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 뭔데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목표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여성해방을 실현하는 데 있어요. 쉽게 말해서 남성을 사랑하는 대신, 여성에게 자원과 에너지를 집중함으로써 남성중심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겠다는 거죠.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가부장제의 부조리함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남성지배사회에 저항하고자 4B(비연애, 비혼, 비출산, 비섹스)를 실천하고 있죠.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은 남성과의 분리에 더하여 다른 여성들과의 연결을 강조해요. 우리의 목표는 이성애를 미끼로 한 여성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나아가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있으니까요.
Q2
그게 왜 필요한데요?
여자들은 오랜 시간 이성애를 강요당해왔어요. 여자가 결혼을 해야만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한 남자에게 귀속될 것이고, 그래야 남자들이 임신과 출산, 돌봄노동, 가사노동 등을 대가 없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끔 사회가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체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런데 여자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향상되면서 점차 여자들을 집 안에 잡아두기 어려워졌어요. 여자들이 스스로 결혼 제도 안에 들어가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해진 거예요. 그래서 이성애 로맨스를 향한 낭만과 환상을 주입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최대한 아름답고 행복해보여야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남성과 연애하고 결혼할 것이고, 그래야 가부장제가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주위에 넘쳐나는 로맨스 컨텐츠가 바로 그 결과물이죠.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성애 제도와 가슴 떨리는 로맨스의 실체는, 여성을 가부장제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일 뿐이었던 거예요.
이처럼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면 여자들이 반드시 남자와 결혼하고 연애해야만 해요. 반대로 말하면, 가부장제를 부수려면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을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위에서 이야기했듯, 레즈비어니즘은 4B를 통해 남성과의 분리를 실천하는 데서 나아가, 여성과의 연결을 통해 보다 강한 공동체를 꾸려 남성 체제에 대항하고자 해요. 여성이 자발적으로 여성과 함께하기를 선택한다는 것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거든요.
Q3
그런데 저는 레즈비언이 아닌데요?
레즈비언은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부르는 말 아닌가요?
여자를 좋아하기 위해 반드시 로맨스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 말하는 여성을 향한 사랑은 다른 여성을 향한 성적 끌림이나 연인으로서의 감정뿐만 아니라 자매애까지 포괄해요.
N번방, 불법촬영범죄 등 각종 여성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적이 있나요? 주변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나요? 내 옆에 있는 여자가 행복하기를 원하나요? 그럼 당신도 이미 레즈비언이라고 할 수 있어요.
Q4
레즈비언 지우기 아닌가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레즈비어니즘에서는 ‘여성을 사랑하는 방법’에 여성과 연애하고 섹스하는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부터 여성과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까지 포함해요. 두 가지는 사실 생각만큼 멀리 떨어져있는 게 아니라, 깊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여성과 다채로운 관계를 맺도록 장려하고, 여성을 사랑하는 방식이 확장된다고 해서 레즈비언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에요. 레즈비어니즘이 확산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과 교류하는 레즈비언들이 가시화될 것이고, 오히려 더 많은 여성들이 강압적 이성애로부터 벗어나 레즈비언이 되기를 ‘선택’함으로써 여성과 함께하고자 할 거예요.
Q5
그럼 그냥 페미니즘 아니에요?
왜 굳이 레즈비어니즘이라고 하나요?
우리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이라고 정의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이성애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남성이 아니라 여자를 사랑하자고 선언하기 위함이에요. 앞서 이성애가 그동안 낭만으로 포장되어왔지만 사실은 가장 효과적으로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가부장제의 도구라는 점을 이야기했죠. 최근 몇 년 간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비판하며 “남자는 사실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남자가 사랑하는 건 오직 남자뿐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어요. 남자들이 진짜로 존중하고, 믿고, 서로 협력하는 상대는 늘 남자였고 거기에 여자가 끼어들 틈은 없었으니까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은 이러한 남자들의 호모소셜에 대항하기 위해 그 이름에서부터 남성애를 보이콧하고 여자와 함께하겠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해요.
두 번째는 왜곡된 레즈비언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보다 폭넓은 여성 공동체를 꾸리기 위함이에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레즈비언의 정의는 여자에게 성적, 낭만적 끌림을 느끼는 여자예요. 그런데 사실 여자와 연애하고 섹스해온 여자들도 들여다보면 부분적으로 여성주의를 실천해오고 있던 거나 다름없어요. 남성을 사랑하거나 남성에게 헌신하지 않았고, 남성에게 의존하지도 않았고, 여성의 독자적인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합치면서 고군분투해왔거든요. 레즈비언들이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등 여성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던 역사도 있어요. 여성을 사랑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남성 체제를 향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위의 두 가지 이유를 종합해보면 여성주의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는 레즈비어니즘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어요.
Q6
그럼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까지 당신이 맺어온 여성들과의 관계와 여성주의 실천을 되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남성중심사회를 비판하고 여성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왔다면, 이미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실천할 준비가 된 거예요.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여성들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선언해보세요. 당신에게 맞는 여성공동체를 찾아나서고, 여자들과 현실적인 비혼 계획을 세워보고, 그 계획 속에 누가 어떤 자리에 있을지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아래의 자료를 참고하세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더 알아보기↓↓
- 여자는 인질이다, 디 그레이엄 외, 2019.
- 피리 부는 여자들, 서한나 외, 2020.
- 랟스보스 카드뉴스(인스타, 트위터 @radsbos)
- The Lesbian Revolution: Lesbian Feminism in the UK 1970-1990, Jeffreys, Sheila., 2018.
에디터 | 자몽, 올리브
디자인 | 자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