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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원인간 지니 Oct 30. 2022

우리는 모두 병원인간이 된다

병원인간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던 힘

스무 살, 희귀 난치질환을 진단받고도 스스로 환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통의 일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스물여섯 살, 루푸스가 신장에 침범해 몸이 새로운 증상들을 더 내보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니까 나만 잘 숨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스물아홉 살, 환자로 살아가면 보이는 특별한 것들을 발견했다. 보통의 삶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장 죽을병도 아니고, 나보다 더 크게, 많이, 자주 아픈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감히?

서른 살, 하지만 여전히 이 시선들을 글로 쓰고 싶었다. 10년 차면 숟가락 하나 정도는 얹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덧붙여서. 그런데, 여전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내가 환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굳이 나의 약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서른한 살.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용기가 되어 병원인간이 시작되었다.



분노의 글쓰기 클럽

2020년 겨울,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일면식 하나 없는 인스타 친구의 글이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보고 반해 냅다 인스타그램 친구 신청을 걸게 된 그녀가 만든 글쓰기 모임. 첫 모임은 다음 해 1월의 어느 날. 새해 계획을 세우기 딱 좋은 타이밍에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첫 기수라니. 운명이었다.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쓰기 모임의 이름은 ‘분노의 글쓰기 클럽(이하 분노클)’이었다.


이름 대신 불리고 싶은 닉네임으로, 존대보다는 평어를 기본으로. 분노를 자원으로 주제를 발굴하고 글을 쓰는 모임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었다. 마감을 함께하는 글쓰기 동료들이 생겼고,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내 안에 머물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 직장에서 생긴 일, 내가 원하는 삶. 다양한 주제들 사이에서 나의 글감이 집중되는 곳은 ‘환자로서의 나’였다. 환자로 살아가며 느낀 다양한 감각들.


병을 극복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나의 상태,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병원과 환자의 삶에 관련된 몇 개의 글이 이어지는 동안 점점 더 깊게. 하지만 이 글들이, 이 시선들이 세상 밖으로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응원도 함께.


그리고 모임의 마지막 날, 랜덤으로 맺어진 짝꿍에게 편지를 전하는 것이 지금의 병원인간의 시작이 되었다. 지수는 모임을 하는 동안 몸이 안 좋아져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치료에 전념하던 상태였다. 그녀는 모임 내내 가장 분노를 많이 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감정이 잘 드러나는 만큼 가장 따뜻하게 피드백을 주던 동료였다. 그리고 휴직의 소식을 듣자마자 똑같은 상황에 놓였던 2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병원인간이 주는 위로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고백하는데, 편지를 쓰던 시기는 내 병원인간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고관절 괴사를 진단받았던 그때였다. 이 편지는 그녀를 위한 편지이자, 나를 위한 편지였다.



지수에게

지수, 잘 지내고 있나요?

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걱정이 되는 마음과 함께 괜찮은지 묻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먼저 묻지 않기로 했어요. 걱정되는 마음을 받는 것도 여유가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저도 요즘 꽤나 마음이 어려운 시간을 보냈어요. 평소 같았으면 주변의 친구들을 붙잡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으면 조금 나아졌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스스로도 너무 벅차서,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무게가 덜어지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짐이 얹어지는 것만 같아서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예전보다 더 마음이 단단해진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스스로 묵히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며칠 전에 한 달 만에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왔어요. 기분장애와 수면장애로 정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랑 상담을 하다가 오랜만에 울었어요. 생각보다 괜찮게 지내고 있어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참인데 아니었나 보더라고요. 선생님 앞에서는 왜 엉엉 울게 되는 걸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괜찮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그래도 우리 이 시기를 더 잘 지나가게 해야 하니까 약을 좀 늘리면 어떻겠냐고. 글로 적고 나니 엄청 직업의식에 투철한 의사 같아 보이네요. 그런데, 저는 저 말이 너무 좋았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위로가 되더라고요.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외로움과 심란함이 반복되는 일상이 몇 주째 계속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 복잡한 마음을 굳이 정리하지 않은 채로 지내보려 해요. 정리하겠다는 마음도 버겁더라고요. 화가 나면 화나는 대로 화를 내고, 웃고 싶으면 웃고, 놀고 싶으면 놀겠다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지내보려 해요.

지수가 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2년 전에 휴직한 제가 생각이 나서 지수 마음이 더 생각났던 것 같아요. 어쭙잖게 위로를 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는걸 너무 알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 덮어 놓을게요. 대신,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며칠 전에 책을 읽었는데요. 심리학 개념 중에 ‘외상 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게 있대요. 사고로 신체적 손상을 입거나 정신적 충격이나 생명의 위험을 느낀 사건을 겪고 심리적인 외상을 입은 뒤, 즉 트라우마 상황을 겪은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거나 서서히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하더라고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도 경험하지만 또 동시에 회복 과정에서 그전보다 성장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래요. 그래서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한 사람은 이 과정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도 한대요. 삶의 우선순위나 인생철학 같은 것들이요.


저 글을 읽고 예전에 분노클 멤버들이 저에게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을 잘한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났어요. 어쩌면 저는 외상 후 성장을 통해 현재 나의 처지를 더 객관적으로 보려는 것이 강화된 걸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우리가 겪는 시간에 정답은 없을 거예요. 각자의 고통지수도 다를 거고요. 가끔은 다른 사람이 하는 위로도 위로로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을 거고, 또 나 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화가 날 때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지수에게 가깝고도 먼 사이로, 멀고도 가까운 사이로 우리가 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해요. 지수가 무엇을, 어떻게 하더라도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는 분노클이라는거요.


우리 또, 멀고도 가깝게 만나요 지수.

또 편지할게요. 


2년이 지나 덧붙이는 p.s. 지수, 나 아직 답장 못 받았어요… 10년도 기다릴 수 있어. 정말이야.  



우리는 모두 병원인간이 된다

그녀에게 보낸 편지는 그녀에 의해 후속 모임에서 ‘감동의 편지’에 등극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니 뿌듯한 마음과 아직은 부끄러우니 우리끼리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담아서.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수의 말처럼 ‘또 다른 병원인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면  같은 병이 아니더라도 환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 생각이 점점 자라 희귀 난치질환 10년 차 환자는 ‘병원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분노클 기획 과정에서 이 글들이 완성될 뼈대를 만들었다.


글을 지으며 계속했던 생각은 ‘과연 이 글의 독자들은 누구일까?’였다. 나처럼 몸이 아픈 병원인간들일까? 아니면 안병원인간들일까? 그런데, 글쓰기 동료 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병원인간이 될 텐데 나는 지니의 글을 읽어서 그 세계를 미리 엿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갑자기 몇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몸이 안 좋아져 휴직계를 낸 지수가, 갑자기 대학병원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울면서 전화한 친구 K가, 나처럼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던 직장동료 J가, 내가 받게 될 수술들을 받고, 손녀딸 병원인간과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수유동 감나무집 이안나 할머니가.


당신에게 질병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불명의 질환이 쉼 없이 생기고, 수명이 길어진 지금에 우리들은 결국, 모두 병원인간이 되고야 만다. 병원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 글이 아주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병원인간은 모든 소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병원인간으로,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 근거가 되는 수많은 병원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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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고, 아주 가끔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서른한 살.

대학교 입학, 졸업, 취업 그리고 퇴사까지 나의 의지만큼 의사의 소견도 중요한 몸을 가졌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 커리어와 함께 병명도 쌓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병원인간'이라 부른다.

늙음은 아픔이 용인되지만 젊음에게는 아픔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천천히,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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