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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r 09. 2021

옥상에 심을 나무를 샀습니다

옥상 정원 만들기

#1 주말에 관교동에 들러 나무를 샀습니다. 3년 만에 나무를 샀던 곳을 다시 찾으려니, 어디였는지 좀 헷갈리더군요. 그때 샀던 장미와 앵두는 아직 화분에서 잘 자라고 있어요. 추위와 더위에도 강한 아이들이라 웬만하면 잘 자란다 해서 샀는데 말대로 무탈하게 크고 있습니다. 이번엔 옥상에 심을 나무를 뭘로 하면 좋을까 며칠 고민을 했어요. 옥상은 여름엔 그야말로 땡볕이라 더위에 유독 강한 나무들 중에 찾아야 했습니다. '옥상엔 블루베리가 정답'이라는 말이 많아서 그래 볼까 고민을 좀 했는데, 매일 물을 듬뿍 줘야 한다길래 자신이 없었어요. 저희 집 옥상엔 수도가 없거든요. 또 새들이 저보다 열매를 먼저 먹어치워 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잘 못 했다간 매일 새똥만 치울 거 같더군요. 그래서 찾은 것이 매화와 라일락입니다. 라일락은 아내가 좋아하는 나무이고 매화나무는 꽃도 예쁘고 열매까지 있으니 더 좋을 듯했어요.


#2 그런데 막상 나무 농장에 갔더니 매화나무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하시는 분과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께서는 벚나무를 추천해주셨어요. 마침 묘목으로 벚나무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 농부 아저씨는 참 느긋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나무를 잘 모른다 하니 할 일도 많아 보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 해주셨어요. 나무를 정말 좋아하는 분 같았습니다. 두말 않고 거금을 들여 가장 잘생긴 벚나무를 데리고 왔습니다. 곧 우리 옥상에 벚꽃이 필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더군요. 계획대로 라일락도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3 굳이 관교동까지 가서 나무를 산 것은 근처에 알라딘 중고매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사러 가기 전 책을 몇 권 샀는데 <나를 닮은 집짓기>(박정석)란 제목에 눈길이 가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집과 참 닮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걸 제목으로 잘 썼더군요. 내용은 강릉 근처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은 서울의 젊은(?) 부부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길 줄 아는 아내의 과감함과 용기가 집을 지어가는 동력이 됩니다. 무모하지만 멋진 분이에요. 저자는 집 짓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고 시작하지만 나중엔 현장 감독 노릇도 하며 결국 6개월 만에 자신과 닮은 집을 짓게 됩니다. 돈은 늘 부족하고 시골에 마음에 드는 시공업체가 있을 리 없고, 말만 들어도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을지 상상이 되죠. 그런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2013년에 나온 책이니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집짓기 정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을 텐데,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책도 사고 나무도 사고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신났어요. 과속 딱지를 끓는다 해도 허허 웃으며 면허증을 내줄 기분이었습니다. 옆 자리에 있는 책을 보다가 그러고 보니 책도 나무로 만든 물건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처음 안 사실인 것처럼요. 농부 아저씨처럼 저도 나무가 점점 더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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