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파규동 Apr 12. 2019

일본의 부엌 ‘츠키지 시장’의  허울뿐인 북적거림

- 츠키지를 방문하려 하는 여행자들에게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은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에 시작되었다. 도회스럽기만 했던 도쿄의 다른 모습을 보고자 ‘쓰키지 시장’을 목적지로 정했기 때문이다. 전날 오다이바의 충격적인 스시(다이버 시티 ‘카이오 스시’ 가지 마세요ㅠ)를 어머니께 만회하고 싶기도 했고, 쓰키지의 명물인 우니동을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또한 공항버스를 타는 긴자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마지막날 여행지로 안성맞춤이었다. (긴자 애플스토어에서 에어팟을 사야했던 것은 비밀)


  전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우에노와 아사쿠사, 오다이바까지 쏘다녔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힘드실 법도 했지만,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가 피곤을 잊게 만든 것 같았다.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배낭을 챙긴 뒤 체크아웃을 했다.


  우리가 묵은 아카사카는 오피스 밀집 지역이기도 해서, 출근 시간 도쿄 지하철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2호선 통학 인생 5년에 단련된 나에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지런을 떤 결과, 쓰키지 역에 8시 반에 도착해버렸다.

이른 아침의 쓰키지는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블로그 글을 봤을 때 쓰키지는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빈다고 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3월 첫날이라 그런지 다닐 만한 정도였다. 물론 장내시장이 지난 10월 폐장하고 구요스로 옮겨간 탓도 크겠지만 말이다. 부산스럽게 참치를 해체하고 경매하는 광경을 못본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장외시장에서 파는 다양한 먹거리들을 구경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연 쓰키지의 골목골목은 간식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다. 계란말이와 가리비구이, 석화와 대게까지, ‘이 꼭두새벽에 누가 저걸 다 먹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 전체에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쓰키지 시장의 매대에는 (비싼) 군것질 거리들이 그득하다

  하지만 한입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던 간식거리들은 만원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덮밥 종류들은 2,3만원이 훌쩍 넘어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스시쿠니’에서 우니동 하나쯤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오픈 시간인 10시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장외시장과 장내시장을 가르던 길이 나타났다. 호기심에 장내시장 내부를 기웃거려보니 텅 빈 어두컴컴한 공간 뿐이었고, 길에 인접해서 새우튀김과 석화를 파는 가게 만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석화 하나를 먹으면서 장내시장 내부를 바라보고 있자니, 껍데기만 남은 쓰키지의 모습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할 때 재래시장을 찾는 이유는 그 지역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좁은 가게에서 열심히 흥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오늘 저녁 저 가족의 상에 오를 음식은 무엇일까 나름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소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었다.

쓰키지는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쓰키지의 골목에는 더 이상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채 정처없이 떠돌며 군것질을 하는 사람들과, 구글 맵에 맛집을 찍어 놓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사람들 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을 상대하는 상인들 역시, 말도 통하지 않는 고객들에게 구태여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비싼 돈을 받고 게다리 하나, 계란말이 하나를 팔아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오전 9시가 넘어가자 쓰키지의 골목골목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중국어와 영어가 뒤섞여 들려오고, 간식거리의 냄새는 한층 짙어졌다. ‘스시쿠니’의 오픈 시간은 10시. 위치라도 파악해 놓자는 생각에서 구글맵에 ‘스시쿠니’를 찍고 이동했다. 자그마한 가게 앞에 세워진 커다란 메뉴판에 적힌 우니동은 3800엔이었다. 갑작스럽게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저걸 먹고 인스타에 올리면 내가 호구일까?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머니도 메뉴판 가격에 놀라신 눈치였다. 더구나 ‘스시쿠니’는 1인 1메뉴를 시켜야 하는 곳이라, 아무리 저렴한 메뉴를 2개 시켜도 5만원은 너끈히 넘어갈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스시쿠니’를 포기하고 쓰키지 중간에 있는 대형 음식점 ‘스시잔마이’로 들어갔다. (물론 여기도 유명한 곳이긴 하다) 나는 저렴한 카이센동 하나, 어머니는 배가 고프지 않아 지셨다며 군함 하나. 어제 먹었던 스시 보다는 훨씬 신선하고 맛있었지만, 가게를 가득 채운 시끌시끌한 중국어에 어딘지 모르게 찝찝했던 식사였다.

카이센동은 맛있었지만, 이곳에서 도쿄의 내음은 나지 않았다

  ‘도쿄의 부엌’ 쓰키지에서는 한시간도 채 머무르지 못했다. 규모도 별로 크지 않았고 먹거리들은 기형적으로 비쌌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노량진이나 가락시장과 같은 분위기를 생각하고 쓰키지를 찾을 계획을 세운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노량진과 가락시장에는 서울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주를 타고 흐르고 있지만, 쓰키지의 이야기는 작년 10월을 기점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쓰키지에서 시간을 아낀 덕에, 긴자 애플 스토어에서 마지막 남은 에어팟을 획득했다.
  역시 인생은 전화위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리미술관, 각광받는 전시의 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