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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15. 2020

일인칭 근황

# 생일 선물로 받은 소설집 [일인칭 단수]를 읽었어요. 책을 읽으며 몇 가지 놀란 점이 있는데, 생각보다 책이 술술 잘 읽혔고 생각보다 하루키 선생은 나이가 많더군요. 제게는 늙은(선생께는 미안합니다) 선생의 글이, 젊은 하루키보다 편하고 읽는 맛도 더 있었습니다.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도 느낀 거였는데, 자기 얘기인지 소설인지 헷갈리는 노 작가의 글들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저도 이제 나이를 먹는 건지 어딘가 쓸쓸하고 수수한 글들에 눈길이 가요.  

 책을 읽다 대학시절이 생각났어요.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서점에서 책을 (아마) 열 권 사면 한 권을 무료로 주는 쿠폰제도를 했었는데, 그때 처음 산 책이 [상실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제가 가입한 동아리에서는 서점 쿠폰으로 무슨 책을 샀느냐가 그 사람을 재보는 기준이 되기도 했는데, 선배들에게 비난(?) 같은 걸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탈모 치료제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은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라고도 하더군요.


# 해몽을 하면 돈이 들어오거나 좋은 일이 생긴다는 꿈을 근래 세 번이나 꾸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 내심 기대가 컸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옷을 사 입으라며 돈 봉투를 주시더군요.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생 어머니에게 이렇게 큰돈은 처음 받아봤어요. 하지만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건 아닐 거야.'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전 직장에서 저를 불러 퇴직 위로금(?)이라며 돈 봉투를 내밀더군요. 퇴직금도 받은 상황에 뜻밖의 일이라 또 놀랐습니다. '아니야, 이것도 아닐 거야.'


# 우리에게 용돈을 받는 어머니가, 봉투를 내민 건 최근 제가 이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눈치는 봐가며 옷을 입어야 하는 곳으로 말이죠. 일인칭 제 인생에서는 굉장히 큰일이었는데, 코로나 시국 때문이었는지 탈모제 영향 탓인지, 그동안 별일 아닌 것처럼 무던하게 지내왔습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에야 실감이 나네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 시기에 글을 끄적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퇴근하고 책을 읽고 이렇게 뭐라도 끄적이다가 출근을 하면 모든 게 낯설게 느껴져요. 퇴근 후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좋은 반면, 매일 새롭게 낯선 상황을 부딪쳐야 하는 것 같은 불안이 늘 따라다닙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으니, 좋네요. 특히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가 위안이 되었어요.


# 두 번의 꿈은 뜻밖의 돈봉투와 맞바꾸었다 쳐도, 저에겐 아직 한 번의 길몽이 더 남았네요.


# 이직한 곳의 직장 동료는 매주 로또를 사는 데, 그 금액을 듣고 조금 놀랐어요. '그 정도는 사야 길몽이 실현되는 건가.' 하지만 저는 아직 간이 작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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