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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17. 2021

저성장 시대의 취향 추구 공간, 집

# 요즘 집에 대한 신간들을 보며 '집 없는 비혼 남성 이야기가 출간될 수도 있겠네요.'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책이 나왔습니다. <첫 집 연대기>(박찬용)를 이틀 동안 재밌게 읽었어요. 


# '2010년대 후반 서울에 혼자 살게 된 어느 평범한 30대 남자가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살아보겠다고 애를 써보는 이야기'라고 스스로 말하는 이 책은 미혼 남성의 집 장만 성공 스토리는 아닙니다. 지난주 읽은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김민정)가 30대 비혼-비정규직-페미니스트 여성의 아파트 장만 스토리라면 이 책은 보증금 500만 원에 35만 원 단독주택 월셋집을 구한 30대 정규직(후엔 비정규직) '허세남'의 첫 집 셀프 리모델링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네요. 


# 독하게 내 집을 장만한 자나, 세상 물정 모르고 남의 집에 세를 들어간 자나, 두 이야기는 모두 설득력이 있습니다. 30대 독신 여성에게는 그래서 자기 집이 더 필요했겠구나 싶고, 30대 미혼 남성이 생각하는 집에 대한 사유에도 공감이 가더군요. 그래서 500에 30 월세집을 자기 집처럼 고치고 사는 '무모한' 저자의 허세 같은 행위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월세 살이를 해야 하는 현실과 라이프스타일 잡지사 에디터라는 직업에 기인한 일종의 '허영' 혹은 '허세'의 간극을 지켜보는 재미가 이 책을 읽는 동력입니다. 거기에 독특한 집주인 할머니와의 신경전이 웃음이 터지는 지점이고요. 그런데 이런 허세 혹은 허영이 특정한 직업 때문에 생긴 저자만의 별난 행위가 아니라 주택 매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대가 찾은 일종의 대체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를 테면 '어차피 집 사기는 틀렸으니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채워 넣겠다.' 


# 서울에서 아파트를 욕망하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허영인 시대가 돼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에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빌릴 수밖에 없는 일종의 사치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 모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허세라고 칭하는 행위가 실은 본인에게는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살아보고픈' 일종의 취향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대로 '저성장 시대의 취향 추구'가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이죠. 그러니 분수에 맞지 않는 고급진 '취향 부림'이 모두 허세나 허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저에게는 그 지점이 이 책을 재밌게 읽은 부분이에요. 사실 저의 <그래서 우리는 구도심 주택을 샀다> 이야기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우리는 서울이 아닌 곳, 지방 구도심에 내 집을 장만했고 허세남에게는 내 집보다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더 중요했던 차이 정도입니다. (물론 허세남에게는 저희처럼 그럴만한 작은 종잣돈마저 없긴 했지만요.)  



# 그나저나 늘 제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첫 집 연대기>는 좀 의문이었어요. '연대기'라는 뜻이 무엇을 뜻하는지 끝까지 읽어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래서 우리는 구도심 주택을 샀다>라는 제목도 썩 어울리는 제목은 아니네요. 브런치 북이 아니라 실제 종이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지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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