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은 재생될 수 있을까
"신포만두가 여기 신포동이 본점이었어?"
"그럼. 그러니까 신포만두지. 신포 닭강정도 이 동네 출신이야."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아내는 신포만두 쫄면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인천으로 이사 와, 집 근처를 산책하다 오랜만에 추억의 분식집을 발견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여기 인천에서 쫄면이 탄생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라고, 그 맛을 보고는 예전 전주에서 먹던 게 더 맛있었다며 또 한번 놀란다. 그렇지. 프랜차이즈마저 본점을 뛰어 넘는 곳이, 맛의 고향 전주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배다리'라는 동네로 신포동에 가기 위해서는 '싸리재'라는 길을 통해 간다. 인천에 오래 산 이들이나 아는 이름 '싸리재'는 개항 시절, 제물포항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개항의 길목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근방에는 '배다리', '싸리재', '긴 담 모퉁이' 같은 오래된 우리말 지명들이 아직 남아 있다. 아내와 나는 이곳 배다리로 이사 온 후, 싸리재를 길을 지나 '긴담모퉁이'를 또 돌아 신흥동, 신포동의 식당으로 산책 겸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이 길에는 오래된 주택과 건물들이 남아 있어 구경하는 맛도 더 있다.
그런데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싸리재 길에 대형 카페가 하나 생겼다. 애관극장까지 정도야 신포동 상권이라고 해도, 그 너머 싸리재 길은 밤이면 사람이 뜸한 길인데 갑자기 4층짜리 카페가 웬일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가보니 아니 웬걸 '브라운 핸즈'가 아닌가! 브라운 핸즈는 내가 그 몇 해 전, 부산을 여행하다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한 카페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 건물을 멋스럽게 카페로 소생시킨 솜씨를 보고 감탄했던, 그 카페가 우리 동네에? 그것도 여기 싸리재 길에? 커피를 사랑하는 아내는 신포만두를 발견한 때보다 더 놀라고 기뻐했다.
그런데 좀 더 지나자 이 싸리재 길에 가게들이 하나 둘 더 생기기 시작했다. 브라운 핸즈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같이 오래된 건물을 근사하게 리모델링한 식당과 카페들이었다. '맛은 인테리어에 비례한다'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드디어 인천의 힙스터들이 갈 만한 곳들이 생기는 것으로 보였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기고, 동남아 음식점이 생기더니 면요리집에 심지어 비건 레스토랑까지 생기면서 컴컴하던 골목길을 하나둘 밝히기 시작했다. 90년대 말, 동인천 르네상스가 무너진 후 그야말로 발길이 뚝 끊긴 이 싸리재 골목에,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정작 그 동네 주택으로 이사 온 우리마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카페와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개항로 프로젝트'라고 칭하는 그룹이었다. 이태원 경리단길을 만든 사단의 일원이라고 이야기가 들렸다. 이들은 본인들의 개업과 동시에 주변 가게들을 홍보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근처에 있는 광신제면(우리나라 최초로 쫄면 면발을 탄생시킨 곳)에서 면을 만들어 면요리집을 하고 근처 목간판 제작소에서 간판을 만들어 달았다. 이런 활동을 SNS에 알리며 곁에 있는 노포를 알리고 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담은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바는 자신들 가게만 잘 되는 게 아니라, 동네 전체가 다시 재생되어 활기를 띄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거창하게 말하면 도시재생. 이들의 이런 노력은 지난해 열린 도시재생박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는 결과를 맺기도 했다. 그렇게 '싸리재'는 서서히 '개항로'가 되어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들리기 시작했다.
"서울 애들이 내려와서 건물 죄다 싹쓸이 해서 집값 올려서 먹튀 하는 거잖아. 연남동이니 망원동이니 뭐니 다 그런 거 아니야."
이 동네에 먼저 자리 잡은 이들 중 이 프로젝트 그룹에 적대적인 분들도 있었다. '인천 사람들이 아니다'부터 시작해 장사꾼이 아니라 부동산 먹튀 세력이며 배후에 대기업이 있다는 둥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가? 설사 그런데 그렇다고 한들 그게 나쁜 걸까. 어차피 가게들이 저렇게 문 닫고 있는 것보다 누구라도 장사를 하는 게 나은 거 아닐까. 싸리재는 한때 웨딩거리로 양복점에 가구점 등 혼수 용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그 상징적인 가게이던 이수일 양복점마저 문을 닫은 상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이들 중 일부는 인천이 고향으로 자신들이 과거 놀았던 동인천 일대를 자신들의 새로운 상권으로 잡은 것이다. 과거 명성에 비해 몰락한 인현동과 경동의 상가들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했고, 영리하게도 이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도시재생 명목 대출을 받아 건물 자체를 매입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특기인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무기로 내세워 인천의 힙스터들을 구도심 골목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거기에 동네의 매력과 노포들을 소개하며 단지 자신들은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로컬 재생을 한다는 포장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이야 말로 영리한 장사꾼들이다. 장사꾼들이 장사를 하는데 그것이 불법인 아닌 바에야 비난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동네 일대가 알려지는 게 본인들 장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노포니 뭐니 해가며 홍보하는 걸 굳이 깎아내려야 할까. 오히려 문 닫은 가게들로 삭막하던 거리를 다시 불 밝힌 걸 칭찬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가게들에 가려고 오는 젊은 층들이 구도심 동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그리고 이들이 선택한 방식도 벤치마킹해서 매번 월세 때문에 쫓겨나는 가게들도 그 불행을 피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름의 사정이 또 있을 테지만 말이다. 다만 내가 아쉬운 것은 인테리어에 비해 부족한 커피맛과 '싸리재'라는 정겨운 옛 지명이 결과적으로 더 묻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마저도 도로명칭으로는 '개항로'가 맞지만 말이다.
세월이 지나면 이름도 바뀌고 도시도 변한다. 화려했던 곳은 구도심이 되어 쇠락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새로운 도심이 형성된다. 싸리재는 개항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카페가 하나 더 늘어나 한때 붐비던 웨딩 거리는 이제 카페만 해도 열댓 개가 넘는 카페 거리가 되었다. 아쉬워할 일만은 아닌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래되고 낡았다는 이유로 모든 걸 부수고 개발하는 편의성이다. 막아야 할 것은 이런 건설투기자본과 행정이다. 모든 게 복제되는 세상에서 오래되어 낡은 것만큼 유니크한 것은 없다. 거기에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과 스토리가 축적되어 있다. 요즘 젊은 층이 이 멋지게 디자인된 낡음에 끌리는 이유다. 이런 끌림을 시작으로 구도심의 매력들이 드러나기를 나는 희망한다. 우리가 이 오래된 동네로 이사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끌림 때문이었으니까.
이제는 개항로라 불리는 이 길에는 '싸리재'라는 카페가 있다. 싸리재에서 평생 사신 노부부가 자신이 살던 한옥과 상가 일부를 직접 일군 곳이다. 원래는 의료기기를 팔던 곳인데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카페로 변신했다. 이들 프로젝트 그룹이 들어오기 전 이야기이다. 카페에는 주인장의 오래된 책과 LP, 진공관 엠프와 축음기 같은 오래된 물건들이 있다. 손님이 없으면 주인장께서 직접 각 기계들이 내는 소리를 들려주신다. 나는 새롭게 디자인된 개항로 가게들도 좋아하지만, 이곳 싸리재 카페도 좋아한다. 이곳에는 또 나름의 투박한 낡음이 있다. 언제 시간이 난다면 이 길에 한 번 찾아가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