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 갈다 꼭지 돌 뻔
# 파란색 대형 ‘빠께스’를 샀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옥상에 물을 저장할 용기로 가격 대비 이만한 게 없더군요. 대신 디자인을 포기했습니다. 마음속엔 브루트 컨테이너가 있었지만 물통 사자고 10만 원을 쓸 수는 없는 거니까요. 빨간 고무통을 사려던 걸 아내가 말려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역시 예쁜 건 비싸고 싼 건 안 예쁩니다. 동네에 이런 걸 파는 데가 많아 인터넷 쇼핑몰보다 거의 만원 가량 싸게 살 수 있었어요. 그나저나 ‘빠께스’ 통 아시죠?
# 옥상 물통에 물을 담기 위해 긴 호스가 필요했어요. 이번에는 코스트코에 갔습니다. 코스트코에 간 이유는 원예 코너가 있기 때문이죠. 예상대로 봄이라 그런지 묘목들을 팔더군요. 블루베리, 무화과, 보리수, 매화, 복숭아 같은 나무들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모두 데려오고 싶었으나 분갈이 흙 두 포대와 매화만 한 그루 샀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귀여운 허브들을 대신 데리고 왔어요.
# 신이 나서 집에 돌아오니 <노후주택 리모델링>이란 책이 와 있더군요. 이 책엔 저희 집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원속의 내집]이란 월간지에서 발간한 책인데 뒤늦게 저희에게 보내주었어요. 이 책은 도심 속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해 살고 있는 건축주와 그 사례들을 묶은 책입니다. 잡지에 실은 내용을 책으로 엮으며 주택을 리모델링할 때 필요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어요. 실제 주택을 리모델링해 살고 싶은 분이라면 미리 보면 좋을 책입니다. 건축사와 건축주의 리모델링 팁을 따로 추가한 부분도 재밌더군요. 입장이 다르니 서로 생각하는 지점도 다르니까요. 저희도 이 책을 미리 봤더라면 집을 더 잘 고치고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저희가 집을 리모델링하며 챙기지 못해 후회하고 있는 게 욕조와 수도입니다. 욕조는 화장실 크기에 맞출 게 아니라 용도에 맞춰 직접 선택해야 했고 수도꼭지는 야외 어딘가에는 꼭 하나 설치해야 합니다. 옥상 정원을 위해서는 옥상에 수도꼭지를 설치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이 고생을 하고 있어요. 실내에도 호수를 연결할만한 수도꼭지가 없어서 세탁실에 있는 걸 양갈래 꼭지로 교체하는 걸 제가 해보기로 했어요.
# 수도꼭지 갈다가 꼭지가 돌 뻔했습니다. 아무리 돌리고 조여도 배관 이음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또옥 또옥 떨어지며 저를 울렸습니다. 수도 밸브가 있는 계량기는 대문 앞 골목길에 있어서 2층 세탁실에서 골목까지 열댓 번을 오가며 땀을 또 뚝뚝 흘렸어요. 그러기를 두 시 간. 나중엔 양갈래 수도꼭지를 판 철물점 아저씨를 속으로 욕하기도 했어요.
"이거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똥손인데요."
"에이.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사모님도 할 수 있어요."
한심하다는 듯 저를 쳐다봤던 철물점 아저씨를 원망하며 볼트를 돌리고 또 돌렸습니다. 밸브 이음새에 감아야 하는 테프론 테이프를 처음엔 두 바퀴 돌려 감기도 하고 다섯 바퀴를 감기도 해보고 나중엔 열 바퀴를 돌려 감으면서 물을 틀었다 닫았다를 반복했어요. 정답은 열 바퀴였던 것 같고 더 중요한 것은 수도 밸브를 정말 사력을 다해 돌려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크고 좋은 렌치가 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 게 집에 있으리 없잖아요. 집에 있는 걸로 어떻게든 해보려니 나중엔 기운이 다 빠지더군요. 마지막으로 돌려보고 안되면 철물점 아저씨 부르기로 마음먹고 돌렸는데 그제야 이음새에 고이던 물방울이 사라졌어요. 만세! 수도꼭지에서는 물방울이 멈추고 대신 제 눈에서 또옥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도꼭지 하나 갈지 못하는 남편이 되긴 싫었거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아버지’는 정말 위대한 아저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코스트코에서 사 온 호스 길이가 짧아서 바꾸러 가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렇게 해서 도대체 언제 옥상 정원을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