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책 - 나자(Nadja)
그녀는 내게 이름을 말해주었는데,
자기가 직접 고른 것이라고 했다.
“나자예요. 러시아 말로 ‘희망’이 그렇게 시작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시작이라서요.”
'나자예요, 왜냐하면 나자는 러시아어로 ‘희망’이라는 말의 어원이기 때문이고, 또 단지 어원일 뿐이기 때문이죠.’ (앙드레 브르통, 『나자』, 오생근 역, 민음사, 2008. 68쪽) ‘어원’이라고 해석한 불어 ‘commencement’을 ‘시작’으로 바꿔 번역해 보았다.
겨울이었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희미한 네온사인 앞엔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잔뜩 움츠리고 서 있었다. 드레스에 붙은 스팽글이 바람에 옴짝거렸다. 차가 막혀 길가 풍경은 슬로비디오로 흘렀다.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낯익다. 소풍 가 술 먹고 추태 부리다가 자퇴당한 우리 반 날라리, 선생님께 고자질했다고 내 뒤를 쫓아다니며 죽여버린다, 하던 그 아이. 그런데, 학교에서 쫓겨난 그 아이는 저 음침한 곳에서 너무 추워 보였다.
‘그때 나는 옷차림이 매우 초라한 한 젊은 여자가 내 쪽으로 한 열 걸음쯤 떨어진 지점에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녀 또한 나를 보고 있거나 이미 본 듯했다.’(65쪽)
초현실주의 소설 『나자(Nadja)』에서, 작가는 1926년 10월 4일 파리 라파예트 거리를 걷다가 초라한 한 젊은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 이름이 나자이다. 이 작품을 만난 건 내 나이 서른 초반 무렵이었다. 브르통이 『나자』를 썼던 나이(30세) 비슷할 거다. 내 머릿속에선 작가가 보고 있는 젊은 여자 위로 길가에 춥게 서서 호객하던 중학교 때 그 아이가 겹쳐 떠올랐다. 왠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거리를 떠도는 여자가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지 않았을까? 프랑스 사람들도 암호해독이 필요하다고 하는 글을 외국어로 간신히 읽는 학생 입장으로 유일하게 알아먹은 장면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업 때 읽은 작품이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읽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읽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끌린다’는 거였다. 작가 브르통을 초현실주의의 ‘교황’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초현실주의 운동에 있어서 브르통이 갖는 교조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쓴 글이, 성경처럼, 어려운 말은 없어도 읽는 사람 사정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에 따라, 의식의 변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늘 그렇게 우연처럼 만나고, 알 수 없어 끝내지 못하고 또, 우연처럼 아주 작은 하나를 알게 되고, 그래서 또 끌려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나에겐 이 『나자』가 그렇다. 1928년에 출간되었으니 조금 더 있으면 100년 전 작품이 되는데도 내겐 지난 이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잊히지 않는 질문처럼, 지금 여기서 함께 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답은 언제나 미래에만 있을 듯이 말이다. 이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건 2008년이다. 번역된 글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모호함에 때론 오역이 있더라도 아니, 애초에 ‘모든 게 가능하다’며 두 팔 두 발 벌리고 있을 것만 같은 작품이라서 매력은 여전했다. 묘사 대신 삽입된 사진이 이런저런 말을 걸고 상상력을 부추긴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치면서 만나는 사람들 흔적도 그렇다….
아니, 나는 지금 『나자』라는 작품과 나의 인연을 되짚어 보는 중이다. “불어불문학은 어떻게 가게 된 거죠?” 사서자격증을 따고 무작정 원서를 제출한 도서관 관장님은 내게 물었다. 좀 당황했다. 릴이라는 도시 변두리에서 아무것도 없이 파리로 온, 나자 같은 나이 젊은 지원자 입장이었다면, 출제자 의도가 뭔지, 배운 대로, 한 치 의심 없이, 간단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어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조금만 돌리면 됐고 기억의 모양도 단순했을 테니. 쉰 살이 되어 답을 하려고 보니 거슬러 가야 할 시간이 꽤 되고 그 기간 쌓인 이야기가 얼기설기 엮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불어를 좋아했고 불어불문학과 진학을 결심한 건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뜬금없고 지엽적인 답이었다. 관장님은 이해가 안 간다는 눈치였다. 정말 그 책을 읽고 불문과를 간 거냐고 재차 물었다. 면접 시간은 짧고 이유를 설명하자니…, 젊음의 불확실하지만 찬란한 미래도 나는 내세울 수 없고, 그들이 중년인 내게 기대하는 사회적 결과물도 보여줄 게 없다는 생각에 창피하고 슬펐다.
