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 Mar 17. 2021

옥상 정원 만들기

수도꼭지 갈다 꼭지 돌 뻔

# 파란색 대형 ‘빠께스’를 샀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옥상에 물을 저장할 용기로 가격 대비 이만한 게 없더군요. 대신 디자인을 포기했습니다. 마음속엔 브루트 컨테이너가 있었지만 물통 사자고 10만 원을 쓸 수는 없는 거니까요. 빨간 고무통을 사려던 걸 아내가 말려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역시 예쁜 건 비싸고 싼 건 안 예쁩니다. 동네에 이런 걸 파는 데가 많아 인터넷 쇼핑몰보다 거의 만원 가량 싸게 살 수 있었어요. 그나저나 ‘빠께스’ 통 아시죠?      


# 옥상 물통에 물을 담기 위해 긴 호스가 필요했어요. 이번에는 코스트코에 갔습니다. 코스트코에 간 이유는 원예 코너가 있기 때문이죠. 예상대로 봄이라 그런지 묘목들을 팔더군요. 블루베리, 무화과, 보리수, 매화, 복숭아 같은 나무들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모두 데려오고 싶었으나 분갈이 흙 두 포대와 매화만 한 그루 샀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귀여운 허브들을 대신 데리고 왔어요.     


# 신이 나서 집에 돌아오니 <노후주택 리모델링>이란 책이 와 있더군요. 이 책엔 저희 집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원속의 내집]이란 월간지에서 발간한 책인데 뒤늦게 저희에게 보내주었어요. 이 책은 도심 속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해 살고 있는 건축주와 그 사례들을 묶은 책입니다. 잡지에 실은 내용을 책으로 엮으며 주택을 리모델링할 때 필요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어요. 실제 주택을 리모델링해 살고 싶은 분이라면 미리 보면 좋을 책입니다. 건축사와 건축주의 리모델링 팁을 따로 추가한 부분도 재밌더군요. 입장이 다르니 서로 생각하는 지점도 다르니까요. 저희도 이 책을 미리 봤더라면 집을 더 잘 고치고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저희가 집을 리모델링하며 챙기지 못해 후회하고 있는 게 욕조와 수도입니다. 욕조는 화장실 크기에 맞출 게 아니라 용도에 맞춰 직접 선택해야 했고 수도꼭지는 야외 어딘가에는 꼭 하나 설치해야 합니다. 옥상 정원을 위해서는 옥상에 수도꼭지를 설치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이 고생을 하고 있어요. 실내에도 호수를 연결할만한 수도꼭지가 없어서 세탁실에 있는 걸 양갈래 꼭지로 교체하는 걸 제가 해보기로 했어요.  

    

# 수도꼭지 갈다가 꼭지가 돌 뻔했습니다. 아무리 돌리고 조여도 배관 이음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또옥 또옥 떨어지며 저를 울렸습니다. 수도 밸브가 있는 계량기는 대문 앞 골목길에 있어서 2층 세탁실에서 골목까지 열댓 번을 오가며 땀을 또 뚝뚝 흘렸어요. 그러기를 두 시 간. 나중엔 양갈래 수도꼭지를 판 철물점 아저씨를 속으로 욕하기도 했어요.


"이거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똥손인데요."

"에이.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사모님도 할 수 있어요."


한심하다는  저를 쳐다봤던 철물점 아저씨를 원망하며 볼트를 돌리고  돌렸습니다. 밸브 이음새에 감아야 하는 테프론 테이프를 처음엔  바퀴 돌려 감기도 하고 다섯 바퀴를 감기도 해보고 나중엔  바퀴를 돌려 감으면서 물을 었다 았다를 반복했어요. 정답은  바퀴였던  같고  중요한 것은 수도 밸브를 정말 사력을 다해 돌려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크고 좋은 렌치가 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  집에 있으리 없잖아요. 집에 있는 걸로 어떻게든 해보려니 나중엔 기운이  빠지더군요. 마지막으로 돌려보고 안되면 철물점 아저씨 부르기로 마음먹고 돌렸는데 그제야 이음새에 고이던 물방울이 사라졌어요. 만세! 수도꼭지에서는 물방울이 멈추고 대신  눈에서 또옥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도꼭지 하나 갈지 못하는 남편이 되긴 싫었거든요. 아무나   있는 건데 말이죠.


#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아버지’는 정말 위대한 아저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코스트코에서 사 온 호스 길이가 짧아서 바꾸러 가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렇게 해서 도대체 언제 옥상 정원을 만들죠?




작가의 이전글 옥상에 심을 나무를 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