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으로부터의 해방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가장 통쾌한 일은 한밤의 음악 감상이다. 한 손엔 책, 다른 손엔 술 그리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올리고 듣는 음악!
'아~ 상쾌해. 역시 음악은 크게 들어야 제맛이야.'
술, 책, 음악... 삼위일체가 있다면 초고가 아파트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구도심 단독주택이 선물해준 소리의 해방감에 취해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다. 음악은 역시 공간감 아니던가.
그리고 또 하나의 해방감은 한밤의 망치질이었다. 이사하고 못을 박을 일이 꽤 있었는데, 오아시스 앨범을 틀어놓고 망치질해대는 내 모습에 내가 다 뿌듯했다. '아! 그동안 아파트에 살며 얼마나 눈치 보며 살아왔던가. 내 더 이상 의자 따위 들지 않고, 끌고 다니리.'
반면 우리가 이사한 구도심 동네는 한적하기가 어디 시골보다 더 했다. 해가 지면 동네는 고요해졌는데, 그 정도가 고요를 넘어 거의 뮤트 상태로 소리를 속으로 삼키는 듯했다. 그래도 층간소음에 시달려 중증 신경증 환자가 된 우리에겐 그 고요가 얼마나 좋았던지,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그때 또 했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의 이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을, 소리가 있는 삶을 선물해 주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멀리서 들리는 베이스 음에 눈을 뜬 일이 있었는데, 세상에 정신 차리고 들어 보니 멀리 항구에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였다. 아내와 나는 잠에서 깨어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여기는 인천 배다리, 그러니까 옛날엔 배가 드나들던 동네였단 말이지.'
또 어느 비 오는 날에는 옆집 기와지붕과 장독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렇게 또 낭만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는데, 제 각각 집들에선 마치 다른 악기처럼 저마다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소리는 앞집 할머니 텃밭에, 옆집 통장님 기와에, 뒷집 문방구 차양에 그리고 골목길 담벼락에 숨어 있다 '짠~' 하고 나타났다. '하! 빗소리가 이렇게 풍성할 수 있다니.'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평균적인 소리에, 소리가 아닌 소음에 숨 죽이며 살아왔나.
오늘 밤도 술+책+음악 삼위일체에 취하여 (오늘은 그 셋 비율을 잘 못 말아서, 술 비율이 꽤 높았어요) 이사하고 썼던 당시 일기를 꺼내 읽어 보는 걸로 끝냅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네요.
"지난밤은 적막했다. 어둠이 내리면 마치 소리를 차단하는 막이 함께 내리는 것처럼 동네는 고요해진다. 그 고요함에 진력이 난 동네 고양이들은 간혹 신경증 같은 소리를 낸다. 환기를 하려 창문을 열면 이따금 지나가는 1호선 전철 소리가 밤의 적막에 파문을 일으킨다. 시끄러운 것으로만 따지자면 열차 소리만큼 큰 소리가 없다. 하지만 그 소리는 소음이라기보다 리듬과 음악에 가깝다. 기차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정해진 궤도를 달릴 뿐이란 걸 알지만, 열차는 어디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것만 같다.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소란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적막과 가끔씩의 소란이 좋아 나는 이곳 오래된 동네로 이사했다. 우리 삶엔 소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