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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그날 죽은 나는>

전지적 레즈비언 시점

by Radsbos

줄거리

이영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고, 사소한 오해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까 늘 전전긍긍한다. 결국 다른 이가 스스로를 어떻게 취급하든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온 이영은 의미심장한 일에 휘말리며 결국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무너져내리던 이영의 삶에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향조. 말수가 적고 늘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향조는 가깝게 지내기 쉽지 않은 아이지만, 그의 고요하고 한결같은 다정함에 이영은 쉼을 얻게 된다.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는 달콤한 안정감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향조는 이영이 자립할 수 있도록 그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학교에서 고립된 경험이 있는 이영은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으로부터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고 그 결과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살핀다. 쉬지 않고 주변인들의 눈치를 살피던 이영은 주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공격과 실망의 원인마저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영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곤 한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오고 나서부터 이영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영은 새로 만난 친구들 사이에 섞여들고자 노력하지만,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주위의 모든 관계들이 일그러지고 만다. 결국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크고 작은 괴롭힘까지 이어진다. 좌절한 이영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향조가 이영의 곁에 나타난다. 향조는 학교 근처에 있는 오두막에 이영을 초대한다. 그 곳에서 둘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향조의 등장과 향조를 선망하게 되는 이영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웹툰 <그날 죽은 나는>

향조와 이영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둘은 서로를 살피며 자신에게 없는 능력과 성격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한다. 이영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단단해 보이는 향조를 선망한다. 향조 역시 이영을 필요로 한다. 어린시절 학대를 당한 이후 무기력한 일상을 살고 있는 향조는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자신만의 오두막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향조는 무기력한 자신의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 향조의 세계에 이영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향조는 자신과는 달리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이영의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무기력함을 해소하고자 한다. 향조라는 안식처가 생긴 이후 이영의 일상은 예전만큼 좌절스럽지 않다. 자신을 기다려줄 향조를 생각하면 학교에서의 힘든 시간도 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서로에 대한 존재감이 더 커져갈수록 이영은 향조를 동경하며 향조를 닮고 싶어한다.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이영은 닮고 싶은 누군가를 찾아 선망하고 동경하기 시작한다.



내 덕분이 아니야. 전부 네가 한 거야.

향조가 주는 한결같은 지지와 안정감으로부터 용기를 얻은 이영은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저항한다. 이유없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며, 이영은 마침내 두 발을 딛고 서서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으킨 변화는 모두 향조 덕이라고 여기는 이영에게, 향조는 마치 절대자와 같다. 완전하고, 견고하며, 무조건적인 수용과 지지를 건네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향조는 사실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옳은 말들을 건넬 뿐인 자신과는 달리, 현실 세계 안에서 부딪치고, 무너지고, 또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이영이 진정으로 힘 있는 자라고 말한다.



이번엔 내가 널 구할 거야!

이영의 눈에 향조는 마냥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으나, 사실 향조 역시 자신이 끌어안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스스로가 바라보던 향조와 실제 향조 사이의 괴리를 깨달은 이영은 결국 향조의 둥지 밖으로 밀려나고, 극심한 혼란 안에서 향조와의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이내 이영은 향조 역시 무기력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향조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걷어내주고자 한다. 마치 자신이 향조로부터 구원받았듯, 향조에게 손을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향조를, 즉 타인을 구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직면하고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달으며 좌절한다.



빛을 찾아서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웹툰 <그날 죽은 나는>

작품 안에서 이영의 좌절은 지독하리만치 반복된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타인과 만나며 수없이 좌절의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그럴수록 이영은 매번 더 처참히 부서지고 더 낮게 수그린다. 이런 이영의 행동 패턴을 향조는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이영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향조는 늘 다음을 예상하고 모든 걸 아는 채로 관계를 이끌었다. 이영은 향조가 건넨 손을 잡고 걷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향조와의 분리를 통해 가장 큰 절망을 겪어내고 나서야, 마침내 이영은 홀로 서게 된다. 그리고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직접 손을 뻗게 된다. 좌절의 끝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흔히 타인을 낙원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날 죽은 나는>은 다시금 질문을 건네게 만든다. 향조가 이영에게 낙원을 만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이영이 과연 낙원을 박차고 그 너머로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사람은 어리고 약해서, 누군가가 지어준 낙원 안에서 한결같은 애정으로 보듬어진 다음에야 낙원이 허상임을 직시할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난 뒤에야 제 손으로 낙원을 무너뜨릴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서로를 강하게 동경하고 또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은, 각자의 세계를 부숴버리고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너지기 위해 사랑하고, 부서지고 나서야 자신의 세계로 날아오른다.


그렇다면 낙원을 잃은 이영은 새로운 세계에서 무엇을 만났을까? 이영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는 ‘분수를 모르는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위아래를 살피고, 강자와 약자를 나누어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동안, 이영은 말간 얼굴로 웃다가 강자에게 화를 입고 나서야 깜짝 놀라 기가 죽고는 했다. 결국 수직적인 위계 질서를 몸에 새겨나간 이영은 향조의 앞에서도 웅크리고, 더 작아질 뿐이다. 향조가 낙원도, 동경의 대상도, 절대자도 아님을 깨달은 이영은 마침내 향조를 자신과 동등한 다른 한 명의 사람으로 상대하게 된다. 향조라는 낙원을 무너뜨리고 날아오른 이영이 마주한 것은 깊은 내면에 묻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본능적으로 평등을 알고 꿈꾸던 자신의 본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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