진짜로 그랬다. 브르통은 스물여덟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했고, 마누아르 당고(Manoir d’Ango)라는 저택에서 두 주 만에(열흘만이라고도 한다) 썼다는 이 『나자』에서만도 수없이 많은 문인과 화가, 철학자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다. 쉰 살이 넘어까지 불어를 놓지 않고 그 문화와 문학에 집착한 동기가, 작가 자신도 써 놓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여주인공 서윤주라니. 늘 이런 식이다. 멋진 구석이라곤 도무지 없잖아. 별거 없어 민망하지만 참말로, 책에서 주인공 임형빈이 서윤주를, 실은 영문과인데 불어책을 들고 다니는 걸 보고 불문과 학생으로 착각해 찾아다니는 걸 읽고서, 불문학과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988년인가 책 출간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한창 정신없을 시기, 체육 선생님이신 아빠와 함께 TV로 열심히 올림픽 경기를 봤다. 우리나라 밖에는 저렇게나 많은 나라들이 있구나, 신기했다.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때문인지, 심한 근시였기 때문인지, 내가 사는 곳이 나는 좀 답답해 보였다. 서윤주가 그렇게 가 보려는 유럽이 궁금했다.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보진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소설에서 임형빈은 기어코 오스트리아까지 서윤주를 쫓아가서 총으로 쏴 죽인다. 팜므파탈 ‘카르멘’ 이야기도 읽었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읽기엔 임형빈도 어리숙한 척해도 하는 짓이 쓰레기이긴 마찬가지인데, 왜 총자루는 그의 손에 있고, 서윤주가 아무리 제 맘대로라 해도 총에 맞아 죽을 만큼인가 하고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님 댁에서 선물로 받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처럼 칼산에 살던 친구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오신 성당 견진성사에 전투 경찰들이 들이닥치던 시절이었다.
1988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자』가 담긴 브르통 작품전집을 출간한다. 1989년 나는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던 해였다. 브르통은 1928년 출간한 『나자』를 ‘글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기를 바라는 작가의 자기만족’을 위해 ‘좀 더 적절한 표현을 찾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조금이라도 더 살려 보고 싶다는 … 바람’으로 1963년 재출간한다. 흥미로운 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기술하거나 떠오른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낸다’는 ‘자동기술’을 실험한 작가의『나자』인데, 그 육필 원고엔 고친 흔적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브르통은 1928년 작품을 출간한 직후에도 자기가 가진 원고에 내용과 사진을 더하고 수정했다고 한다. 이 원고는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다가, 브르통이 소장하던 것을 경매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2015년 프랑스 국가 보물로 분류, 2017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었다. 브르통은 어떤 '흐름'을 살려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문체에 신경 쓰지 않고 꾸밈을 최소화’해 ‘포즈를 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과 같은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이 담긴 『나자』의 첫 문장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나는 이 질문을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이라는 나이를 지난 지금까지도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난 언제쯤 풀쩍, 성장이라는 걸 할까?
‘독자들은 이 분야에서 내가 경험하게 된 일에 대해 전체적인 설명을 해 주리라 기대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여기서 나는, 나만의 어떤 방식과도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때때로 나에게 일어난 사건과,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발생하여 내가 특별한 매력을 느끼거나 저항감을 느끼게 되어 그것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만든 것을 쉽게 떠올려 보는 일에 만족할 것이다. 미리 정해 놓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것을 떠오르게 내버려 두는 시간의 우연에 따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나자』 22쪽)
시댁에서 아들을 키우며 공부하고 또 일하며 나의 젊음은 그렇게 정신없이 지났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어느 날이면 집으로 들어가는 문 비밀번호가 좀처럼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자』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면서도, 매우 우울하고 한편으로는 참으로 감동적이기도 한 이야기’에 나오는 들루이 씨가 바로 나인가 싶은 시절이었다. 처음엔 방에서 떨어져 피 흘리며 다시 돌아오는 들루이 씨 처지에 공감했다.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 신화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른 면이 보인다. 인지능력 저하를 걱정하는 엄마가 “난 외우는 걸 잘 못 했어.” 하실 때면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다. “기억력 좀 없어도 괜찮아, 엄마. 꼭 필요한 것만 안 잊으면 되지, 복잡하게 뭘 그렇게 기억하려고 해요. 그리고 엄마 정도면 기억력 좋은 건데….”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엄마, 엄마 딸 이름만은 무엇보다, 엄마 이름만은 잊지 않겠죠?’ 한다. 언젠가 방송에서 본 독일 요양원 앞에 있다는 가짜 버스정류장도 생각이 난다. 치매 환자들은 가족과 집이 보고 싶어 무작정 밖으로 나오는데, 이 가짜 버스정류장이 생기고 그곳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하고 물어주는 사람들 덕에 이들이 길을 잃는 일이 훨씬 줄었다고 했다. 이처럼 기억을 잃은 들루이 씨에게 그가 묵고 있는 방번호를 알려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들루이 씨는 그야말로 ‘방황하는 영혼’, 유령 같을 것이다. 아, 참, 그렇다. 나는 지금 브르통과 그의 작품 『나자』그리고 나의 인연을 되돌아보고 있는 거다. 잠시 넋을 놓았다.
