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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29. 2020

티끌모아 인테리어

원도심 주택 구입기 5

결혼 7 , 가진 돈을  털어 집을 샀다. 그리고 이를 담보로 빚을 내어 2 주택을 리모델링을 했다. 소위 협소 주택. 이제  푼도 남은  없었지만 인테리어는 해야 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우여곡절 끝에 장만한 우리의 ' ' 대충하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리모델링이 어떻게 집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느냐의 문제였다면 인테리어는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의 물음이었다. 선택의 연속이었고 선택은 늘 시간과 돈을 요구했다. 바닥은 뭐로 하느냐, 벽지는 어떤 색으로 어떤 재질로, 현관문은 어떤 색으로 할까, 망입 유리냐 아니냐 등등. 그래도 아내가 리모델링 과정에서 여러 방면으로 기량을 발휘한 덕에 인테리어는 한결 수월했다. 침실과 화장실을 제외한 방문을 모두 없애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 한쪽 벽을 모두 나무 책장으로 꾸민 것은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전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나무 유리문은 버리지 않고 슬라이딩 도어로 살려 냈다. 그러고 보니 전체적으로 원목이 주는 따뜻한 느낌이 집안 분위기를 아늑하게 감싸주는 효과가 있었다. 또 분위기를 좌우하는데 한몫하는 것은 조명과 커튼이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아내와 함께 내가 이케아에서 골랐다. 그나마 이거라도 거들었기 때문에 아내로부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아내는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 하다못해 휴지걸이 하나에도 이걸 하느냐 저걸 하느냐로 골머리를 앓았다. 깜빡하고 욕조에 신경 쓰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겼다.


아내는 계단 옆 벽 전체를 책장으로 만들었다


반면 나는 태평했다. 이전에 고백한 바와 같이, 나는 지하실과 옥상 이외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작은 바람이 있다면 집 앞에 있는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과 호응할 수 있는 외관을 해줄 것을 건축사에게 부탁했었는데,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태평한 소리란 걸 깨닫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결국 비용 문제로 옥상과 지하실은 손대지 않기로 하면서 나는 현실을 자각해야했다. 하필이면 한때 내가 로망에 가득 차 망상에 빠졌던 공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방법이 있긴 했다.


나의 방식이란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세상 싫어하는 바로 그것, 아저씨들의 주특기 '길에서 주워오기'였다. 그렇다. 더 이상 쓸 돈도 없고, 돈이 있다한들 쓸 수 없다. 이제부터는 티끌모아 인테리어다.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남은 목재 하나, 못 하나도 버리지 말 것을 리모델링 업체에 주문했다. 필요한 것은 내가 만들고 못 만드는 건 주워오자. 이것이 진정 리모델링 정신이요 도시재생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느 아버님들처럼 아무거나 괜찮아 보인다고 '쓰레기'까지 주워오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 기준을 아내에게 허락받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여보, 이 아이들 데려가도 되남?'

때론 냉정한 아내 덕분에 내 기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지만 그런 아이들은 아내 몰래 지하실에 처박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때론 어떤 아이템은 몰래 지하실에 숨어 지내다가 아내에게 간택되어 지상으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수록 나의 '티끌모아 인테리어'는 힘을 얻었다.


당시 나는 인천의 특정한 장소의 소리를 녹음하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그날은 재개발을 앞둔 십정동의 소리를 녹음하러 갔었는데, 마침 철거가 한창이었다. 십정동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촬영지였다. 십정(十井) 동, 열우물 마을. 열 개의 우물이 있어서 열우물 마을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말도 있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열(熱) 우물이 있어서란 말도 있다. 이랬든 저랬든 이제는 우물도,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모여 살던 집들도,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1960년대부터 인천의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구불구불한 산동네는 새로울 거 없는 뉴-스테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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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녹음하는 일이란 마이크와 녹음기를 설치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어쩌면 소리를 녹음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녹음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징이 되는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 오래 기다리는 일이다. 그렇게 앉아서 하염없이 부서지는 집들을 바라보는 있었다. 그런데 곧 부서질 집들 중에 너무 멀쩡한 주택이, 하필 그 주택 2층 발코니가, 또 하필 너무 멀쩡하고 예쁜 나무 유리문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어.. 어. 안 되는데. 저거 아까운데.'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 집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보니 나무 유리문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 멀쩡하고 상태도 좋았다. 격자 나무 창살에 투명한 유리문은 요즘엔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예스러움과 우아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왜 요즘엔 이런걸 못 만들까. 품위 있는 나무문을 이대로 부서지게 할 수는 없다. 이건 죄악이다. 얘야 우리 집 지하로 가자. 하지만 이 큰걸 아내 몰래 지하에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나는 사진과 함께 다급한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이 아이 데리고 가도 괜찮지? 내가 안 데려가면 이 아이는 죽어."

 

베트남 모자를 이용해 조명을 만들었다. 아내에게 처음 칭찬을 받았다.  지하실 한 켠에 있는 유리문과 장은 내가 모두 데려온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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