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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Oct 18. 2020

내가 애정 하는 우리 동네 공간들

건축학개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


과제 때문에 영화 <건축학개론>을 다시 본 아내가, 영화에 나온 대사라며 내게 들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납득이'와 '수지' 그리고 '기억의 습작' 노래만 기억나던 이 영화의 이야기는, 풋풋했던 첫사랑의 시간과 그 시간이 머문 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건축학개론 수업을 듣던 남녀 주인공들은 같은 공간을 탐색하다 애정이 싹튼다.  


건축학에 대해서 나는 1도 모르지만, 그것이 공간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다는 말은 납득이 절로 되는 참 멋진 설명이란 생각이다.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지어지는 건물들을 보면, '참 애정 없이 지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었다. 이해의 시작은 애정이고, 그 애정은 공간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힘인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공간에 대한 애정은 보통 살면서 생긴다. 아내와 나도 이곳 인천의 구도심 동네 주택으로 이사해 살면서 동네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 덕분에 애정도 커졌다. 집을 사는(賣)것은 공간을 사는(活)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구도심 동네는 아파트 단지처럼 브랜드는 없지만, 브랜드 이상의 이야기들이 있다.




나비날다 책방의 주인장 반달이

동네 책방 <나비날다>

딱 봐도 오래된 이 건물 1층은 작은 책방이다. 배다리가 잘 나가던 1950~70년대 시절에는 동네의 랜드마크 상가였다고 한다. 책방의 주인은 고양이 '반달이'이다. 주인을 모시는 집사는 종종 책방을 비우고 농땡이를 친다. 반달이가 하는 일도 사실 거의 잠을 자는 일이다. 손님은 알아서 책을 사고 알아서 돈을 내야 한다. 고양이 관련 책이나 페미니즘 도서 등 핫한 테마로 책을 셀렉팅하는 집사, 아니 주인님의 안목이 뛰어난 곳이다. 가끔 들러 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주인님을 알현하는 재미가 있다.


배다리 헌책방 삼성서림

헌책방 <삼성서림>

배다리는 헌책방 거리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한미서점>과 <아벨서점>이 헌책방 골목의 스타들이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삼성서림도 나는 좋아한다. 절대 동안인 사장님께서 타 주시는 믹스 커피와 클래식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심심한 날이면 사장님이 타 주신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천천히 헌책을 구경하는 느긋함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가끔 사장님께서 클래식 기타도 혼자 연습하시는데, 인자하고 품격 있게 나이를 든다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물 이층은 일제시대 때에도 유도장으로 쓰인 곳이라고 하던데, 아직도 유도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벽시계는 늘 10시 25분.


배다리 공터

배다리 공터

원래 이곳 공터에는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 도로를 내기 위해 모두 허물었다. 하지만 도로를 내려던 계획은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오랜 반대 운동으로 무산되었다. 덕분에 공간이 생겼고 도로는 지하화 하기로 최근 변경되었다고 한다. 공간을 지켜낸 활동가분들과 주민분들에게 감사를! 빈 공간에는 풀이 자라고 새들이 모인다. 요즘엔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덕분에 주민들은 쉴 틈이 생겼다. 작년 이맘때쯤 이곳 공터에서 동네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내가 주도하여 미림극장 전설의 영사기사 조점용 선생을 모시고 <해바라기>를 상영한 것이다.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날의 기억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빈 공간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영화학당(좌)과 창영초등학교(우)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들

집 앞에 학교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어서 좋고 운동장을 우리 마당인양 같이 써서 또 좋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두 학교가, 그것도 본모습 그대로 동네에 있다. 오래된 건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거의 축복과 같은 일이다. 집 옥상에 올라가면 이 오래된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에게는 이 또한 작은 행복이다.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 소리가 학교에서 들리지 않아 동네 전체가 우울한 기운에 젖기도 했다. 점점 줄어드는 학생수도 모두의 걱정이고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막걸리 양조장에서 문화양조장으로!

 인천문화양조장

이 건물은 인천탁주 양조장 건물이었다. 지금은 문화 브루어리로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가끔 전시와 공연들이 이 공간에서 열리고 여러 모임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동네에 이런 오픈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동네 구심점 역할도 하고 지역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겨울에 이곳에 놀러 가면 활동가 선생께서 난로에서 귤을 구워주신다. 난로에는 우리 말고도 고양이 손님이 늘 북적인다. 따뜻한 난로와 구운 귤이 그리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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