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 초대로 당신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 오셨을 때, 장미꽃이 지기 전에 당신 댁에도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신 거다. 뒤뜰에 핀 장미가 지고 있다고. 동네 사람 몇을 더 초대하셨다.
어르신 댁은 일전에 가본 일이 있어 사정은 대강 알고 있었다. 평소 어르신과 알고 지내던 젊은 부부가 어르신네 오래된 집을 맡아 큰 공사를 마쳤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이들의 첫 작품이었고 이 일을 계기로 이들도 배다리 골목에 집을 고쳐 살기 시작했다.
이날 함께 초대받은 사람 중 한 분은 전에 이 집에 살던 이였다. 이사 간 후에도 동네에서 목공소 일을 하며 어르신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집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집을 둘러보며 목공소 분은 감격하는 눈치였다. 구조가 바뀌었어도 공간은 지난 시간을 불러오기 마련이니까. 그의 눈에 잊었던 기억이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내게도 감격스러운 장면이 있었는데, 집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또 그전에 여기 살던 이를 기억하는 대목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배다리 헌책방 아벨 사장님. 그러니까 집은 헌책방 주인장에게서 목수에게 그리고 지금의 노부부에게로 이어졌다.
제 각각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집은 이들에게 그야말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한 동네에 살며 서로의 사정을 알았기에 집이 필요한 시점에 (서로의 배려로) 이 집에 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집은 필요한 이에게 그늘이 되어주었다. 그들이 차례로 집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집이 내어준 공간을 잠시 거쳐 간 거라 해야 맞을 이야기가 밤새 이어졌다.
밤마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건축왕이니 빌라왕이니 하는 사기꾼들이 떠올랐다. 집을 폭탄 돌리듯 떠넘긴 이들의 사악함과 그 때문에 세상을 등진 이들의 슬픔까지. 발길이 무거워졌다. 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미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지만 자꾸 오답을 쓰며 살고 있진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