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식물 키우기

by 봉봉

자신의 취향을 알아 간다는 것, 내겐 나이 들어 좋은 건 그것 하나뿐이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가 한결 수월해짐을 느낀다. 예전엔 남을 따라 좋아하는 걸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한 적도 있었고 성역할이나 사회적 관습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이가 드니 이런 착오들이 하나씩 정리되면서 삶이 간결해져 좋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지러웠지만 리듬감 있던 젊은 시절은 이제 끝나는 건가.' 하는 서운한 마음도 든다. 삶의 군더더기가 사라지면서 그에 따라 감정의 맥박도 가라앉으니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뒤늦은 취향 발견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소위 '꼰대'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걸 이제 명확히 알았고 그러니 이제부터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착각이 꼰대의 사고방식이라면 말이다. 내가 아는 꼰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옳은 것을 혼동한다. 확고해진 자신의 취향을 가치판단의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 오류에 빠지기 쉽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뒤늦은 취향의 발견 역시, 나이 들어 좋은 일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해지면서 뒤늦게 발견한 나의 취향이 있으니, 식물 키우기이다. 언제부터 식물이 좋아졌나 모르겠으나 어쩌다 보니 집안에 화분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들여놓은 테이블 야쟈, 수염 틸란드시아, 디시디아, 스파티필름으로 시작해 물만 줘도 잘 자라는 인도 고무나무, 뱅갈 고무나무 등이 집안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집들이 때 지인들이 선물해준 스투키와 금전수 그리고 오래된 안시리움과 해피트리도 같이 자란다. 여기에 카페에서 보고 반해버린 알로카시아와 유칼립투스 나무, 크로톤, 셀럼도 사들였다. 가격이 비싼 드라코와 올리브 나무는 이제나 저제나 주머니 사정을 보고 있다. 바질, 민트, 로즈메리, 라벤더, 구문초 같은 허브 식물들도 집 밖에 심어 봤다. 주택에 사니 집 밖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어 좋다. 단독주택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다. 2층 발코니와 계단에 화분을 놓으니 한결 집에 생기도 돌고 식물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


잎이 나고 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셀럼!


나도 모르게 자꾸 식물을 들이는 이유는 아내와 시장에 갈 때마다 화분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나의 화분 단골집은 시장 길가에 있다. 특이하게도 이 집은 겨울에는 생선을 팔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화분을 판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일종의 편집숍인 셈이다. 이 집에서 화분을 팔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이고 생선이 등장하면 겨울로의 진입인 것이다. 생선을 팔다가 화분을 팔게 된 건지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겨울에는 식물을 팔기 어려우니 생선을 팔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식물을 파는 게 더 좋다고 수줍게 이야기하신다. 나도 화분을 파실 때의 아주머니가 더 좋다. 아무튼 시장에 갈 때마다 꼭 이 집을 들러 '오늘은 뭐 데려갈 게 없나'를 살피는 게 나의 구도심 쇼핑, 라이프 스타일이다.


식물을 좋아한다고 잘 키우는 것은 또 아니다. 한때는 나도 식물 살인마였다. 좋아했던 알로카시아를 죽였고 매주 하나씩 스투키 몸통을 칼로 난도질했다. 왜 그런지 스투키는 차례로 하나씩 썩어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까운 동백나무를 비롯해 여러 식물들을 영문도 모른 채 떠나보내야 했다. 어느 날은 하도 답답해 식물을 잘 키우시는 엄마께 비법을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식물을 그렇게 잘 키워?"

"그냥 때맞춰 물만 잘 주면 되지."

"그거밖에 안 해요? 영양제 같은 것도 안 주고?"

"아침마다 반갑다고 이야기해."


맙소사. 그렇다. 이 장면은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야기를 건네는 이들이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 이게 정말 비법인 건가.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의사소통의 단절 때문이란 말인가? 아침마다 식물과 이야기하기에는 서로 어색할 듯하여, 어떤 환경을 식물이 좋아하는지 인터넷을 뒤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물의 이름을 알아야 했다. 어떤 식물은 여태 통성명조차 하지 않고 함께 살아온 녀석도 있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듯 식물들도 좋아하는 환경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어리석게도 그제야 밖에서 겨울을 나는 식물과 아닌 식물을 구분하는 걸 배웠다. 다행히 밖에 내놓은 블루베리와 장미, 앵두와 라일락은 다음 해에도 싹을 틔웠다. 언제 얼마나 물을 줘야 하는지 화분갈이는 또 언제 하는지도 차례로 알아나갔다.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친환경 세제(EM)를 받아다가 식물에 뿌려주면 좋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는데 식물을 모두 화분에 심어서인지 성장이 원활치 않았다. 우리 집은 주택이지만 평수가 작아서 마당이랄 것도 없고 그마저도 시멘트로 덮여 있어 땅에 식물을 심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식물들은 맥을 잃고 늘어졌다. 리모델링을 하며 땅을 팠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러질 못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한번 땅을 파?' 그러다 어떤 놀라운 일이 '서프라이즈~'하며 내게 달려들지 않을까? 아니면 '이참에 옥상을 정원으로 만들어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내 취향을 알고 나니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나니 삶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도 삶은 쉽게 간결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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