‘어느 날 한 신사가 호텔에 들어가서 자기 신분을 밝히고 방 하나를 빌리자고 했다. 그가 빌린 방 번호는 35호다. 잠시 후, 그 신사는 사무실로 내려가 열쇠를 맡기면서 말한다. “실례합니다, 내가 워낙 기억력이 없거든요. 미안하지만 내가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들루이’라는 내 이름을 말할 테니, 그때마다 내 방 번호를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알겠습니다, 손님.” 잠시 후 그는 다시 돌아와서는 사무실 문을 반쯤 열고 말한다. “들루이.”“35호입니다.”“감사합니다.”잠시 후 온통 진흙투성이에다 피까지 흘리면서, 거의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한 남자가 매우 흥분된 모습으로 사무실에 들어와 말한다. “들루이.”“뭐라고요? 들루이 씨라고요? 그런 말 마십시오. 들루이 씨는 방금 막 방으로 올라가셨어요.”“미안하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요. … 방금 창문에서 떨어졌소. 내 방 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나자』 160쪽)
앙드레 브르통은 나자를 다시 다듬어 출간하고 3년 뒤인 1966년 9월 28일 생을 마감한다. 참,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가 싶다. 아빠도 브르통처럼 70세에 돌아가셨다. 2009년 7월, 장마가 끝나가던 여름이었다. 나는 브르통이니 나자니 문학이니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같이 성경공부 하던 프랑스인 엘리자베스가 책을 빌려줬다. 학교에서 초현실주의를 공부했다는 걸 기억한 것이다. 번역도 없는 책을, 거기다 어렵기만 하던 『나자』에 관한 책을 읽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2009년 출간된 신간이라 아는 척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읽었다. 에스터 알바흐(Hester Albach)란 사람이 쓴 『초현실주의의 주인공, 레오나』였다. 네덜란드어로 쓴 것을 불어로 번역한 책이다. 엘리자베스와 나는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이 있었을 뿐이다. 열심히 읽을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작했다. 서문을 읽자마자 번개가 치듯 『나자』가 소환됐다. “그렇다. 나자는 정말로 존재했다. 이름은 레오나 카미유 기스렌(Léona Camille Ghislaine). 릴이라는 도시 변두리 출신이었다.” 1941년까지 프랑스 북부에 있는 정신병원에 있었고 그곳에서 서른여덟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 역사에는 2차 대전 독일 점령기에 정신병원에 갇혀 굶주려 죽은 이들이 많았나 보다. 나자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을 거라고 한다. 글 형식이 매우 독특했다. 나자의 모델이 되는 인물을 찾아 그의 전기를 완성하고 여러 자료를 증거로 싣고 있으면서 소설적인 요소를 더했다. 작가는 파리로 떠나와 새 아파트에서 우연히 라디에이터 뒤에 있던 1928년 판 『나자』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 죽었다. 4년이 채 안 되는 동안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세 사람이 차례로 떠나갔다.’ 그에게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책이면서 파리에 대한 책이고 아울러 죽음에 대한 책이기도 했다고 한다. 책의 이 말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다시 『나자』를 읽었다.
물속에 있던 것처럼 기억되는 그 시절, 역시 대부분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고 그래도 남은 말이 있다면 이런 것이었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고통이 끝난 이미지’, 그런 게 ‘유령’이라고 했다. 나자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 물의 표면을 응시하고 있는데도 … 몸은 멀어져 가는 것처럼 느낄 때의 아침’같이 살고 있다. ‘내세라는 것, 모든 미래의 세계가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 사실인가? 나에게는 당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누구인가? 나 혼자뿐인가? 이게 나 자신인가?’ 하는 두 번째 장 마지막 말들이 슬프게 울렸다.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오랫동안 울었다.’‘나자, …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이름은 ….’ 같은 말들만 눈에 들어왔다.
브르통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울림이 크게 남아 있는 문장들을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나자가 남겨 놓은 문장도 그림도 꼭꼭 정성스레 챙겨 남겨 놓았다. 나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브르통은 그런 나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몇 번이나 도망치려고도 했었다고 말한다. 사랑한 게 아니었다고까지 한다(브르통은 여자관계가 많았다). 이 불쌍한 여자 나자를 사랑하지 않았고 책임지지도 않은 듯한 브르통이 이해는 가지 않으면서도 엉뚱하게도 1928년 브르통의 글이 1988년 이문열의 글보다 그래도 덜 가부장적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는 그러한 급격하고 불규칙한 움직임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나자가 여배우 블랑슈 데르발이 아니고 완전 허구의 인물도 역시 아니라 온전히 실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한 번도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었다’‘저 눈 속에 스쳐 가는 범상치 않은 빛은 무엇일까? 어떻게 저 눈 속에는 어두운 고통의 빛과 밝은 자부심의 빛이 동시에 비칠 수 있을까?’ 하는 작가의 말들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1992년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휘트니 차드윅의 『쉬르섹슈얼리티』를 보면 ‘초현실주의가 만들어낸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 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자가 허구의 인물일 뿐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그 이상적인 여인은 실재한다. 따라서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길 위에서, 진짜로 만난 여인에게서 ‘발견’한 셈이다. 그렇다면 초현실주의적 세계는, 현실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라파예트 거리에서 나자와 만나듯이,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다.
