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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Nov 15. 2022

(당구장 아저씨의) 헤어질 결심

길을 걷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왠지 가슴이 철렁합니다


기타를 만지던 아들들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자주 '등짝 스매싱'을 당해야 했다. “그 놈의 기타 이리 내. 부숴버리게” 또는 “오늘 밤 불쏘시개로 쓸 테니 그리 알아”와 같은 무시무시한 협박과 함께. 심약한 아들은 눈물을 삼켰고 좀 센 아들들은 집을 나가거나 다시 기타를 샀다. 가수 최성수가 그랬고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 역사를 반복했다.


신흥동 거리를 걷다 저주와 협박의 불길에서 살아남은 낡은 기타들을 만났다. 한때는 당구장 벽에서 그 자태를 뽐내며 극진한 보살핌을 받던 녀석들일 테다. 아마도 그 당구장엔 누드 화보 대신 지미 헨드릭스의 사진이 벽에 걸렸을 것이다. TV 소리가 아니라 에릭 클랩튼이나 스티비 레이본의 음악이 흘렀을 지도 모른다. '승자는 세면대로 패자는 카운터로' 같은 글귀 대신 저 기타들이 쿠션에서 일명 '빡'을 하지 않길 소리 없이 응원했을 것이다. (인천에는 쿠션에서 '빡'이 있습니다. 인천 당구가 짠 이유죠.)


한번은 옆 동네 신포동 즉석떡볶이 가게에 갔는데 벽에 일렉 기타와 바이올린이 진열되어 있어 놀랐다. 떡볶이 아저씨도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맛 가득한 메뉴가 탄생한 걸까. 유독 신포동엔 이런 가게들이 많다. 국밥집과 미장원에서도 같은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직업은 달라도 모두 음악을 사랑하고 사랑했던 분들인 것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뜨거운 국밥을 삼켜야 했던 그 흔적들을 나 또한 국밥을 삼키며 우걱우걱 바라본 적이 있다.


살다보면 결심이 행위를 낳는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더 많다는 걸 깨닫는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일을 저질러 이내 마음이 돌아서게 해야 했던 순간들. 기타를 부수는 아버지의 폭력, 미련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심판했던 어떤 일들 말이다. 당구장 아저씨도 그랬던 것일까. 중고 장터에 파는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치 헤어질 결심이라도 하듯 기타를 덩그러니 거리에 세워두었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라며.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운영이 어려워 가게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마침내 기타들과 헤어질 결심을 한 걸까. 이층 당구장으로 올라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사건을 미결로 남기기로 한다. 이어폰에선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이 흐른다. 당구장 아저씨 앞길에 아름다운 음악이 깔리길 빈다.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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