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지하실이 있어요."
이렇게 남들에게 말하고 나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그게 뭐라고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고 말할 일이 있으면 자랑으로 내놓는다. 그렇다고 외국 영화에서처럼 지하에서 음악을 하거나 괴짜 실험실로 쓰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남이 들으면 마치 우리 집이 000 브랜드 아파트라고 말하는 이에게 느껴지는 팔푼이 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하실이 있어서 그냥 좋다. 집과 동일한 크기의 알파룸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지하실이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고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상을 펼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세상에 앉아있다 보면 없던 취향과 취미도 생기고 그러면 삶에 재미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게 비록 온갖 삼라만상 잡동사니 월드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사 올 때 지하실은 빈 공간 아니 버려진 곳이었다. 옛 주택이 그렇듯 반공호로 지어진 반지하였다. 출입문이 밖에 따로 있는 걸로 봐서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을 텐데.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은 채였다. 집을 리모델링하며 지하실을 취미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으나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여 손 대지는 못했다. 겨우 벽지를 뜯어내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벽 일부를 철거한 것이 전부였다. 후에 친구 Y와 함께 에폭시를 바닥에 칠했는데 이마저 배합이 잘못되었는지 기대했던 것처럼 광이 번쩍번쩍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둘 지하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꾸몄다는 말에 꾸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여기저기서 예쁘다고 주어모는 것들과 지상에서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로 채워 넣은 거니까. 신혼 때 쓰던 원목 소파와 CD장. 일하며 사고 모은 방송 장비들. 그리고 대학 선배가 갑자기 가져온 LP와 앰프, 친구가 건넨 카세트테이프들, 동네 한의원 원장님의 라디오, 윗집 할머니가 버린 반닫이 자개장, 재개발 철거 지역에서 주워온 나무 유리문, 회사 선배가 준 오래된 도시바 선풍기 등등. 삼라만상이 지하실에 안치되었다.
그래도 지하실에 남다른 공간이 있다면 녹음실이다. 지하실에서 가장 넓은 방을 계란판 방음제로 막고 녹음, 녹화, 출력이 가능한 음향기기를 들여놓았다. 음향은 Y가, 힘쓰는 건 K가 도왔다. 지하실은 나의 월드지만 아내의 공간도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는 커피 수업을 오래 듣더니 어느 날 로스팅 기기를 지하에 들여놓았다. 그러니까 지하에서 팟캐스트 녹음이나 유튜브 녹화 따위 커피 로스팅 같은 걸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동안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닫아 두었던 반지하 아지트, 지하실을 열기로 했다. 혼자 놀기 심심하기도 하고 그간 꾸며놓은 것들이 아깝기도 해서다. 무엇을 위한 공간으로 쓸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공간이 열리면 뭐가 되어도 되지 않을까.
지하실에서 나는 주로 음악을 듣는다. 혼자라 심심하면 친한 이들을 초대해 음악감상회를 열었는데 코로나19로 모임은 들쭉날쭉했다. 사실 말이 음악감상회이지 외로운 마음에 필요한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람이다. 마시고 떠들고 음악을 들으며 지하실에 왔던 이들 모두 이런 공간을 부러워했다. 다들 '여기에 뭐라도 해봐!'라고 한 것이 정말 이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모든 게 유료라고!)
그런데 지하를 오픈하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급한 불을 끄려면 집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2층까지. 이건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지인들에게는 요강을 들고 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 이제는 정말 화장실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행히 마당에는 옛날 푸세식 화장실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하는 바로 그 정화조 위에. 연탄광과 화장실이 세트로 붙어 있는 옛날 주택. 집을 리모델링하며 화장실 바닥을 막아 버렸는데, 이걸 수세식 화장실로 고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모든 고민과 숙변이 쑥 하고 풀리지 않을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욕조 공사를 맡겼던 동네 설비 사장님께. 이번엔 반드시 세부견적부터 받으리라.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