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자가 소기업 다니는 정직원 이야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집이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중년 부장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내 얘기 같아서 끝까지 보기 힘들다”고.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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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용인에 집이 있고
중소기업에서 40대 중반까지 일했습니다.
임원이 되겠다고 애쓴 적은 없습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했습니다.
차장이던 시절,
형의 가장 친한 친구가 대표로 오면서
회사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견제했고
누군가는 저를 통해 대표에게 다가가려 했습니다.
대표는 회사 성과의 공을 제게 돌렸습니다.
저는 대표 옆에서 인사, 제품, 영업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식사 자리도, 술자리도, 일정도 챙겼습니다.
실력으로 일한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대표의 후광’이라는 말로 저를 정리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회사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수합병을 추진하려는 주주들과
이를 반대하는 대표.
회사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사람을
말로 밀어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조금씩 닳아갔습니다.
대표는 남아 달라 했습니다.
몇 번이나 붙잡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왔습니다.
40대 후반,
아직은 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임원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니, 그건 제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임원이 되려면
결정권자에게 더 많은 것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시간, 감정, 충성, 침묵.
저는 그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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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할 때 나름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실업급여를 받고
창업을 하고
기존에 운영하던 쇼핑몰을 이어갈 생각이었습니다.
퇴직금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아니, 손댈까 봐
집 대출을 먼저 갚아버렸습니다.
그 선택 이후
공격적인 투자는 어려워졌습니다.
사업은 생각보다 더디게 흘렀습니다.
회사에서 하던 일과
혼자서 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해외 구매대행도 했고
쇼핑몰도 다시 열었습니다.
코로나 시절,
회사도 학교도 모두 재택이었습니다.
처음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사람과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오늘 쉬세요?”
“휴가신가 봐요?”
설명하기엔 길고
넘어가기엔 씁쓸했습니다.
그때 배달대행을 시작했습니다.
아들 픽업을 위해 사둔 차가 있었고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플랫폼과 영업점, 고객.
모두 비대면.
부담이 적었습니다.
음식점 사장님께
“수고하세요”
한마디를 건네며
굳어 있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빠지지 않고 벌었습니다.
그게 자존감을 지켜주었습니다.
아내는 혹시 제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함께 다녔고
직접 배달도 했습니다.
1~2년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고립감은 줄었고
승용차 한 대 값은 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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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배달을 하지 않습니다.
배달료도 낮아졌고
위험도 커졌습니다.
지금의 일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제가 그만두라고 조언했던 형은
영업점을 차려 성공했습니다.
형수는 저를 미워했습니다.
제가 형을 회사에서 내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형은 말했습니다.
“그때 네 말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다”고.
지금 저는
두 명뿐인 회사의 직원입니다.
직함은 없습니다.
예전 동료를 만나면
마지막 직함인 ‘차장’으로 불립니다.
가끔은 부장이라도 달고 나올 걸,
그런 생각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자유롭습니다.
야근도 없고
억지 회식도 없습니다.
시간이 있습니다.
글을 쓸 시간이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있습니다.
명함은 사라졌지만
생활은 계속됩니다.
월급은 줄었지만
소비도 줄었습니다.
점심은 집에서 먹고
회식이 없으니 돈이 모입니다.
명함이 거창하던 시절이 아니라
이제는 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아니, 살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