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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규동 Apr 07. 2019

모리미술관, 각광받는 전시의 조건

롯폰기 힐즈의 '모리미술관'에서 바라본 미술관의 변화

  

  대도시를 여행할 때면 높은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감상하곤 한다. 꺼질 줄을 모르는 건물의 불빛들과 부산하게 움직이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나만 동떨어진 채 세상의 관조자가 된듯한 느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 여행을 준비할 때도 인스타그램에서 전망대를 가장 먼저 찾아보았다.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의 사진도 많았지만, 유독 롯폰기 힐즈의 사진에서는 야경과 함께 예술 작품들도 함께 등장했다. 검색을 해보니 롯폰기 힐즈 전망대에는 ‘모리 미술관’이 함께 있었고, 티켓 역시 전망대와 미술관을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었다. 전시와 야경이라는 신선한 조합에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롯폰기 힐즈에서 도쿄 타워가 가장 잘 보인다는 이점도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돈카츠 맛집 ‘부타구미’는 덤)

롯폰기 힐즈에는 도쿄 시티뷰와 모리 미술관이 함께 있다.

모리 미술관은 어떻게 ‘핫한’ 미술관이 되었을까?

  

  롯폰기 힐즈 52, 53층에 위치한 모리 미술관은 2003년 개관 당시부터 ‘현대성’과 ‘국제성’을 이념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언뜻 생각해보면, 접근성도 낮고 난해한 현대미술을 다루며, 유명한 소장품 하나 없는 미술관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예술 공간으로 발돋움한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리 미술관은 철저히 ‘사용자 중심’의 운영을 통해 이러한 핸디캡을 자신 만의 매력 포인트로 전환했다.


밤의 미술관

  모리 미술관의 개관은 밤 10시까지이다. 대부분의 미술관들에서 오후 5시만 되면 ‘마감시간이 다가온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모리 미술관은 ‘밤의 미술관’으로 포지셔닝 함으로써 새로운 타겟 소비자를 저절로 개발했다. 퇴근 후 문화생활을 즐기는 직장인부터 나처럼 야경을 보려 롯폰기 힐즈를 찾은 관광객들까지, 야간 개장은 새로운 고객들에게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특히 전망대와 함께 위치한다는 점은 모리 미술관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에 결정적이었다.


인스타 명소

  모리 미술관이 기획하는 전시 역시 시대의 트렌드를 정조준하고 있다. 2017년 모리 미술관은 ‘레안드로 에리히: 보는 것과 믿는 것’ 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레안드로 에리히는 현대미술가이지만, 동시에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에 미술관 측은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 및 영상의 촬영을 장려하고, 관람객들이 인스타그램에 적극적으로 포스팅을 하도록 했다. 이러한 관람객들의 포스팅이 바이럴을 일으키면서, 이 전시는 135일 만에 개관전 이후 최대의 관객(61만 명)을 불러모으는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모리 미술관은 (특히 우리나라 관광객에게)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스팟이 되었다. 어떠한 베뉴던지 사진 촬영으로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모리 미술관에서는 전시품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복합 문화공간으로서의 미술관 


  모리 미술관에서 포착할 수 있었던 미술관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가장 유명한 예는 대림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대림미술관’‘디뮤지엄’일 것이다. 대림미술관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슬로건으로 디자인, 가구뿐만 아니라 기업과의 콜라보 등 실생활 친화적인 전시를 기획해왔다. 더욱이 대림미술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전시 이외에 콘서트, 파티, 마켓 등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대림미술관은 주말만 되면 ‘줄 서서 입장하는’ 미술관이 되었고, 인스타그램 해쉬태그 개수도 35만 5천개를 넘어섰다.

대림미술관은 '경험'을 판매하는 문화공간으로 작용한다.

  인상주의, 큐비즘, 추상표현주의 등등 예술의 ‘창작’에도 사조와 화풍이 있지만, ‘감상’에도 시대에 따른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예술 감상은 작품을 정적으로 음미하고, 문화적인 식견을 높이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그러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그 어느때보다 옅어진 지금, 젊은 세대는 경험과 공유를 통해 예술을 느끼고 인증을 통해 기억한다. 따라서 ‘모리 미술관에 가는 것’과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는 것’은 하나의 ‘경험’으로써 동등한 위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모리 미술관에서 일본 현대 예술계를 소개하는 ‘Roppongi Crossing 2019: Connexions’를 감상하고 나오니, 이미 해는 떨어진 지 오래였고 도쿄타워는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놀랍게도 롯폰기 힐즈는 전망대 역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전망대의 작품들은 대부분 미디어 아트이거나 화려한 조명을 활용한 것이라 도쿄의 바쁜 불빛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도쿄의 야경은 예술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 때의 경험이 너무 기억에 남아 ‘우리는 이런 공간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게 웬걸.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문화예술을 관광과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작년 1월, 타워 7층에 ‘재미’를 키워드로 하는 현대미술관 ‘롯데뮤지엄’이 오픈해서 벌써 세 번의 기획전이 진행되었다! 또한 올해는 롯데월드타워 개관 2주년을 맞아, 전망대에서도 샤갈과 최영욱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도 열린다. 송파구 주민 임에도 2년 동안 미루고 미루던 서울스카이 방문을 드디어 할 때가 온 것 같다.

롯데뮤지엄이 '모리 미술관'의 위상을 갖는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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