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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01. 2020

단독주택 살이, 소리가 있는 삶

층간소음으로부터의 해방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가장 통쾌한 일은 한밤의 음악 감상이다. 한 손엔 책, 다른 손엔 술 그리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올리고 듣는 음악!


'아~ 상쾌해. 역시 음악은 크게 들어야 제맛이야.'


술, 책, 음악... 삼위일체가 있다면 초고가 아파트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구도심 단독주택이 선물해준 소리의 해방감에 취해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다. 음악은 역시 공간감 아니던가.


그리고 또 하나의 해방감은 한밤의 망치질이었다. 이사하고 못을 박을 일이 꽤 있었는데, 오아시스 앨범을 틀어놓고 망치질해대는 내 모습에 내가 다 뿌듯했다. '아! 그동안 아파트에 살며 얼마나 눈치 보며 살아왔던가. 내 더 이상 의자 따위 들지 않고, 끌고 다니리.'


주택으로 이사하고 드디어 사과박스에서 탈출한 CD들. 요즘엔 예전처럼 음악을 많이 안 들어도 인테리어 효과는 있네요


반면 우리가 이사한 구도심 동네는 한적하기가 어디 시골보다 더 했다. 해가 지면 동네는 고요해졌는데, 그 정도가 고요를 넘어 거의 뮤트 상태로 소리를 속으로 삼키는 듯했다. 그래도 층간소음에 시달려 중증 신경증 환자가 된 우리에겐 그 고요가 얼마나 좋았던지,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그때 또 했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의 이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을, 소리가 있는 삶을 선물해 주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멀리서 들리는 베이스 음에 눈을 뜬 일이 있었는데, 세상에 정신 차리고 들어 보니 멀리 항구에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였다. 아내와 나는 잠에서 깨어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여기는 인천 배다리, 그러니까 옛날엔 배가 드나들던 동네였단 말이지.'


또 어느 비 오는 날에는 옆집 기와지붕과 장독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렇게 또 낭만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는데, 제 각각 집들에선 마치 다른 악기처럼 저마다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소리는 앞집 할머니 텃밭에, 옆집 통장님 기와에, 뒷집 문방구 차양에 그리고 골목길 담벼락에 숨어 있다 '짠~' 하고 나타났다. '하! 빗소리가 이렇게  풍성할 수 있다니.'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평균적인 소리에, 소리가 아닌 소음에 숨 죽이며 살아왔나.


오늘 밤도 술+책+음악 삼위일체에 취하여 (오늘은 그 셋 비율을 잘 못 말아서, 술 비율이 꽤 높았어요) 이사하고 썼던 당시 일기를 꺼내 읽어 보는 걸로 끝냅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네요.


"지난밤은 적막했다. 어둠이 내리면 마치 소리를 차단하는 막이 함께 내리는 것처럼 동네는 고요해진다.  고요함에 진력이  동네 고양이들은 간혹 신경증 같은 소리를 낸다. 환기를 하려 창문을 열면 이따금 지나가는 1호선 전철 소리가 밤의 적막에 파문을 일으킨다. 시끄러운 것으로만 따지자면 열차 소리만큼  소리가 없다. 하지만  소리는 소음이라기보다 리듬과 음악에 가깝다. 기차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정해진 궤도를 달릴 뿐이란  알지만, 열차는 어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것만 같다.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소란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적막과 가끔씩의 소란이 좋아 나는 이곳 오래된 동네로 이사했다. 우리 삶엔 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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