 할머니가 새댁이었을 때부터 문방구였고 (야구선수 류현진도 초등학교 시절 이 문방구를 들락거렸다 한다) 노부부가 지키는 동네 구멍가게 역시 딱 봐도 50년은 훌쩍 넘은 곳이다. 지금이야 초라한 구멍가게가 되었지만 한창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음이 분명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한 번은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러 갔다가 그런 거는 없고 대신 연양갱은 어떻겠냐는 주인 어르신의 진지함과 당당함에 혼자 웃은 일이 있다.      



나이로 따지면야 우리 집 앞에 있는 창영초등학교가 또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아름답게 빛나는 근대의 붉은 벽돌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지어졌다. 당시 조선인 교육을 위해 세운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가 이곳이다. 목련이 필 때 학교는 가장 아름다운데 그 우아한 모습을 보기 위해 찾던 것이 우리가 이 동네에 눌러앉게 된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놀랍게도 창영 학교 옆에는 더 오래된 학교가 있는데 무려 1911년 지어진 건물이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개항기 제물포로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여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영화학당이다. 어린이를 위한 배려였는지 계단이 낮고 넓다. 학당 위 언덕에는 여선교사들이 쓰던 사택이 아직 남아 있어 당시 풍경을 상상하기가 더 수월하다.   


새로울 것 없는 도시. 엇비슷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우후죽순 올라가는 풍경 속에 이 오래된 건물들이 내게 주는 기쁨은 역설적이게도 새로움과 사려깊음이었다. 사람의 시야와 보폭을 넘어서지 않는 배려와 은은히 빛날 줄 아는 세련됨. 이 오래된 건축물에서 나는 일종의 너그러움을 발견하곤 한다. 대체로 오래된 것들이 주는 따뜻함과 품격은 이런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서 온다. 그것이 동네 구멍가게이건 뽐낼만한 건축물이건 이내 존중의 마음이 드는 건 무심히 흐르는 시간을 한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둔 인간의 수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3. 

집 앞에 주차하지 말라고 세워 놓은 화분을 갈이 하는데 따봉 할머니가 다가와 또 엄지를 치켜세운다. 나는 다시 뜬금없는 결승골 주인공이 되어 어색한 세리머니를 하려는 순간.          


"아이고 이리도 부지런하셔. 고마워요. 고마워."          


처음으로 그녀의 말이 또렷이 내 귀에 들려왔다. 분명 그녀는 내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태 존댓말까지 쓰고 계셨다니. 나는 따봉을 받을 때보다 더 어쩔 줄 몰라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할머니는 다시 자신만의 언어를 하다 홀연히 사라지셨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고마운 걸까 생각했다. 나의 부지런함, 집을 돌보는 일, 혹시 우리의 젊음(우리는 이미 40대인데 구도심에서는 적어도 열 살은 더 젊게 살 수 있다) 아니면 오래된 동네로의 이사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아닐 수도 또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낡고 오래된 동네로 이사 온 젊은 사람들을 그녀는 그저 고맙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칭찬받거나 치켜세울 일이 아님에도 이를 고맙고 의미 있는 일로 만드는 것. 평범한 조연을 주연으로 만드는 따봉의 힘. 우리에 대한 그녀의 존중과 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말은 조금 어눌해도 그녀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고마워했다. 그동안 건물만 보이던 내 눈에도 이제 그녀와 또 그녀들, 이 오래된 동네와 함께 세월을 견딘 이들의 너그러운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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