브르통이 걸었을지 모르는 길을 걸으면 나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2014년 11월, 브르통이 마지막 15년 동안 여름을 지냈다는 생시르라포피를 찾았다. 브르통 집도 그 옆 박물관도 문이 닫혀 있었다. 먼 곳까지 찾은 것을 기특히 여긴 존재가 있었나 보다. 박물관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아저씨 두 분을 만났다. 문 열려 있는 동안 둘러봐도 좋다고 했다. 브르통의 산책길이라며 친절하게 안내도 해준다. 도회적인 파리 산책만 상상하다 브르통이 이렇게 웅장한 자연을 곁에 두고 글을 쓰고 친구들과 즐겼다니…. 내려와 카오르에서 열리는 브르통에 관한 전시를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비가 내렸다. 중세 시대부터 있던 성당 앞이었다. 코발트색 덧창을 단 중고서점이 있어 일단 들어갔다. 비가 오는 바람에 서점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불어를 쓴 지가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한데, 서점 주인의 폭풍 수다가 쏟아졌다. 내가 1968년 잡지 「유럽」의 초현실주의 특집호를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 난감했다. 나는 여한 없이 브르통과 헤어지려고 온 건데. 전시회 이야기부터 생시르라포피의 브르통 집 얘기까지 이어졌다. 파리 퐁텐가 집에 브르통이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이 경매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기는 그게 초현실주의 정신에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초현실주의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죽는 거다 …, 끝없는 프랑스 사람 열변에 영혼 없이 끄덕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브르통의 시어가 그대로 브르통 서재에 사물로 놓여있었지, 누군지, 어딘지 모르는 일상에 그렇게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면 그 자체가 시로 다가오는 거야. 멋진데. 서점 주인아줌마는 브르통 전시를 주최한 카오르 미술관 관장님께 소개해 주겠다고 명함이랑 카드랑을 챙겨 주면서 얘기를 마쳤다. 브르통이 나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듯 내게 브르통도 그럴 참이었기에 나는 카오르 관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일상 어딘가 사물로 있게 한다, 우연한 만남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만 오래 가슴에 남았다.
‘당신은 나에 대한 소설을 쓰겠지요. 난 그걸 확신해요. … 모든 것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모든 것은 사라져 간다는 점이 … 우리에게는 무언가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 (101-102쪽)
나자는 예언하듯 브르통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신부님들과 일을 그만둘 때, 마음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엄마 얘기를 쓰는 것이었다. 브르통이 나자에 대해서 썼듯이 나도 그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몇 년은 그렇게 웃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브르통 글과 초현실주의 그림을 읽거나 보는 건 어렵지만 ‘자유’를 주고 ‘의식을 해방’하고 ‘떠오르는 대로’ ‘반추하지 않고’ 쓰거나 그리는 건, 쓰거나 그리는 입장에선 어쩌면 가능한 거 아닌가 싶었다. 초현실주의 하면 따라오는 약물, 남성의 성적 판타지, 신성모독 등등에 관한 건 어차피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오디오북으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평범한 하루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소설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는 소설을 쓸 능력이 없었다. 더욱이 엄마 이야기가 소설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엄마가 허구일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얘기가 하고 싶은데, 한마디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가 『구보가 아즉 박태원일 때 : 박태원 수필집』이 있는 걸 보았다. 가족 얘기, 이웃 얘기, 시절 얘기, 책 얘기 콜콜하게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도 「화단의 가을」이란 글이 눈에 담겼다. 좁고 모양 없는 뒤뜰 화단에 대고 불평을 했더니 이를 들은 아내가 꽃을 사다 심어보라 하기에 꽃장수에게 꽃을 사는데 뭐 아는 게 없어 흥정하기 곤란했던 얘기, 어수룩하게 화단을 가꿔보는 얘기가 이어진다. 거창한 말 없이 일상과 자연스러운 생각을 편안하게 털어내듯 하네! 그냥 이렇게 라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제야 비로소 나는 쓰기 시작했다. 썼다기보다 기록하고 싶었다. 나만의 ‘자동기술’. 오래 묵은 마음속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발견되고 그것이 일상과 만나서 글로 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