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할머니와 목욕탕에 갔다가 할머니 팔에 있는 세 개의 푸른 점을 발견했다. ‘불주사를 팔에 맞았나? 주사를 맞은 지 너무 오래돼서 푸른 색으로 변했나?’ 생각하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 할머니 방에 찾아가 잊고 있었던 푸른 점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네 팔에 있는 것과 같다’며 내 손목에 있는 타투를 가리켰다. 옛날에는 기계가 없어서 먹물을 묻힌 실을 바늘에 꿰어 피부에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문신을 새겼다고 했다. 문신 있는 할머니라니, 그 자체로도 멋있었지만 어릴 적에 동네의 친했던 여자친구들과 서로를 징표로 새겼다는 말에 친구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두근거렸다.
“통통허니 눈은 땡그랗고 이뻤어… 너만치 머리도 짧았지”
이화(86)는 북강원도 평강군 유진면에서 태어났다. 집과 집이 널찍이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에 이화의 작은 집이 있었고, 그 위로 창미 언니가 살았다. 둘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밤낮없이 붙어 다녔다. 바늘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실이 따라오듯 이화는 늘 창미 언니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려도 쪼끄만 것들이 여우같았나봐. 열두 살인가 열세 살인가밖에 안됐는데 의형제 맺자고 그런겨… 죽을 때까지 언니 동생하고 잊어먹지 말자고. 싸우면 안 된다고 약속까지 허고 한 거야 이게.”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소중히 기억하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잊지 말자고 둘은 약속했다. 보이지 않는 약속은 흐려지기 쉬워서, 지워지지 않는 증표를 만들고 싶었다. 그들이 나눈 마음을 설명할 언어조차 없었던 시절이기에 둘은 각자의 몸에 서로를 기억하는 흔적을 새기기로 했다. 점으로 남겨진 영원의 맹세는 바늘로 살을 뚫는 아픔보다 생생하게 수십 년 동안 이화의 기억 속에 자리했다.
“우리 집에서 했어. 어떻게 헐까 고민하다가 바늘에 실을 꿰고, 먹을 벼루에 갈아. 그 실에 먹칠을 하고, 잡고, 살에 꿴거야. 살 속으로 먹물이 들어서 이렇게 점처럼 물드는 거야. 애들인데 아픈 걸 알어? 그냥 하고 싶어서 했지”
이화가 열세 살이었을 무렵, 그러니까 1900년대 중반에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끼리 실에 먹물을 묻히고 바늘로 살을 떠서 몸에 점을 남기는 것이 유행했다. 어느 지역이나 연령에 국한되지 않았던 이 행위를 영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기릉지’라 불렀다. 이화처럼 ‘기릉지’와 같은 이름을 붙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점을 새긴 이들도 있었다.
여자와 남자, 혹은 남자와 남자 사이에 일어난 일은 역사로, 문학으로, 또 예술로 재탄생하고 전수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남지 못하고, 각자의 기억 속으로 흩어져버리고는 한다. 다만 기록되지 못한다고 그들이 나눈 감정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화의 팔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푸른 점처럼 한 여성에게서 다른 여성에게로 전해진 몸의 기록은 과거부터 여자의 곁에는 언제나 여자가 있었다는 증거다.
“나는 그 언니가 너무 좋아. 좋아서 그랬어. 하루 몇 번이라도 들여다볼 때마다 생각나. 열 번이면 열 번, 그 언니가 뱅뱅뱅… 머릿속에 돌아. 언니 생김새가 눈에 선하고 안 잊혀져.맨날 보고 싶어서 생각하고 그러고 살았는데 이제는 세월이 지나서 담담해. 지금은 그 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지.”
이화는 그 누구보다 창미와 함께할 때 가장 행복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둘의 세상은 완전해졌다. 피부를 짙게 물들인 먹물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화와 창미의 시간에도 끝은 있었다. 철도국에 다니던 아버지의 벌이가 어려워지자 이화와 가족들은 이남을 하게 되었다. 이화가 떠나는 날 밤, 둘은 창미네 집 앞에서 처음의 약속처럼 언제나 어디에서도 서로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둘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매 순간 창미의 곁에는 이화가, 이화의 곁에는 창미가 있었다.
(지금까지 같이 있었으면 둘이 살았을 수도 있겠다, 할아버지랑 결혼 안 하고)
“그럼 당연하지.”
점을 새긴 행위는 순전히 두 여성의 의지에서 비롯된 약속이었지만, 가난을 이유로 열여섯의 나이에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에 이화의 의지는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상에서 밥 한번 편히 먹어보지 못하고, 추운 겨울 남편을 위해 밤낮이고 아궁이 앞을 지켜야했던 삶에 이화 자신은 없었다. 이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행복하게 해준 사람은 창미였지만, 가부장제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지에서 다른 여성과 함께하는 길을 지워버렸다. 아무리 각별한 사이였어도 ‘결혼하면 다 부질 없어질 우정’으로 치부하며 그들의 미래를 닫아버렸다. 이화에게 남성과의 삶을 거부할 선택권이 있었다면, 창미의 손을 잡거나 또 다른 여성들과 점을 새길 기회가 있었다면 이화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웠을까. 이화와 창미의 세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짙은 그리움이 뭉친 검은 점만이 남았다.
“그동안에 어떻게 지냈냐고. 언니, 나는 언니가 참 많이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살았는데도 언니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니 잊혀지지를 않는데... 지금까지 살아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남은 생 둘이 손 붙잡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