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는, 내 얼굴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봐 줄 사람이 없습니다.

by 서대남

인생은 연극과 닮아 있었습니다.

무대는 하나였지만, 얼굴은 늘 바뀌었습니다.


짧은 삶이었지만

나는 꽤 많은 얼굴로 살아왔습니다.


학생 시절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잘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말썽은 내 일이 아니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휴학 한 번 없이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살았습니다.

일탈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했습니다.

선택이라기보다 조건에 가까웠습니다.

졸업 전에, 공백 없이.

전공 동기들 대부분이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향했고

나 역시 ‘어울리는가’를 묻기 전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의 나는 양복 한 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렸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의 얼굴을.

유준상 배우가 연기하던

자신감 있고 단단한 남자의 표정과 태도를.


면접에서도, 첫 출근에서도

나는 나를 연기했습니다.


첫 현장에서 간호사는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신입 사원이시죠?”

원장님을 뵈러 왔다는 말은 목에 걸렸고

경력자인 척, 여유 있는 척

나는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들었습니다.

유쾌한 사람처럼, 열정적인 사람처럼.


회사를 옮긴 뒤에는

사람들 앞에 서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사내 행사, 외부 세미나, 교육 진행.

성격과는 맞지 않았지만

모든 멘트를 플레이 버튼처럼 꺼낼 수 있을 때까지

연습했습니다.


김제동을 비롯한 유명 MC들의 말투와 호흡을

분석했고 그대로 내 몸에 붙였습니다.


반응은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원래 잘하시는 분이네요.”

“천성이시군요.”


하지만

단 한 번도 편안했던 적은 없습니다.

늘 무대 위였고,

늘 연기 중이었습니다.


이제는

일 잘하는 척 하지 않아도 됩니다.

멋있는 척, 열정적인 척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일하고

있는 그대로 생활합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기분이 상하면 화도 냅니다.


50대는

내 얼굴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을 마주할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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