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 명소에 삽니다, 불행히도

구도심은 재생될 수 있을까?

by 봉봉

내가 사는 동네는 인천 구도심 중에 구도심이다. 동네 역사가 개항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작은 어촌마을이던 제물포에서 살다가 일본인들에게 밀려난 조선인들은 이곳에 동네를 형성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이 동네를 '배다리'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동네까지 이어진 갯골을 따라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2017년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쳐 이곳으로 이사했다. 편리한 아파트 살이에 비하면 불편한 것도 많지만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에 사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가끔 안개 낀 새벽, 거짓말처럼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배다리'라는 동네 별칭은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뱃고동 소리 말고도 이곳에 이사 와서 깜짝 놀란 일들이 몇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영화 촬영'이었다. 이사를 온 후부터 동네에서 심심치 않게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영화 촬영은 주로 동네 명소 '헌책방' 주변에서 이뤄진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이미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한미서점'이 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러 오는 관광객들이 더러 보였다. 얼마 후에는 <인랑>이란 영화도 이곳 '아벨서점'에서 촬영했다. 우리 동네가 영화에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극장에서 봤는데, 그런 동네 부심 같은 마음 '일랑' 앞으로 갖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통닭집 간판이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떡하니 나타나, 당시만 해도 동네 사정을 잘 모르던 아내와 나를 홀린 일이 있었다. 집 근처에 변변히 먹을 곳이 없던 차에 언제 이 집에서 치맥이나 한잔 하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는데, 얼마 후 지나가다 보니 그새 또 다른 치킨집 간판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보니 이 의문의 통닭집은 우리나라 1천6백만 명이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수원왕갈비통닭'이었다. 이 집 통닭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아내와 나는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배우 류승룡과 이하늬를 지척에서 바라보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멀찍이서 봐도 밤낮없이 촬영하는 배우들의 일은 <극한직업>으로 보였다.


지자체에서는 관심 1도 없던 영화가 대박이 나자, '그곳이 여기임'을 알리기 위해 그야말로 '관'스러운 홍보를 시작했다. 거리엔 현수막과 영화 장면을 찍은 사진이 벽보로 붙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동네엔 영화의 흔적이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통닭집 간판이라도 남았다면 좋았을 텐데, 촬영 장소를 대여해준 사장님께서 촬영 이전으로 완벽히 복구할 것을 처음부터 신신당부했었다 한다. 아무튼 이곳이 그곳임을 홍보하는 데 간신히 성공해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들, 여전히 헌책방 앞에서 사진이나 한 장 찍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 보였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홍보였다. 여기가 거깁니다만 할 게 아니라, 그래서 와보니 이 동네 매력 있고 좋구나, 공간이 축적한 시간 즉 '장소성'을 살리는 데 노력했어야 했다.


아무튼 그 후에도 <무법 변호사>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우리 동네에서 촬영했다. 바로 윗동네인 전도관에서는 <나의 아저씨>를 그리고 양키시장에서는 쫓고 쫓기는 수많은 범죄 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텐데,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왜 모두 주택에 사는 걸로 나오는지. 아내는 드라마를 볼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튼 영화와 드라마 촬영은 잊을만하면 계속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흥미롭던 촬영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불편함이 느껴졌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걸핏하면 촬영 때문에 통제를 했다. 그래서 일방통행 길을 역행해 가거나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갔다. 집을 지척에 두고 가질 못하니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 분통이 터졌다. 북촌 한옥마을이나 인근 동화마을 주민들이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이사를 간다는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니, 촬영을 할 거면 미리 알려 주든가. 매번 이게 뭐야."

"영화만 보이고 주민은 안 보이나. 나 원 참."


숭의동 109번지 전도관 동네. 결국 또 그 흔한 아파트를 짓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영화를 많이 찍는 걸까?' 이런 구도심 풍경은 다른 곳에 전혀 없기 때문에? 그건 아닐 텐데.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고 뜸하니, 촬영하기가 만만해서? 민원이 별로 없으니까, 좋게 말해 협조가 잘 되니까? 영화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 지자체에서도 관광지로 어떻게 해볼 가능성이 있으니까?


아마도 이 모든 이유로 우리 동네는 영화 촬영의 메카가 되었을 것이다. 동네가 허름해서 옛날 정취가 남아 있고, 양키시장이나 숭의동 109번지는 허름하다 못해 허물어져 가는 건물 때문에 범죄 영화 같은 장르물에 적합해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주민들이 많지 않아 적극적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도 적을 것이고, 반면 지자체는 영화를 빌미로 어떻게든 지역 홍보를 하고 싶을 테니까. 그래서 인천영상위원회는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그 어느 지자체보다 가열한 지역 홍보를 하는 것일 테다. 그것이 나쁜 일도 옳지 않은 일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의문이다. 그게 주민에게 그리고 지역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소비되는 공간이란 게 결국 동인천의 다크 포스, 즉 가난과 낙후된 도심 이미지일 뿐인걸.


매일 영화 촬영을 하고, 운이 좋아 그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동네를 찾는 이가 많아진다 해도 주민과 지역은 더 살기 좋아지는 걸까. 그들이 소비하는 건 공간의 의미가 아니라 그저 그런 이미지일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결국 지역과 주민의 삶은 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지자체는 오히려 관광객에게 보여줄 무언가를 찾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면 이거라도 잘하면 좋을 텐데, 아직은 무엇을 하려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세금을 들여 길가 상점들의 외관을 뜯어고치고, 불성 사납던 전선을 지하화하는 사업을 선언했다. 그런데 외관 보수 사업은 한차례 잡음이 있더니, 전선 지하화 사업에서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골목은 완전히 외면해 버린 덕분에 우리 집 앞에는 안 그래도 볼성사납던 전봇대가 하나 더 늘어, 두 개가 되었다. 여기를 막으며 저기가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도 아니고, 결국 그들에게 주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우리 동네가 알려지고 사람들도 많이 찾았으면 한다. 그것이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낡은 구도심 전체가 재생되어 살기 좋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지역을 알리고 관광까지 이어지게 하려면 오히려 동네가 품고 있는 장소성에 더 의미를 두어야 옮은 일이 아닐까. 그저 협조 잘되는 영화 촬영지로 소비되고 말 것이 아니라, 동네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현재 갖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드러내고 가꾸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의미와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다. 공간은 시간이 축적된 장소이다. 그 시간과 공간은 그곳에 살았던 이들이 만든 것이고, 사람들은 그 특별한 '장소성' 때문에 그곳을 찾고 싶은 것이다. 개발해야 할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공사판이 아니라, 장소가 간직한 스토리이고 주민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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