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며 삽니다
"욕조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반신욕을 좋아하거든요."
전셋집 이사를 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욕조가 있는 집을 찾았다. 지하철과 가까워 교통이 좋다거나 단지에 나무들이 많아 쾌적한 환경이거나 하는 것만큼이나 집 찾기에서 우리는 욕조의 유무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유는 물론 반신욕 때문.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물속에 들어앉아 음악을 듣는 편안함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별것 아닌 것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아내 또한 반신욕을 좋아했다. 화장실에 욕조가 있다는 것을 그 쓸모 이상의 어떤 심리적인 안정감 같은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전셋집은 돈에 맞춰 찾아야 했다. 욕조가 없는 집에 살기도 했고 있더라도 너무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욕조에 철퍼덕 앉아 아쉬움을 달래야 하기도 했다. 그러니 네 번의 이사만에 단독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 뭐냐고 묻는 건축사들에게 이렇게 말한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반신욕을 할 수 있는 화장실요."
정말 그 외 리모델링에 대해서 나는 몰랐고 몰라했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때문에 홀로 리모델링의 번뇌와 고민을 떠안은 아내로부터 질타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별을 볼 수 있는 반신욕 공간'을 연구해 보겠다고 건축사들이 화답하는 바람에 나는 잠시 잠깐 설레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따뜻한 물에 잠겨 별을 보는 그런 꿈. 그것은 결국 꿈이 되고 말았지만.
그런데 그 욕조에 금이 간 거였다. 그러니까 집을 완전히 리모델링해 들어가 살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욕조에 금이 갔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이 그 금은 점점 커져갔다.
"저거 금 간 거 맞는 거지?"
"그래~ 내가 지난번부터 얘기했잖아. 몰랐어?"
"아니 고작 4년밖에 안 썼는데?"
욕조에 금이 가면 어떻게 고쳐야 하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놀랍게도 욕조를 교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비용이었는데 적어도 백만 원에서 상태에 따라 이백, 삼백, 사백 끝도 없었다. 아니 고작 금이 간 건데 대충 땜빵은 안 되나. 마음 같아선 꿔맬 수 있다면 뭘로 꿰매서라도 살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체로 마음에 들었던 리모델링 공사였건만 화장실만큼은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는 화장실을 볼 때마다 거의 통곡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왜 화장실 구조와 욕조를 신경 쓰지 못했을까. 왜 건축사는 이걸 미리 의논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욕실을 다시 고치는 게 맞았다.
숨고 사이트를 통해 화장실 공사 견적을 받아보고 연락을 해봤다. 전체 리모델링이 아니라 작은 규모 공사라 그런지 선뜻하겠다고 나서는 곳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지인을 통해 동네 업자를 소개받았다. 대충 이야기를 해보니 철거 하루 타일 하루 이렇게 이틀이면 공사는 마무리된다고 했다. 비용도 구십만 원이면 가능하다고 하여 한시름 놓았다. 기존 욕조는 철거하고 그곳에 이동형(프리 스탠딩) 욕조를 두면 공간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리라. 욕조와 타일은 우리가 고르기로 했다.
그런데 우선 기존 타일과 같은 타일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문의하는 곳마다 타일은 1년이 지나면 유행이 바뀌어서 4년 전 타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란 답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문의하는 곳마다 같은 이야기였다. 국내에서 타일을 생산하지 않고 중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필요한 것만 그때 수입하니 예전 것을 재고로 쌓아둘 이유가 없는 거였다. 우리는 부분 타일 공사를 해야 하는 거라 똑같은 걸 하는 것이 맞았는데 결국 그럴 수 없었다. 포인트 타일처럼 꾸미는 것도 무늬가 마땅치 않아 가장 흡사한 걸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철거를 시작하자 문제가 터졌다. 욕조 벽이 석고보드라는 거였다.
"네? 그게 뭐죠?"
"아니 욕조 벽을 석고로 하는 사람들이 어딨어. 석고는 습기 많은 데서 쓰면 썩어요. 이봐 여기 다 벽이 젖어 있잖아."
"그럼 어떻게 해요?"
"벽돌을 쌓고 방수를 하는 게 정상이죠. 아 그런데 이거 이 벽도 그렇네. 클났네."
클났다는 말이 욕실에 잔향처럼 맴돌았다. 이번엔 욕조가 아니라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큰일 났네, 정말. 이거 난리네 난리. 난리 났네. 난리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