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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pr 25. 2023

골목길 밥상보

골목길에는 기술자들이 산다


원도심 주택들은 땅의 기운 아래 있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자리 잡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들. 그 때문인지 주민들도 흙에 기대 사는 것에 익숙하다. 작은 틈만 보여도 씨를 뿌리고 식물을 키운다. 대문 위 공간에도 지붕 옥상에도.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어떤 자리에도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 나간다.      


봄이 되니 골목길도 초록으로 물든다. 상추와 고추부터 각양각색의 꽃나무들. 고추나무가 많다면 골목에 할머니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녀들의 놀라운 작물 재배 신공을 능가할 이들은 없다. 골목에 정취를 더하는 것은 이런 식물들이다. 그것이 식용이든 관상용이든 초록의 다정함은 지나는 이를 골목으로 발길을 이끈다.  

    

신흥동 골목에서 기발한 풍경을 마주했다. 어, 저거 그거 같은데. 그 뭐라 하지? 밥상을 덮던…. 너무 오랜만에 만나 그 말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맞다. 밥상보! 유년의 윗목, 차린 밥상을 단정히 감싸주던 밥상보. 네모반듯한 천 가운데 손잡이가 있던 알록달록한 어머니의 밥상보.      


사는 집은 모시나 비단으로 수를 놓고 급할 땐 신문지로 대신하기도 했던 그 밥상보. 화분을 덮은 건 그 밥상보를 닮았다. 그런데 화분 텃밭을 덮었으니 ‘텃밭보’나 ‘화분보’라고 해야 맞을까. 어떻게 화분을 통째로 이렇게 덮을 생각을 다 했을까.


안을 들여다보니 상추, 쑥갓, 당귀, 방풍 온갖 채소가 자라고 있다. 쌈장과 밥공기만 놓으면 그대로 자연 한상 차림이다. 벌레로부터 고양이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밥상을 지켜주는 골목길 밥상보. 그 누구일지 골목길 기술자의 특별한 보살핌과 다정함에 웃음이 난다.      

새벽일 나가는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 밥상. 유년의 윗목을 따뜻하게 덮어주던 밥상보. 아랫목에 묻어 놓은 밥공기와 한 이불속에서 꿈을 꾸던 소년은 따뜻했던 그 온기를 골목길에서 다시 마주한다.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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