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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sbos Feb 16. 2021

가장 깊은 침묵에 귀 기울이기

전지적 레즈비언 시점 vol. 2 여는 글

  여자로 살아가다 보면 세상이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품게 된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아서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이야기. 여자라면 으레 이러저러한 일을 겪게 된다는 걸 결국 알고 나서도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대개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져있었고, 우리의 자매들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사회가 외면하고 지워온 여성의 고통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겠지만, 요즘은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심지어는 SNS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여성의 삶에 드리운 어둠을 폭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만이 세상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여성의 고통보다도 더욱 깊은 곳에 숨겨지고 외면당한 것, 그게 바로 남성으로부터 독립된 여성들 간의 사랑과 연대의 서사다. 오직 남성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기를 강요하는 남성 지배 사회 안에서도 서로에게 이끌리고, 서로를 지지하고 또 연결해온 역사가 바로 여성 집단의 힘을 보여준다. 남성 지배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돌아서서 여성들이 독자적인 공동체나 연대체를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야말로 남성 체제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남성을 사이에 두지 않은 여성 간 관계를 담은 이야기는 여전히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에 전지적 레즈비언 시점에서는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만나 펼쳐지는 수많은 이야기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 어려운 다양한 관계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어떤 이야기는 이미 지나온 당신의 시간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어떤 인물은 지나간 당신의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거나, 당신의 미래를 그려보게 만들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뜻깊은 경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해 창간호 발간을 성황리에 마쳤으나, 한정된 인쇄부수와 물리적 한계로 인해 본지를 직접 읽어볼 수 없어 아쉬움을 표하는 분들이 더러 있었다. 이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우리의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브런치 기고를 결정하였다. 이번 전지적 레즈비언 시점 2호에도 여러 색깔의 이야기를 담아냈으니 기대해도 좋다.


  어쩌면 가지각색의 경험과 시선, 목소리로 엮어낸 글들이 자칫 어수선해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시간을 한 명의 여성인 당신과 우리의 만남으로 여기어,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면 좋겠다. 당신과의 만남 역시 우리가 이 글을 적어내리는 동안 수없이 고민하고 기대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만남이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라며,

RADSBOS.




에디터 | 올리브

디자인 |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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