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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Nov 29. 2020

우리가 살 뻔했던 집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구도심 주택 산책

"여보, 답답한데 산책 나갈까?"

"어디로?"

"글쎄. 자유공원? 아니다. 오늘은 수봉공원 쪽으로 가보자."

"그래. 그럼 오는 길에 백령도 냉면 먹고 오면 되겠네."


사는 게 거기서 거기다. 어제는 자유공원 오늘은 수봉공원 내일은 인천대공원이 될 것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날은 그래서 불만이고 또 어느 날은 그 때문에 안도한다. 내 마음만 늘 평온할 수 있다면, 새로울 것 없는 이 일상도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집 근처에 공원 다운 공원이 없는 것 빼곤 대체로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덕분에 산책은 딴 동네로의 여정이 되었다. 아내도 나도 소박한 사람들이어서 그저 그렇게 걷다가 우연히 만난 붕어빵집이 맛있으면 그게 행복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스쳐 지나면서도 맛집을 발견해내는 나의 감식력에 자화자찬하며!(망한 경우가 더 많지만.)


수봉공원은 제물포역 앞에 있는 낮은 산인데, 차도를 따라 빙빙 돌다 보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한참 주택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보러 다닐 때 이곳 수봉공원 아래 동네도 아내와 함께 많이 들락거렸다. 동네가 산자락 아래 있어서 공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1호선 급행열차가 서는 제물포역도 멀지 않은 곳이라 위치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내가 어린 시절 생각했던 '마당이 있는 부잣집'들이 아직 남아 있는 그런 한적한 동네다. 물론 그 집들을 우리가 살 순 없었지만.


우리의 구도심 산책은 늘 이런 주택 구경이다.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올라가는 곳들이 있는 반면, 그 뒤에는 변함없이 단정한 주택들이 또 있다. 그 단정함과 개성 있는 집들을 눈에 담으며 골목을 걷는 걸 좋아한다.


"저기 위가 거기 아니야? 우리가 사려고 했던 그 집?"

"그러네. 생각보다 역에서 멀었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사기 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뻔한 집이 둘 있었다. 한 집은 자유공원 아래 문구점 이층 집이었고 또 하나가 바로 수봉공원 아래 이 집이었다. 제물포역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가 옆에 있는 이 집도 이층 집이다. 평수가 적당했고 집 상태도 고쳐 쓰면 예쁘게 나올 수 있는 구조였다. 주차장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집 앞 길가에 대면된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부동산에서 설득했다. 게다가 이 집에는 골목 옆에 있는 작은 창고도 딸렸다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집은 집이랑 창고까지가 하나예요. 여기 보이시죠? 여기가 집이고 여기가 골목 올라가는 길인데 여기도 이 집 땅이고, 그 옆에 한 평짜리 작은 창고도 같은 필지예요."

 

'이게 무슨 말인가. 집을 샀는데 옆에 창고를 끼워준다는 것인가? 원 플러스 원? 아니지. 애당초 마당이었어야 할 곳인데 집과 창고 사이에 골목길이 생겨났다는 말인가? 그나저나 저 창고를 테이크아웃 커피숍으로 하면 딱이겠는데?'


"그럼 이 골목길 일부도 이 집 땅이라는 거예요?"

"그렇죠. 옛날 동네는 이런 데 많아요. 정 뭐하면 진정서를 내서 구청에 팔 수도 있고…. 창고는 안 쓸 거면 우리가 임대 놔줄 테니 걱정 말아요."

"그러면 얼마까지 깎아주실 겁니까?"


집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창고가 더 솔깃했다. 아내가 한창 커피에 열중했을 때라, 창고를 로스터리 룸으로 활용하면 좋을 듯 보였다. 게다가 주말에는 수봉공원에 놀러 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테이크아웃 커피숍을 해도 좋을 그런 위치였다. 그래서 구청에도 문의해보고, 토지 대장을 떼서 구청 근처 건축사 사무실도 찾아가 봤다.


"이런 집을 왜 사요? 집 사는 거 처음이면 앞으로 내 말 명심해서 들어요. 집은 네모 반듯한 데를 사는 거요."


아직도 건축사 아저씨의 말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사람을 얕보는 듯한 말투가 기분 나빴지만 애송이에게 한수 가르쳐 주는 고수의 말처럼 권위가 있었다. 건축사 선생 말대로 복잡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다. 구청 담당자도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그런 사유 재산을 어떻게 구청이 다 사냐며 설사 민원이 발생해도 구청이 해결하기까지 절차가 쉽지 않다'라고 말해 주었다. 창고를 변경해서 뭘 하는 것도 용도변경부터 시작해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미련이 조금 남았는데 '그러면 골목길에 벽을 쌓아 막아서 민원 나오게 하면 되지 않겠냐'는 부동산의 말을 듣고,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고 살란 말인가?


재개발을 앞둔 전도관 동네. 주택들은 제 각각 얼마나 개성 넘치는지.


다시 가본 그 집은 그대로였다. 우리가 집을 보던 때에도 문에 쑤셔 박혀 있던 각종 고지서들이 여전했다. 그 옆 창고는 웬일인지 말끔히 페이트가 칠해져 있었다.


"이 집 아직도 안 나갔나 보네. 그때 안 사길 정말 잘했어."

"그러게. 그런데 부동산에서 왜 이 집을 보여 준 걸까?"

"우리가 어리숙해 보였던 거지 뭐."

"그나저나 우리가 처음 살던 아파트 있잖아. 거기 지금 얼만 줄 알아?"

"얼만데?"

"일억이 더 올랐데.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는데."

"그러게, 아깝다. 거기 보일러 오래돼서 망가질까 봐 안 산 거잖아. 하하하."

"그때는 집을 사야지 하는 마음도 없었지 뭐."


'집을 뭣하러 사나, 전세로 이 동네 저 동네 좋아하는 동네에서 몇 년씩 살면 좋지.'라고 생각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여러모로 고달플 수 있는 선택을 멋모르고 쉽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눈을 흘기며 부동산 옆을 지났다. 수봉공원 정상 근처에 또 우리가 본 주택이 있었는데,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4층짜리 빌라가 되어 있었다.


"이 집을 사서 우리도 이렇게 했어야 했나?"

"돈을 생각하면 그런데, 참 별로다. 그치?"

"신포동에 우리가 본 집 있잖아. 거기도 지금 두 배는 올랐데?"

"그래?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나?"

"그러게. 세탁소 아줌마 이야기 들어보니까 우리 동네도 좀 올랐다는 거 같더라."

"지금 안 오른 데가 어딨어. 올라봤자지 뭐."

"이렇게 다들 오르면 우리는 평생 우리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거 아냐? 하하."

"그래도 그나마 집이 있으니까 다행이다, 정말."


산책은 또다시 주택 구경이 되었고 부동산 걱정에 이르러서는 평온하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남들처럼 오를 집을 샀어야 했나. 아니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면 다른 데라도 투자를 해야 하나. 그런데 투자할 돈이 어딨남? 더 늦기 전에 대출을 땡겨, 땅이라도 사?'


저 앞 주택들은 제각각 아름다워서 나의 눈을 붙들고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주택의 불편함을 저마다의 방편으로 꾸미고 사는 골목의 모양새들은 정겹고 다정하다. 그래, 집이 무슨 죄가 있나. 집을 집으로 보지 않는 세상이 문제지. 부동산 대책 백번 내놓아봐야, 이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다 쓸데없는 짓 아닌가. 그런데 사람 생각 바꾸는 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기야, 사진 그만 찍고 빨리 와."

"그래. 냉면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비냉이야 물냉이야?"

“당연 물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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